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은 결국, 외로움만 남긴다

네덜란드 천재 화가 '렘브란트'는 인생의 말년에 홀로 남았다

by 노바티오Novatio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참 신비롭다. 넘사벽의 능력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뛰어난 상대를 보면, 존경심보다는 질투심이 나도 모르게 앞장서고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를 보면, 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고 필요하면 도움을 받으면 될 텐데, 도움을 요청할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내 자신의 열등감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뛰어넘기까지 나의 경우에는 족히 4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반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속칭 '천재'의 경우에는 겸손함 보다는 우월감과 자만심이 넘쳐서 스스로를 고립되는 환경으로 몰고 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오만함과 자만심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사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가 떨어뜨린 값이 좀 나가는 콩고물을 얻기 위해 다가갔던 사람들도 그의 주위를 맴도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천재들은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기에 그런 '인간관계'는 시간이 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보통의 사람은 여간해서는 그의 주변에 몰려들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일생이 그랬다. 30대 중반이던 1630년대까지 그는 그림을 그려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렸다.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림이 워낙 탁월했기에 높은 값을 받고 팔아서 풍족하게 생활했고, 당시 유흥가에서 그는 VVIP였다.


As I look at the prodigal son kneeling before his father and pressing his face againt his chest, I cannot but see there the once so self-confident and venerated artist who has come to the painful realization that all the glory he had gateherd for himself proved to be vain glory.

Instead of the rich garments wih which the youthful Rembrandt painted himself in the brothel, he now wears only a torn undertunic covering his emaciated body, and the sandals, in which he had walked so far, have become worn out and useless.

- Henry J. M.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 Darton, Longman and Todd Ltd (1922), page 33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누른 채 파묻고 있는 탕자의 모습을 보면서 한때 그토록 자신감 넘치고 존경받던 예술가가 자신을 위해 쌓아 올린 모든 영광이 헛된 영광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사창가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렸던 화려한 옷 대신, 렘브란트는 이제 쇠약해진 몸을 가리는 찢어진 속옷만 걸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신고 다녔던 샌들은 낡고 쓸모가 없었다. (번역 by 노바티오)

- 헨리 J. M. 나우웬, <탕자의 귀환: 어느 귀향 이야기>, 다튼, 롱맨, 토드(출판사, 1922), 33페이지
Book Cover (Image: Amazon.com via Aladdin)


그림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에게도 30대 중반부터 말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살아생전에 그가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잃었다. 가족이 하나둘씩 2~3년 주기로 사망할 때마다 그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도 점차 빛을 바랬다.


그의 첫아들 Rumbartus (룸바르투스)가 1635년에 사망한다. 그의 첫째 딸 Cornelia (코르넬리아)는 3년 후인 1638년에 사망한다. 같은 이름이었던 그의 둘째 딸도 1640년에 사망한다. 1642년에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Saskia(사스키아)가 영면에 들어간다.


아내 사망 후에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던 모델이자 하녀에서 연인으로서 동거를 했던 Hendrickje (헨드리키에)가 1663년에 사망한다. 그녀와 사이에 태어난 마지막 남은 아들이었던 Titus(티투스)는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1년 전인 1668년에 사망한다.


램브란트가 사망한 1669년에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사고무친과 고립무원의 처지를 생각하며 심리적으로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나 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The Return of the Progidal Son> by Rembrandt (1606-1669) (Image: Google Art & Culture 화면 갈무리)


성경 속 우화를 재현한 그의 마지막 그림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는 약 35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러시아 '에르미따쥐 미술관 (The State Hermitage Museum)'에서 '혼자 잘났다고 생각해 오다 지쳐 나가떨어진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살아생전에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린 그림을 팔아 모은 상당한 부를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사용했더라면 가족을 잃어가는 뼈저린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은 외롭지 않았으리라고 감히 상상을 해 본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1위 혹은 상위의 성과만을 추종한다. 그리고, 상위 시상대에 올라간 사람은 순전히 본인의 재능으로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 착각한다. 해당 업계 1위 자리를 꿰찬 기업의 CEO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최소 3개월~6개월이 소요될 정도로 엄청나게 느린 직립 보행의 순간까지 나를 돌보았던 주위의 양육자들이 있었다. 성장하는 동안 다양한 지식 혹은 삶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던 수많은 선생님과 어른들, 멘토들이 주위에 있었다.


직장 내에서는 팀 성적 1위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땀을 흘린 동료 팀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업계 1위를 달성하기까지 모든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시상식에 참가하는 CEO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프리랜서의 경우에는 결과물을 좋아해서 구독하거나 구매를 해 주었던 수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한 후에 냉철하게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 노력해서 이룩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겸손함'이 비로소 시작된다. 철없던 내 자신은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내 자신이다.


<참고자료 References>


네덜란드 화가였던 램브란트가 인생 말년에 그렸던 마지막 작품 <돌아온 탕자>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burg)'에 위치한 '예르미따쥐' 발굴관(The State Hermitage Museum, 링크 참조)에 소장되어 있다.

The State Hermitage Museum (러시아어: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가수다르스뜨벤늬 예르미따쥐 / Gosudarstvenny Ermitazh

램브란트 작품, <The Return of the Prodial Son>, '에르미따쥐 박물관' 내부 가상 투어 by Google Art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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