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습작 서유미수업
3월 중순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이렇게 조용한 오전이 지나가는 건가 싶던 11시쯤 팀장이 나를 불렀다.
“김 대리, 이번 인사이동 때 홍보팀으로 가게 될 것 같네.”
“네? 홍보팀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팀이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일하는 D 회사의 인사는 개인의 의사 또는 희망 직무와는 크게 상관없는 통보 식의 인사였다. 나에게도 역시 선택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게 과연 좋은 기회인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입사 이후 5년 동안 M 사업 부문 A 해외영업팀에서 근무해왔다. 매일, 매달, 매년 반복되는 업무에 이골이 나있던 참이라 새로운 업무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홍보팀? 거기 팀장이 누구더라? 잠시 생각하는 사이 팀장이 말했다.
"거기 팀장은 박 팀장이라고 새로 팀장이 되신 분인데 여자라고 하더라. 여자 팀장 밑에서 일하면 혹시 또 잘 맞을지도 모르지."
아, 홍보팀 박차장이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한 모양이었다. 박 차장. 오고가며 마주친 적은 있었다. 회사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잠시 인사를 나눴었다. 이번에 홍보팀에 경력직으로 새로 오신 분이라고 했다. 동글동글한 인상의 여자였다. 짧은 단발의 머리가 턱선까지 이어져 동그란 얼굴, 동그란 눈과 함께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고, 둥근 안경테가 지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그런 그녀가 팀장인 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게 ‘여자’ 팀장, ‘여자’ 선배에 대한 기대 따위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여자 팀장이라고 해서 더 걱정이 됐을 뿐이었다. 그 동안 여자 선배들은 내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없으니만도 못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처음부터 내가 여자 선배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던 건 아니다. 오히려 회사에 입사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층에 여자 선배가 몇 명이나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D 회사의 주요 사업 부문 중 하나인 M 사업 부문은 여의도동에 있는 H타워 9층에 위치해 있었다. 1970년대에 설립된 회사가 공장 증설, 합병 등을 통해 커지는 동안 M 사업 부문도 차츰 차츰 커져서 내가 입사한 해에는 약 80명 정도의 인원이 9층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다. 처음 M 부문으로 배치 받고 인사 드리러 간 날, 유난히 여자 직원이 많아서 놀랐다. 그것도 캐쥬얼한 복장 차림의 여자 직원들이.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9층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여자 직원들은 해외 영업 부서의 선적 서류를 담당하는 사무직 직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많은 여자 직원들 중 나처럼 공채로 들어온 직원들은 누가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다들 비슷한 차림을 하고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은 또 비슷하게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들을 하고 있어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며칠이 걸려서야 겨우 알게 된 건 M 사업 부문의 총 7개 팀 중 여자 공채 직원은 B 해외영업팀 윤 대리, 기획팀 민 대리, 이 과장 이렇게 세 명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A 해외영업팀에는 여자 공채 선배가 아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해 본사에 채용된 신입 사원은 총 13명이었는데 그 중 여자는 3명이었다. 제조업 특성상 본사보다 공장이 더 중요한 회사였다. 공장이 잘 굴러가고 거기서 제품이 나와야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공장을 가진 회사답게 직원들도 대부분 남자였고 조직 문화도 남성 중심에 군대 문화였다. 그런 남성 중심의 회사에서 얼마 안 뽑은 여자 직원에 내가 뽑혔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남자들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아왔다. 대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가 여자라서 차별을 받는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입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여자라서 힘들구나 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취업 시장에서 내가 가진 스펙 중 가장 나쁜 조건이 ‘여자’라는 것이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제조업 회사들은 본사 채용 인원이 보통 한자리 수 정도로 턱없이 적었다. 20대 중반, 영문학과를 전공한 문과 출신의 나는 공장에 엔지니어로 지원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좁은 관문의 본사 관리직에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여자’는 더더욱 적게 뽑는다고 했다. 