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선함은 무관하다

승진과 사업 성공, 부자가 되는 것과 '선함'은 무관하다

by 노바티오Novatio

개인이든 조직이든 목표를 설정할 때 중요한 것은 예상되는 결과보다는 '방향성'이다.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경우,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할지라도 허탈한 경우가 허다하다.


삶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개인적인 문제는 '방향을 설정할 때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성공에 대한 체감지수 역시 천차만별로 갈릴 수 있지만,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기준'을 설정했을 경우, 결과에 상관없이 '절대 만족감'은 높아질 수 있다.

Constantly I am tempted to wallow in my own lostness and lose touch with my original goodness, my God-given humanity, my basic blessedness, and thus allow the powers of death to take charge.

This happens over and over again whenever I say to myself: "I am no good. I am useless. I am worthless. I am unlovable. I am a nobody."

There are always countless events and situation that I can single out to convince myself and others that my life is just not worth living, that I am only a burden, a problem, a source of conflict, or an exploiter of other peoples' time and energy. (중략)

The choice for my own sonship, however, is not an easy one. The dark voices of my surroundings world try to persuade me that I can only become good by earning my goodness through, "making it" up the ladder of success.

- Henry J. M.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 Darton, Longman and Todd Ltd (1922), Page 50~51

끊임없이 나는 스스로 상실감에 빠져 인간 본연의 선함, 신이 주신 (타고 난) 인간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축복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위력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려는 유혹을 받는다.

"나는 쓸모없어. 나는 가치 없어.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때마다 이런 유혹은 반복된다.

나는 항상 수많은 사건과 상황을 취사 선택하여 내 삶이 살 가치가 없고, 그저 (삶의) 버거움과 문제들과 갈등의 근원, 또는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착취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킨다. (중략)

그러나, 내 자신의 '아들'다움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주변의 어두운 목소리들은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 선함을 얻어야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려 한다. (번역 by 노바티오)
'The Return of the Progidal Son' by Rembrandt (1606-1669) (Image: Google Art & Culture 화면 갈무리)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평가와 판단과 의견에 휘둘려서 방향성의 기준과 목표 수준을 설정하게 되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과물 자체가 타고난 본인의 능력과 취향과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가슴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심리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시작되고, 타고난 능력에 의문을 가지며, 결국에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치기에 '행복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하든 무관하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본인 만이 할 수 있는 재능 하나쯤은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믿는다.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교육과 훈련은 어쩌면 타고난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행운이 있거나 현명한 사람어릴 적부터 타고난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 재능을 꽃피운다. 이와는 정반대로 본인의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 평생 동안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재능을 발견하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20대든, 50대든, 70대든 상관없다. '마침내 찾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시점' 자체가 본인에게는 운명처럼 다가온 '최대한 이른 시기' 라고 생각한다.




'성공 사다리의 끝인 정상'에 올라 세상을 바라볼 때 느낌은 남다르다. 스스로 열심히 살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성공의 기준'은 또한,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과 동일한 사다리를 굳이 오를 필요는 없는데, 세상은 나를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남들이 기를 쓰면서까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너도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공동체에 살고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 여긴다.

Antelope Canyon, the State of Arizona, USA (Photo by Paulius Dragunas on Unsplash)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이 오르는 사다리는 내가 올라가야 할 '생의 경로'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남의 시선과 사회적 평가, 타인과 비교하는 습관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순간, 본인의 진정한 재능과 행복한 삶의 사다리를 찾을 가능성이 시작된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남의 성공경로 만을 쫓아가는 삶보다는 남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하는 '내 자신 만의 행복한 경로'를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찾아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다소 지칠 수는 있어도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다.


최종결과가 완성되었든 미완성이든, 자신만의 기준으로 결정한 삶의 여정과 인생의 항로에서 스스로 체험한 여러 가지 경험 자체가 '성공'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인생의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기에 대체로 '선한 인생'을 살아간다. 남들 시선 아랑곳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 보았기에 그렇다.


<참고자료 References>


타이틀 배경 이미지: 'Stairs' (Photo by Yang Mia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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