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질투는 분노를 유발하며, 분노는 스스로를 파괴한다
아버지의 경제력 덕분에 또래 청년들이 겪는 고민도 모르고, 별다른 고생 없이 살아온 첫째 아들이 있다. 아버지가 시키는 것은 거부하지 않고 모두 이행하는 등 겉으로는 '효성 지극한, 착한 첫아들'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제력에 짓눌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나서서 표현하거나 직접 요구해 본 적이 없었던 첫아들의 가슴속은 점점 썩어 문들어졌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권위에 복종하며 스스로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본 경험이 없는 그는 자신의 삶이 축복인 줄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줄 몰랐고 주어진 환경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줄도 몰랐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줄 모르거나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행복감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He was angry then and refused to go in, and his father came out and began to urge him to come in, but he retorted to his father,
"All these years I have slaved for you and never once disobeyed any orders of yours, yet you never offered me so much as a kid for me to celebrate with my friends....(중략)."
The father said, "My son, you are with me always, and all I have is yours. But it was only right we should celebrate and rejoice, because your brother here was dead and has come to life; he was lost and is found."
- Henry J. M.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 Darton, Longman and Todd Ltd (1922), Page 62
(아래 그림 속 오른쪽에 서 있는 건장한 첫째 아들) 그는 열받아서 집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고, 아버지는 밖으로 나와 그에게 들어오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말로) 들이받았다.
"저는 모든 세월 동안 아버지를 위해 노예처럼 일했고 아버지가 시킨 것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그런데 아버지는 제게 친구들과 함께 축하할 꺼리가있을 때에도 (양 혹은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내어주신 적이 없습니다...(중략)."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네 것이다. (네가 지금은 열받은 줄은 안다만) 우리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마땅하다. 네 동생은 죽다 살아났고, 실종되었다가 발견되었다." (번역 by 노바티오)
거기에 반해, 둘째 아들인 동생은 단순한 철부지를 넘어서 패륜아 보다 더한 짓을 마음껏 하고 살았다. 돈이 필요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 상속분을 미리 분할해 달라고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정도였다.
동생은 그 많은 돈을 몽땅 들고 가출을 감행하여 유흥에 모조리 탕진한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뭘하든 주도적이고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했던 둘째 아들에게 이제 마지막으로 갈 곳이라곤 태어난 고향 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둘째 아들로서 자격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하인으로 살 각오로 거지 꼬락서니임에도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왔다.
가출을 하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 차림으로 돌아온 인간 말종 같은 동생을 위해 송아지까지 잡아서 잔치상을 준비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하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첫째 아들은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을 묵묵히 복종하며 살았던 자신보다 망나니 같이 형편없던 둘째 동생을 더 환영하는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전해 들은 그는 착하고 효성 지극했던 아들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결국 분노를 쏟아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청년 시절에는 무조건 고생을 해 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보아야 향후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능력, 즉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비로소 갖추게 된다‘는 의미로 개인적으로 해석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직접 고통을 경험한 만큼 성숙해진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코마(Coma) 상태 등 죽음의 문턱을 서너 차례 경험한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큰 고통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종종 보인다. 그는 성숙한 부모 혹은 친구 등 좋은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부단한 심리훈련과 감성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돈과 명예, 재능과 직위 등에 시기와 질투를 한다고 해서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마음속으로 염원하고, 아무리 기대를 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 유무형의 대상‘에 굳이 삶의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
현재의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시기와 질투, 분노보다는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함과 동시에 주어진 환경을 잘 활용하며 겸허하게 살아가는 것도 현명한 삶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참고자료 Refernces>
Henry J. M. Nouwen, "Part 2, The Elder So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 Darton, Longman and Todd Ltd (1922), Page 59-62
타이를 배경 이미지: 'Relationship', Photo by Jeremy Perkin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