그래도 이 취업 관문을 겨우 통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입사하면 당연히 회사에 사내 어린이집도 있고 각종 육아 지원 제도가 잘 갖춰져 있을 줄 알았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남녀평등이 당연한 시대인데 그 정도 제도들은 당연히 마련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내가 여자선배들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떻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던 건 그들은 일과 여자로서의 삶, 결혼, 출산, 육아 등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M 사업 부문에 공채로 뽑혀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B 해외영업팀 윤 대리는 30대 중반이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의 취향이 확고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도 점심 메뉴에 대한 취향이. 거꾸로 말하면 다른 팀원들과 잘 융화된다기보다 본인 의견이 확고한 타입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기획팀 민 대리는 그 팀의 다른 남자 직원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획팀 남자 직원들은 남자 신입들이 입사할 때마다 군기를 잡고 기강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런 남자 직원들과 여자인 민 대리가 잘 맞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1년 뒤 퇴사하고 자기 가게를 시작한다. 마지막 기획팀 이 과장은 그 어렵다는 공장 엔지니어 출신의 여 과장이었다. 기획팀의 주요 업무가 국내 영업팀, 해외 영업팀, 공장, 연구소 등 여러 부문의 의견들을 모아 생산 스케쥴을 짜고 조율을 하는 것이었는데, 매일 전화기 앞에서 수많은 전화에 시달리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녀는 같은 팀이었던 사람과 사내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해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리고 육아휴직이 끝나는 1년 뒤, 놀랍게도 사직서를 냈다. 자기 애기는 자기가 키우고 싶어서라고 했다.
결국 회사에서는 내가 본받거나 배울만한 여자 선배가 딱히 없었다. A 해외영업팀장도 여자 사무직 직원만 많이 데리고 있었지 여자 대졸 공채 직원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나를 어려워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는데 그 모습에서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저러는 구나를 알 수 있었다. 팀장 뿐만 아니라 다른 대리, 과장들도 비슷했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듯 했으나 결국 그들에게 나는 ‘여자’ 후배였다. 그들은 내게 큰 관심이 없었다.
입사한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우리 팀에 경력직으로 새로운 여자, 현 과장이 왔다. 우리랑 같이 일하던 상사 직원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우리 회사로 경력직 입사를 했다. 우리 회사가 제품을 생산하고 상사는 중간에서 그 제품을 받아 바이어에게 판매하여 바이어에게서 커미션, 수수료 등을 받아 돈을 버는 구조였다. 우리 제품을 사고자 하는 상사 및 바이어들은 많았고 제품 생산량은 한계가 있었기에 우리 회사가 갑의 위치에, 상사가 을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상사 직원이었던 시절에는 아직 사원인 나에게도 굽신굽신하던 그녀가 같은 팀으로 오게 되다니 상황이 조금 의아했다.
그녀는 5살된 여자 아이의 엄마였다. 회식 자리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는 친한 척을 하며 자기 아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요즘 자기 아이 옷 입히는 재미로 산다며 이렇게 저렇게 코디한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길래 예의상 “어머 귀엽네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정신 없는 여자’ 였다. 가방에서 뭐 하나 꺼내는 데도 온 가방을 뒤집어서 겨우 찾아내는 모습, 진한 눈 화장 뒤에 감춰진 약간은 초조한 눈빛, 과도한 제스쳐들이 딱 그랬다.
그래도 아이 엄마인 영업 사원이 전무했던 우리 사업 부문에 그런 여자 선배가 한 명 오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즈음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아이 계획을 세우고 있던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 엄마니까 뭔가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중 그녀가 불쑥 물었다.
“김 대리는 아기 언제 가질거야? 나 요즘 둘째 가지려고 노력 중이잖아.”
