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경제학은 자본의 무한 팽창 만을 강조한다
Back in Ancient Greece, when Xenophon first came up with the term economics he described the practice of household management as an art.
Following his lead, Aristotle distinguished economics from chrematistics, the art of acquiring wealth - in a distinction that seems to have been all but lost today.
The idea of economics, and even chre-matistics, as an art may have suited Xenophon, Aristotle and their time, but two thousand years later, when Isaac Newton discovered the laws of motion, the allure of scientific status became far greater.
Perhaps this is why, in 1767 - just forty years after Newton's death - when the Scottish lawyer James Steuart first proposed the concept of 'political economy', he defined it no longer as an art but as 'the science of domestic policy in free nations'.
But naming it as a science still didn't stop him from spelling out its purpose.
- Kate Raworth, <Doughnut Economics>, Penguin Random House UK (2017), Page 32-33
고대 그리스에서 '크세노폰'이 경제학(economics)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했을 때, 그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다듬어진) '집안 관리' 관행을 하나의 '예술(art)'로 묘사했다.
그의 선례를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학'을 부를 축적하는 기술인 크레마티스틱스(chrematistics, 재화 획득술)와 구분했는데, 이 구분은 오늘날 거의 사라진 듯하다.
경제학을 넘어서 '크레마티스틱스'조차도 예술이라는 개념은 크세노폰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그들의 시대에는 적합했을지 모르지만, 2천 년 후 아이작 뉴턴이 운동 법칙을 발견했을 때 과학적 지위의 매력은 훨씬 더 커졌다.
아마도 이것이 뉴턴이 사망한 지 불과 40년 후인 1767년, (영국) 스코틀랜드 변호사 제임스 스튜어트가 '정치경제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을 때, 정치경제학을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자유 국가의 국내 정책에 관한 과학'으로 정의한 이유일 것이다.
그는 '정치경제학'을 '과학'이라고 명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목적을 명확히 밝히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번역 및 해석: 노바티오)
고대에 '경제학'은 '집안을 관리하는 기술'이었다.
플라톤(Plato)과 함께 소크라테스(Socrates)의 가장 중요한 두 제자 중 한 명이었고, 군 지휘관이자 역사가였던 '크세노폰(Xenophon)'의 저서 <오이코노미코스(Oeconomicus)>에서 경제학(Economics)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어원은 그리스어 '오이코 노미아(Oikonomia)'이다. 집(Home)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와 법과 규칙 혹은 관리를 뜻하는 노모스(Nomos)의 합성어이다.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오이코노미코스>에서 '경제학'을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농장을 경영하고 구성원을 돌보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삶의 '지혜이자 기술(Art)'로 정의했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Politics)>에서 '오이코노미아(가계 관리)'와 재화를 획득하는 기술인 '크레마티스틱스(Chrematistics)'를 엄격히 구분했다.
즉, '오이코노미아'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임에 반해 '크레마티스틱스'는 재화의 교환을 통해 화폐 자체를 증식시키는 이윤추구로 구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크레마티스틱스'는 오늘날 환율과 GDP(국내총생산액), 개인 자산관리를 중시하며 돈벌이(부의 축적)에만 몰두하는 '금융자본주의'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1600-1700년대에 아이작 뉴턴이 물리학의 법칙(운동 법칙)으로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자, 당시 지식인들은 '사회 현상'도 물리학처럼 딱 떨어지는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하기를 갈구했다.
이로 인해 '경제학'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시장 법칙'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기계적인 분석 방식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여기에 '과학'이라는 포장지를 씌우기 시작했다.
1767년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uart, 1712–1780)가 <정치경제학 원리(An Inquiry into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저술하며 경제학을 '과학(Science)'으로 격상시켰다. 그리스 고전 경제학 개념을 '가정'에서 '국가 관리' 개념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이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국가의 부(富)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탐구, 흔히 줄여서 "The Wealth of Nations">(1776)보다 9년이나 앞선 책으로 당시로서는 경제 문제를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제임스는 <국부론>을 서술한 아담 스미스와 달리 시장 경제 관리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책에서 제임스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제임스의 논리를 반대하며 시장 자율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국부론>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을 저술한 독일의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그를 "부르주아 경제학의 전체 시스템을 개괄한 최초의 영국인"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삶이 어려워지는 사회 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 흐름은 크게 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 하느님보다는 '건물주'를 더 높이 평가하며 선망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먹고살기 위해 부친의 장례식을 마치고 쉬지도 못한 채 새벽 배송 업무에 뛰어들었다가 고인이 되신 '택배 노동자'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다.
삶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무슨 수가 있어도 남들 다 자는 시간인 한 밤 중에 기필코 받아야 만 할까? 우리의 삶이 새벽에 물품을 받을 정도로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부터 실천해 보고자 한다. (애시당초 나의 폰에는 그 업체의 어플이 깔려있지도 않지만...) 새벽 배송을 시도하는 또 다른 택배업체와 서비스를 모두 거부하려고 한다.
나는 새벽에 물건을 받을 정도로 긴박한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모름지기 사람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휴식을 취하면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밤 12시 이전에는 잠을 자야 하고, 동이 트면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는 삶의 패턴이 여러모로 좋다고 여긴다.
경제학의 원래 의미와 목적이 '사람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Art)'라는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다시 되돌아 보는 시간을 홀로 가져 본다.
Title Background Image: 'Doughnut(Ilustration)' by Nigel Hoare from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