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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웨터 Nov 28. 2022

바람이 불어오는 곳 (2021.06)

소설습작 김현영수업


  금호동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상한 동네이다. 금호오거리를 기점으로 금호초등학교 방향으로는 옛날 건물에 낡은 간판을 단 상가들이 있고 그 뒤로 오래된 주택과 빌라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금호초등학교를 지나 금남시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에 촘촘하게 들어선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서울의 과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 거기서 방향을 조금만 틀어 신당동 방향을 바라보면 서울의 현재가 보인다. 신축 아파트 단지가 그 위엄을 뽐내며 떡 하니 들어서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부동산 열기를 다룰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 '마용성'의 그 '성', '성동구'의 대장주 아파트가 바로 이 아파트이다. 파크 아파트와 그 옆 상가 및 주택가는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파크 아파트가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저기에 있어야 하는데. 나는 왜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금호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모님은 금호역 바로 앞에서 떡집을 하신다. 금호동이 지금의 금호동으로 바뀌기 전에 나는 행복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처지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때는 비교 대상이 없었으니까. 금호동 아이들은 다 고만고만한 주택가에서 태어나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무엇보다 내 유년시절에는 민정이 항상 함께했다. 초등학교 5학년 첫날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친해진 친구가 민정이었다. 민정과 나는 사는 동네도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해서 금새 친해졌다. 둘다 형제가 없이 외동이었고 민정이네 아빠도 우리 집처럼 동네에서 작은 가게, 치킨집을 하고 있었다. 민정과 나는 같이 하교를 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을 같이 다녔다. 티비 <슬램덩크> 만화에 빠져서 같이 오후 5시50분 본방을 사수하며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당시 동네에 생기기 시작한 책, 비디오 대여점에 수시로 들르면서 같이 순정만화 책을 빌려서 돌려보고, 비디오도 보았다. 그렇게 초,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우리는 내내 붙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금호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왔다. 금호 5구역을 재개발하고 들어선 아파트의 집값이 치솟으면서 거기 살던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성동구에서 공공재개발을 대대적으로 준비하면서,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우리집은 금호 7구역, 민정이네 집은 금호 8구역으로 분류되었다. 민정과 나는 우리 둘 다 이제 곧 고층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겠다면서 두 손을 마주잡고 기뻐했다. 


  7구역에는 도로 초입에 상가들이 많아서 재개발 진행이 더디게 되었다. 조합장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주민들의 의견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았다. 상가 주인들은 재개발 진행하는 동안 본인들이 장사를 못해서 생기는 피해까지 보상해달라고 우겼고, 조합은 그 피해 보상까지 다 반영해서 일을 진행해줄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반면 주택들만 빼곡히 들어서있던 8구역의 재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진 게 집뿐이었던 사람들은 그 집을 통해서 어떻게든 부를 일궈 보려고 애썼다. 민정이네 집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이주비 문제로 끝까지 버텼지만, 오직 재개발 성공을 위해 똘똘 뭉친 8구역 조합원들은 중간 정도의 지점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8구역은 재개발 삽을 뜨기 시작했고, 민정이네는 공사 기간 동안 근처 빌라에 전세를 얻어 지냈다. 우리가 함께 진학한 여고는 8구역을 지나 언덕배기에 있었기에 우리는 매일 공사장 앞을 지나다녔다. 학교 운동장에 서면 공사장 앞 가림막 너머 풍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사람들의 추억과 피땀이 섞인 주택들을 허물어버리고, 철근 구조물을 세워 새로운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나와 민정이는 그 광경을 구경하며 마냥 신기해했다. 민정이네 아파트 공사를 지켜보면서 나는 마치 우리 아파트 공사를 지켜보는 듯한 착각에 자꾸만 빠져 들었다.


  고3이 되면서 민정이네 아파트는 드디어 공사를 완료했다. 공사 가림막 너머 아파트가 펼쳐지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언덕에 주택이 촤르르 늘어서 있던 동네는 온데간데 없고, 그 언덕을 다 깎아서 넓다란 평지 위에 고층 아파트들이 위상을 뽐내며 들어서 있었다. 얼른 구경하러 들어가려던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건 아파트 입구마다 높게 들어선 철문이었다. 철문에는 출입 카드를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걸어서 놀러 갈 수 있었던 민정이네 집은 더 이상 없었다. 민정이네 동 호수를 누르고 허락을 받아야만 겨우 아파트에 출입할 수 있었다. 철문이 내 마음속에도 덜컥 생긴 것 같았다. 나와 민정이가 그 철문을 사이에 두고 다른 세계에 살게 된 것만 같았다. 