아이 계획은 부부만의 일이므로 묻지 않는 게 제일 예의 바른 일이겠으나 뭐 묻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 저 멘트는 뭐지? 저 말은 도대체 왜 붙이는 건지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별 생각없이 하는 말일 거라고 애써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게 아이 계획이 잘 되어가는지 또 묻더니 둘째가 잘 안 생겨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또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은연 중에 내게 임신에 대해 눈치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팀에서 두 명이나 같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팀에서 싫어할 수도 있으니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인 것 같았다. 어이가 없었다. 임신, 출산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일이 아니던가. 그녀가 뭐라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눈치를 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좋은 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육아 휴직을 필요에 따라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도록 연장 추진 중이라고 했으며, 남자들도 의무적으로 육아 휴직을 1개월 이상 쓰도록 했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남자 직원들은 딱 1개월만 육아 휴직을 썼다. 회사 어른들은 그런 제도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팀장이 남성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전 반대에요. 그렇게 강제해놓으면 꼭 쓰지도 않아도 되는 사람도 써야 하잖아요.”
내 귀를 의심했다. 저 사람이 같은 여자 직원이 맞는지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여자들이 회사 다니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어서 쩔쩔 매는 이 시대에 저런 시대 역행하는 발언을, 그것도 같은 여자인 사람이 하다니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를 낳고 출산 휴가 딱 3달만 쉬고 바로 복귀했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육아휴직 자체가 힘들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친정집 근처에 살아서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다 돌봐 주셨다고 했다. 지금은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편이라 저녁에는 남편이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본인이 아이를 전적으로 돌본 기간도 적었고, 대부분 도움을 받았으니 그녀에게 육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큰 관심사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 같은 여자로서 육아의 고충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회사는 그녀를 여성 친화 정책 TFT 팀원으로 임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육아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녀가 단지 아이 엄마라는 이유 하나로.
그녀는 여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필사적으로 회사에 매달렸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회식 자리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전화기에는 언제나 남편 이름이 떴다. 일과 육아의 양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그녀가 택한 길은 일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열심히 뛰어다니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녀가 왜 뛰어다니는지 몰랐다. 딱히 급한 일이 없는데도, 알고 보면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그녀는 항상 그렇게 요란을 떨며 뛰어다니고 열심히 일하는 척을 했다. 그게 그녀 스타일이었다. 윗분들은 그런 그녀를 좋게 보았고, 나는 그런 그녀가 인정 받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매번 메신저로 기초적인 질문을 하고 또 하는 그녀.
“전산에 고객코드 입력하는 코드가 뭐였더라?”
“20피트 컨테이너에 플라스틱 팔레트가 몇 개 들어가지?”
며칠 전에도 물었는데 똑같이 묻는다. 도무지 기억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과장으로 두고 일한다는 건, 그녀에게서 뭔가 배우면서 상사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일한다기보다는 그녀를 모시면서 하나하나 챙겨드리면서 일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그녀에게서 정이 뚝뚝 떨어져나갈 즈음 팀 이동 이야기가 들려온 것이다.
*
홍보팀은 건물 11층에 있었다. 인사 발령이 뜨자마자 홍보팀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동그란 얼굴의 유순한 인상의 박 팀장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바로 수첩을 들고 회의실로 가서 개인면담을 잠시 했다. 어떻게 홍보팀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그 동안의 회사 생활은 어땠는지 등등. 홍보팀은 어쩌다가 홍보팀에서 나와서 영업팀으로 오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과 트레이드하는 차원에서 갑자기 발령받아 오게 되었고, 업무는 어렵지 않은 업무를 했으면 좋겠으며, 그 동안 회사 생활은 이상한 여자 선배 때문에 힘들었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좋은 말만 했다. 그러다 면담의 마지막 팀장은 나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여자라고 아름다우려고만 해서는 안돼요.”
나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무 의외의 말이라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마침 나는 새 팀으로 인사 드리러 간다고 평소 잘 안 입던 원피스를 챙겨 입었었다. 아이보리색에 레이스가 잔잔하게 수놓아진 원피스였다. 지극히 여성스러운 의상을 입고 앉아 있었던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나중에서야 그것이 불현듯 나온 그녀의 진심이란 것을 깨달았다.
