꼬마 아가씨

(H.O.T – Candy)

by 노바써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랑을, 그리고 연애를 무엇으로 배웠을지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연애를 노래로 배운 것 같다.


교복 입은 언니 오빠들의 무서움이나 ‘사귄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던 때 묻지 않은 10살. 며칠을 낯선 곳에서 보내는 여행도 거의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 회사에서 자녀들을 데리고 캠프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무척 신이 났다.


캠프에 참가하는 자녀들 중, 나는 어린 편에 속했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굉장히 많았다. 늘 내 또래 속에만 있다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을 만난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치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고3 오빠라고 했다. 캠프 내내 버스 맨 뒷줄 구석에 앉아있던 그 오빠는 이상하리만치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날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큰 문제가 없었는데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짐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식당에 가본 게 처음이라 어찌할 줄을 모른 채 가방을 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 뒷줄에 앉아있던 그 오빠가 내 가방을 다른 의자 위에 올려주었다. 당황한 나를 보며 오빠는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며 식사를 했다. 왠지 모르게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하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 겪는 누군가의 상냥함 때문인지 그때 이후로 오빠가 뭘 하는지 흘끗흘끗 쳐다보게 되었다.



다음날 오빠는 캠프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홍시를 사 먹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버스 안에서 답답하고 지루해진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런데 허겁지겁 버스로 달려온 오빠가 자리에 앉더니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한 채로 다가가니 오빠가 홍시 하나를 내밀었다.

이 홍시 한 알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떠올릴 의식조차 없던 나는 아빠에게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 홍시를 아빠에게 드렸다. 스스로 기특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뿐, 오빠에 대한 고마움은 금방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순수하고 순진했다.


그날 밤, 캠프를 마무리하며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작은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음향장비가 갖춰진 가운데 시상식이 끝나고 어른들은 우리에게 노래를 해보라며 재촉했다. 아는 노래라고는 동요와 트로트 몇 곡이 전부인 초딩이었지만, 마지못해 일어나는 척하며 무대로 나가 동요 한 곡을 부르고는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수줍은 나와는 달리 언니 오빠들은 무대 앞으로 나가 거침없이 춤을 추었다. 헐렁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즐거운 듯 웃으며 춤추는 언니 오빠들을 보니 신이 났다. 나도 무언가 따라 하고 싶었지만 아는 게 없어서 멋쩍게 박수만 쳤다. 어른들도 신이 났는지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노래방으로 향했다.


아까 식사를 하면서 언니 오빠들이 춤출 때 들었던 노래 제목이 기계에 뜨자마자 나는 꼭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H.O.T 그리고 캔디. 노래방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던 그 노래가 익숙한 듯 오빠는 아주 신나 보였다.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캠프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오빠의 미소를 본 듯한 희미한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오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성에게 처음으로 상냥함을 느꼈던 그 캠프 이후로 나는 동네 문구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던 내가 새로운 테이프가 들어왔을까 근황을 살피러 문구점에 들르게 된 것이다.


아직 어렸을 때라 연애 감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알려주고 스쳐간 그 오빠는 잘 지낼까? 가끔 생각이 난다.

지금도 캔디의 전주를 들으면 어리고 약하지만 호기심 많던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