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경쟁심을 버릴 때 비로소 찾아온다

'경쟁의식'은 자기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이 아니다

by 노바티오Novatio

일반적인 사람은 장점과 단점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을까? '사람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모두 다르다'라고 나는 이 질문에 종종 답한다.


내가 보기에는 상대방의 어떤 점을 '장점'이라고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볼 때, 장점과 단점 중 어느 분야가 먼저 눈에 들어오느냐? 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바라보는 사람의 생애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이다.

The joy at the dramatic return of the younger son in no way means that the elder son was less loved, less appreciated, less favored.

The father does not compare the two sons. He loves them both with a complete love and express the love according to their individual journeys. He knows them both intimately.

He understands their highly unique gifts and shortcomings. He sees with love the passion of his younger son, even when it is not regulated by obedience.

With the same love, he sees the obedience of the elder son, even when it is not vitalized by passion. (중략) The father responds to both according to their uniqueness.

- Henry J. M. Nouwe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 Darton, Longman and Todd Ltd (1922), Page 80-81

작은아들의 극적인 귀환이 가져다주는 기쁨이 (작은아들에 비해) 큰아들은 덜 사랑받고, 덜 인정받고, 덜 호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는 두 아들을 온전히 사랑하며, 각자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표현한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들의 매우 독특한 재능과 단점을 이해하고 있다. 아버지는 '순종'하는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의 (망나니 같은) 작은아들의 열정을 사랑으로 바라본다.

똑같은 사랑으로, 아버지는 열정적이지 않아서 다소 생기를 잃은 듯한 큰아들의 '순종'하는 자세를 바라본다. (중략) 아버지는 두 아들의 독특한 모습에 따라 대응한다. (번역 by 노바티오)
'The Return of the Progidal Son' by Rembrandt (1606-1669) (Image: Google Art & Culture, The Hermitag

보통의 사람이 그림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관점으로 개개인의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경지까지 도달하기에는 "넘어야 할 심리적 고통이 상당"하며, "기간도 상당시간 소요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옛 철학자 중 한 명인 '공자'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15살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고, 20-30대에는 뭔가를 성취하였다. 40대에는 사리 분별이 다소 가능했고, 50세 정도 되어서야 자연의 법리가 사람 사는 세상에도 적용되는 '천명(소명의식)'을 이해하였다.


60세 정도는 되어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었고, 70세에 비로소 '마음대로 살아도 세상의 규칙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보통의 사람은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터득한 삶의 노하우, 뭔가를 배우는 동안에 깨달은 진리 혹은 원리, 성공과 실패를 넘나들면서 터득한 인생의 희로애락 등이 한데 모여서 비로소 개인의 '핵심 역량'으로 진화한다.


타인을 바라볼 때, 그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아우르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관점을 조금이라도 이른 시기에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척이나 어리석었던 나의 젊은 시절에는 불가능했다.


중국의 '공자'도 세상 이치를 조금은 분별할 수 있는 시점이 40세였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원숙한 경지에 들어선 것은 60세로 추정되니, 나와 같은 범부에게는 더욱 말할 나위없이 힘든 과정이다.

Characters (Photo by Andrew Seaman on Unsplash)

어느 곳에서 생활하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은 어쩌면 행복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행복을 향한 출발선에는 같이 뛰어야 하는 10인 10 색깔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장점만을 바라보고, 그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서겠다는 경쟁심리로는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다. 그들의 장점을 가슴속으로 인정하고 존경할 때 비로소 내 자신도 그들과 조금이라도 같아질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 '자기 발전의 원동력'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감사'였다. 그들의 장점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나의 기질과 보잘것없는 재능에 스스로 감사할 때, 나는 비로소 한 단계씩 발전할 수 있었다.


존중과 감사가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에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그들 또한 나의 발전을 응원하고, 자신만의 탤런트를 나에게 공유해 주었다. 지금도 나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참고자료 Reference>

Title Background Image: : 'Self-Development', Photo by Protagonist on Unsplash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先秦兩漢 -> 儒家 -> 論語 -> 為政" (논어, '정치 Governance' 4번째 문장)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현대 중국어/*대만어) "孔子說:「我十五歲立志於學習,三十歲有所建樹,四十歲不困惑,五十理解自然規律,六十明辨是非,七十隨心所欲,不違規」" (한글 번역 by 노바티오) 공자는 말했다. "나는 15세에 배울 결심을 했고, 30세에 (뭔가에서) 성취를 이루었고, 40세에 혼란에서 벗어났고, 50세에 자연의 법칙을 이해했고, 60세에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었고, 70세에는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어떤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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