홍보팀에서 나는 전임자가 하던 업무를 대부분 맡아서 하게 되었다. 주요 업무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이었다. 문제는 그 업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다른 팀으로 이동을 한 전임자 외에 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팀장도 아무리 신임 팀장이라고는 하지만 홍보팀에 3년 넘게 차장으로 있었는데도 자기 업무 외 팀의 업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오로지 전임자에게 끊임없이 전화해서 묻고 사내 메신저로 묻고, 그가 저장해놓은 팀 내 공유폴더 파일, 메일들을 암호 해독하듯이 파악해가며 일을 겨우겨우 해나갔다. 내가 그 동안 있었던 해외 영업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영업 팀장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우리에게 지시 사항을 명확히 내려주었다. 그런데 지금 홍보 팀장은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 상황을 좋게 에둘러 말했다.
“대리님도 저도 이 업무가 처음이니까 함께 배워 나가봐요.”
그 말을 처음에는 믿었다. 새 업무에 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그녀는 갑자기 나에게 전임자가 하던 다른 업무도 맡기려고 했다. 아직 보고서 작성이 끝나지도 않았고 나는 지금 당장 주어진 일만 처리하기 급급했을 뿐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큰 그림이 잘 안 그려져서 막막하던 찰나였는데, 그녀는 막무가내로 일을 더 하라는 식이었다. 6명뿐인 팀원이었지만 팀 내에서 내가 맡은 업무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나 혼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남겨진 상황에 매일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는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못하겠다고 버텼다. 내게 일단 주어진 주요 업무 보고서 작성을 잘 마무리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다른 업무까지 맡게 되면 너무 버거울 것 같아서 겁이 나기도 했다. 팀장은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뒤 악몽은 시작되었다.
어느 날 팀원들, 팀장, 상무님이랑 같이 점심을 먹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중 요즘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무님이 말했다.
“우리 때는 ‘하면 된다’라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일 다했는데 말이야.”
팀장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거들었다.
“그러게요, 요즘 직원들은 ‘되면 한다’ 라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만 일하려고 해서 큰일이에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팀원들도 저게 윗분들이 할 소리냐며 얼굴들이 일그러졌다. 앞에서는 젊은 팀장으로 깨인 사고를 가진 상사인 척 했었는데 알고 보니 옛날 사고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꼰대였다.
그 와중에 나는 임신을 했다. 결혼 1년만의 일이었다. 바라던 아이였던 만큼 기쁨도 컸으나 회사에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를 계속 엿보다가 어느 날 팀 회식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 팀장은 특유의 그 하이톤 목소리로 기뻐해주었다. 회식 장소에 같이 들어서서는 팀원들에게 먼저 나의 임신 소식을 알리며 축하해주었다. 팀장으로서는 팀에 결원이 생기고 그 보충도 해야 하고 하니 신경 쓸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달갑지 않을 소식일 것 같았는데 그렇게 기뻐해주니 그 간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진짜 사건은 얼마 뒤에 터졌다. 세 달에 걸친 보고서 작성이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인쇄만을 남겨놓고 오탈자 등 실수가 없는지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었다. 팀 주간 회의 때 각자 맡은 업무의 진행 상황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내가 팀장에게 혹시 보고서 한 번 보셨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매번 말할 때마다 “이따가 볼게요.” 라고 말만 하고 피드백 한 번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유순한 표정을 거두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내가 봤을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거 아니죠?”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본 모습을 보았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차가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자기보다 부하 직원을 잘 대해주고 존중해줌으로써가 아니라 무시함으로써 자기 자존심을 세우는 그녀의 모습을.
그 후로 그녀는 본격적으로 자기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자기 모습을 숨기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윗분들에게는 여전히 과장된 말투와 표정으로 입 바른 소리를 하며 아부하기 바빴으나 이제 부하 직원들에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팀장에게 보고하러 갈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퇴짜를 맞았다.
“그거 급한 거에요? 아니면 나중에 다시 와요.”