  철문이 생기기 전만 해도 민정이와 나는 같이 하교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독서실을 다녔다. 그러나 철문이 생기고 난 뒤 민정이는 아파트 후문 계단을 통해 바로 학교를 오갈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교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또 민정이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라는 곳에 독서실이 생겼다고 했다. 민정이는 더 이상 나와 동네 낡은 독서실을 다닐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민정이와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쉬고 있는데 낯선 친구가 다가와 민정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8시, 카페테리아에서 보는 거 맞지?”

 민정의 단짝 친구인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민정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내가 다 알고 나도 함께 했었는데, 민정이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민정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내가 모르게 되었다. 

  “카페테리아?”

  내가 묻자 민정은 그제야, 

  “아, 커뮤니티 센터 안의 카페테리아 말이야.”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친구는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된 친구인데, 부모님들끼리 과외 선생님을 초빙해서 아파트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학 과외를 받는다고 했다. 왜 민정이는 그 과외를 시작하기 전에 내게 같이 하겠느냐고 묻지 조차 않았던 걸까. 다그쳐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못나 보일까봐, 그 동안의 우정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만 같아 두려워서 묻지 못했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 한탄스러운 마음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었다. 부글부글 끓었던 마음이 민정이네 아파트를 지나 우리집 앞에 다다르자 차가운 한숨으로 변했다. 내가 태어날 때와 똑같은 모습을 간직한 우리집. 파란색 대문, 회색 담벼락의 집. 이층에 넓게 창문이 나 있어서 햇볕이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해서 여름날 밤 거실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참 좋았던 우리집. 그러나 이제는 파크 아파트의 그늘에 가려 보잘 것 없이 초라해진 집. 여전히 7구역 재개발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나도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나도 더 좋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는데. 민정이는 저만큼 앞을 향해 가는데, 나는 여전히 이 공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한창 수능 공부에 열을 올려야 할 시기 6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손에 쥐어 들고 성적이 내려가서 낙담하며 부들부들 떨던 것도 잠시, 성적표를 그냥 가방 속에 던져 넣었다. 그동안 민정과 같이 독서실을 다니고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던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을 간다 한들 나는 지금의 이 삶에서 한 발짝도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았다. 1년 뒤에도 5년 뒤에도 나는 금호동 낡은 파란 대문의 집 문을 열고 있을 터였다. 매일 아침 오전 6시40분부터 떡집 문을 여는 부모님의 삶. 연기 폴폴 나는 찜솥을 힘들게 들고 왔다 갔다 하느라 매일 밤 허리 찜질을 하고 손목에 파스가 떨어질 날 없는 삶. 부모님이 그런 삶을 버텨주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만,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집에서 살면서 공부를 해봤자 부모님의 삶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못한 채, 떡집을 그대로 물려받고 이 금호동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미래에 대한 어떤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한숨만 나오고 점점 단념만 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버벅대는 사이 민정은 아파트 과외 덕분인지 본인이 노력한 덕분인지 성적이 날로 올랐다. 나는 민정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마음도 멀어졌고, 11월 수능날이 다가올 때쯤엔 형식적인 인사만 주고 받았다.

  

  "수능 잘봐, 화이팅."

  "그래 우리 같이 꼭 좋은 대학 가자."

  민정은 웃으며 말했고 나는 입만 웃었다.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서울의 사립대도 못 갈 성적이 나왔다. 고3 초반까지 반에서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나이기에 자존심 상하게 지방의 대학교를 갈 수는 없었다. 부모님을 졸라서 재수 학원에 겨우 등록을 했다. 민정이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전해 들었다. 


 *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티지. 재수 학원을 향하려다가 나는 학원 앞 카페로 숨어 든다. 재수 학원이 2월에 개강했을 때만 해도 나는 다시 의욕에 차있었다. 부모님이 힘들게 돈을 모아서 재수 학원비를 내주시는걸 봐서였을까. 아니면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그래도 민정이와 같은 대학생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매일 고등학교때처럼 교실에 앉아 정해진 과목 수업들을 듣고 저녁을 먹은 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나날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민정이 먼저 연락을 해온 건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학원 앞으로 가면 돼?" 