팀장에게 팀원의 보고보다 더 바쁜 일이 뭐가 있는지 당최 모르겠으나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고를 하러 가도 가관이었다. 태어나서 나를 그렇게 무시하는 표정을 나는 처음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어떤 사람도, 학창 시절의 선생님도, 친구도, 선배도, 회사 상사도 그런 표정으로 나를 대한 적은 없었다. ‘니가 도대체 뭔데 나에게 와서 이런 보고를 하는거지?’ 라는 표정. 내가 무슨 벌레만도 못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 그녀에게 보고를 하고 오면 항상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팀장이니까 당연히 보고 드리고 진행을 해야 돼서 드리는 건데 이건 뭐 보고 한 번 드리기도 어렵고 보고를 드린다 해도 그녀 특유의 무시하는 표정을 매번 마주해야 했다. 일의 효율은 당연히 떨어졌고 팀원들의 사기를 바닥을 쳤다. 나는 점점 출산 휴가 들어가는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출산 휴가 들어가기 두 달 전,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신입 사원이 왔다.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도 팀장은 더 이상 나에게 제대로 된 업무를 주지 않고 신입 사원에게 업무 인수 인계 잘하라고만 했다. 업무 인수 인계도 길어야 한 달, 짧으면 일주일이면 될 일인데 그걸 왜 남은 기간 동안 하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임산부인 나를 배려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임산부인 내가 못마땅해서 일을 안 줌으로써 나를 엿 먹이려고 그러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게 헷갈리던 차에 팀 주간 회의가 있었다. 회의 시간에 맞추어 회의실로 자리를 이동하려는데 팀장이 말했다.
“김 대리는 안 들어와도 돼요. 우리 이제 앞으로의 업무 계획 짜고 업무 분담할 건데 김 대리는 굳이 들어올 필요 없어요.”
나는 아직 출산하러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그때 알았다. 그녀는 내가 이 팀에 온지 얼마 안되어 임신을 하고 자리를 비우게 된 게 처음부터 싫었던 거였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여자 팀장이어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나를 밀어내고 싫어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를 벅벅 갈며 다짐했다. 육아 휴직 1년 후 절대로 다시 이 팀으로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다시는 네 밑에서 일하지 않겠노라고.
*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이 지난 뒤 나는 회사에 복직 관련하여 문의를 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인사팀 담당자는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우리 회사는 원래 팀 복귀가 원칙입니다.”
박 팀장을 다시 보기 싫어서 임신 기간에도 그토록 스트레스 받아가며 발버둥 쳤는데, 결국 그 밑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며칠을 멍한 상태로 보냈다. 그래도 그녀가 아무리 싫다 해도 그녀 때문에 내 회사 경력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복직 한 달 전 회사에 복직원도 낼 겸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 겸 찾아갔다.
1년 3개월만에 보는 박 팀장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특유의 온화한 척 친근한 척 하는 미소를 내게 지어 보였다. 내가 없는 그 동안 팀에서는 회사 광고도 하고 홍보 영상도 새로 찍고 엄청 많은 일을 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서로 좋은 이야기만 오가던 찰나 그녀가 훅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 팀으로 복직하면 야근도 많고 일도 엄청 많을 텐데 애기 키우면서 괜찮겠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나는 김 대리가 걱정돼서 그러지. 일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바쁠텐데 우리 팀은 너무 버거울 것 같아서 말이야. 전에 있었던 영업팀으로 가는 건 어때?”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나야 그녀와 같이 일하는 것만 피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지만 애써 그 마음을 숨긴 채 팀장님 뜻이 정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지금 상황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는 표정이 자꾸만 지어졌다. 그렇게 다시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그녀였는데 내 마음은 왜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걸까. 안 그래도 앞으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는 엄마 역할 다하면서 빡빡하게 사는 게 걱정인데 그걸 핑계로 팀장이 나를 밀어내서 그런 걸까. 내 자존심 같아서는 야근 까짓것 다 할 수 있다고 애기 봐주시기로 한 분과 잘 얘기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팀 이동이라는 너무나 환영할 만한 카드를 들고 나를 꼬드겼기에 내 자존심을 숙이고 그녀에게 굴복한 게 마음이 상해서인가. 같은 여자로서 당신이 여자인 후배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여자끼리 서로 도와줘도 모자를 판에 어떻게 당신이 여자 후배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냐고 차마 말하지 못해서인가.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나는 이런 결말을 원한 건 어쩌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그녀를 싫어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내심 그녀에게서 언젠가 인정 받고 존중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지하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