  굳이 이런 초라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대학생이 된 민정의 모습도 궁금하긴 해서 선뜻 만날 약속을 잡았다. 며칠 뒤 학원 저녁시간에 맞춰 나갔더니 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정을 보는 순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그녀가 신고 있던 살색 하이힐이었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구두가 있다니. 흔히 보던 검정색 구두와는 차원이 달랐다. 저렇게 매력적인 색감의 구두라니. 하이힐 위에 단단히 서 있는 민정의 모습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작년과 그대로 운동화를 신고 학원을 왔다갔다하는 동안, 민정은 세련된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멋쟁이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학원 근처에서 가장 맛있다는 파스타 집을 갔지만, 파스타가 유난히 딱딱하게만 느껴졌다. 민정은 웃었고, 나는 점점 마음이 삐뚤어져갔다. 나와 민정은 함께였는데 우리는 같은 처지였는데 왜 이렇게 달라져 버린 걸까. 


  다음날 나는 학원 앞까지 갔다가 한숨을 쉬고 발길을 돌렸다. 이깟 공부 해서 뭐해.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나는 결코 민정이처럼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원해도 철문 안 아파트에서 살 수 없었던 것처럼. 카페에 들어서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잠을 잤다. 다행히 오전의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 시간에 학생과 직장인들이 조금 몰리긴 했지만, 그 시간만 지나면 또 조용해졌다. 나는 카페에서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침마다 눈 뜨기 싫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 나아질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하루, 보내서 뭐해. 처음엔 학원가는 척 나가서 카페라도 가다가, 나중엔 학원에 가는 시늉조차 안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어디 아프냐고 물었지만 내가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자 크게 당황해 했다. 그 동안 대학 진학에 실패한 것 말고는 크게 속 썩이지 않던 우리 딸이 왜 이러지.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일주일, 이 주 그리고 한 달이 지나도 내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부모님은 나를 기어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언제부터 이런 기분을 느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정확히 대답했다. 파크 아파트가 생기면서부터요. 부모님은 옆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방 받은 약을 먹기 시작하니 그래도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절망으로 치닫기만 하던 생각의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힘을 내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부모님이 큰 주문이 들어와서 일손이 필요하다며 좀 도와달라고 했다. 오전부터 나가서 일을 같이 하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여름날 가만히 있어서 푹푹 찌는 날씨인데 떡이 든 찜솥과 씨름했더니 몸이 녹아 내릴 듯 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를 사서 원샷 했더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몸 속에 알코올이 쫘악 흡수되는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그냥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내 앞에 빨간 외제차가 멈춰 섰다. 민정의 살색 구두를 처음 봤을 때처럼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새빨간 색이지만 과하지 않고 톤 다운되어 딱 적당한 정도의 채도를 가진 색깔의 차였다. 태어나서 그렇게 작고 귀여운 차는 처음 보았다. 자동차 전조등이 아주 동그랬는데 마치 어린애 눈동자 같았다. 늘상 보던 직선의 라인이 아닌 곡선의 라인을 가진 자동차였다. 자동차 문도 항상 내가 봐왔던 4개가 아니라 2개였다. 그 멋진 자동차에서 젊은 여자가 문을 열고 내렸다. 비상등을 켜놓은 것으로 봐서 편의점에 잠시 뭘 사러 온 것 같았다. 나는 그 여자가 마치 미래의 민정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데 취직을 하고 결혼도 잘해서 대낮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민정. 


  문득 나는 한 번만 민정이가 되어보고 싶었다. 민정이가 누리는 것을 나도 누려보고 싶었다. 딱

한 번만 타보고 싶었다.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가진 자의 여유, 남들은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가진 자만 느낄 수 있는 우월함.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른다. 술의 힘일까, 아니면 우울의 늪에 빠져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자의 마지막 객기였을까. 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생각할 새도 없이 내 발은 차를 향해 달려가고 내 손을 차 문을 열고 있었다. 얼마나 급히 자리를 떴는지 차 키도 그대로 꽂힌 채였다. 나는 그대로 시동을 키고 엑셀을 밟았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어느 순간 무서움을 넘어서서 희열을 느꼈다. 지긋지긋한 금호동을 외제차를 타고 돌아보는 기분이 새로웠다. 이대로 계속 달리고 싶었다. 나도 더 나은 곳으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때 어디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서 옆을 쳐다보니 조수석에 왠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강아지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자다 깼는지 울부 짖고 있었다. 나의 행복한 여정에 강아지 따위가 방해하다니. 나는 전화기를 들어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강아지 좀 데려가세요! 제가 운전을 좀 해야 하거든요. 저는 저 쪽으로 빨리 가야 해요. 바람이 불어오는 저 쪽이요.”



소감 : 처음으로 상상력을 많이 동원해서 쓴 글. 구라치는 재미를 처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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