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 밥

by 이마음

따스한 햇살과 솔솔 부는 바람이 마음까지 간질이는 날이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공원이나 잔디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얼굴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드라마에서도 야외로 나들이를 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김밥’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김밥을 참 좋아한다.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면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그 전날 준비해 둔 김밥 재료로 윤기가 자르르한 김밥을 말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아이는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도 하기 전에 엄마에게 간다. 아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엄마보다도 옆구리가 터졌거나 재료들이 삐쭉 나온 양쪽 꼬투리 김밥이다. 그것은 도시락 통에 나란히 줄 세워져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설레는 마음을 품은 아이의 입 안으로 들어가고 네 식구의 풍성한 아침 끼니가 된다.

내 어린 시절에도 밥알이 김을 찢고 비어져 나올 만큼 통통한 김밥을 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부엌 바닥에 앉아서 홀로 김밥을 말고 있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그러나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고 몸이 약했던 엄마가 소풍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싸 준 도시락이 늘 색색의 재료들을 품고 동그랗게 말아진 김밥은 아니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그날은 몇 주 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소풍날이었다. 지금은 소풍이라는 말보다는 현장학습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지만 봄과 가을이면 소풍을 갔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날보다도 그날은 더 일찍 일어났지만 피곤함도 잊은 채 재잘거리며 교실에서 친구들과 소풍 장소로 출발하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과 과자, 음료수가 들어 있는 가방을 열어 보이며 무엇을 싸왔노라 자랑하는 친구도 있었다.

줄줄이 반 별로 한 사십 분쯤 걸어 어느 산으로 간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시절에는 5학년 때 극기 훈련, 6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그 두 행사가 아니면 버스를 대절해서 멀리 가는 일은 없었다. 대모산으로, 석촌호수로 걸어서 소풍을 갔던 기억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걷기에는 조금 긴 거리였지만, 소풍이라는 것은 그 거리를 가깝게 하고 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아마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은 풍선처럼 가볍고 힘든 것도 잊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재주가 있나 보다.

소풍 장소에 도착하면 늘 하는 것은 보물 찾기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도시락 먹는 시간. 나도 손수건으로 꼭 묶어 놓은 엄마의 마음의 온기가 남아 있는 도시락을 여는 시간이 기다려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의 도시락 통은 하나로 충분했지만 내 것은 도시락 통과 다른 무엇이 더 있었다. 반 친구가 가지고 온 돗자리 한 귀퉁이에 앉아서 누가 볼세라 조용히 열어본 양은 도시락 통 속에 있던 것은 달랑 밥뿐이었다. 그리고 도시락 맛김과 참치 캔 하나. 다른 아이들은 여러 재료들을 밥과 김이 둘러싸고 있는 ‘김밥’이었지만 나는 흰 것은 밥이요, 검은 것은 김인 김 따로 밥 따로 ‘김, 밥’이었다. 그런 도시락이 너무나 부끄러워 도시락 뚜껑도 채 다 열지 못하고 먹다가 친구 엄마가 주신 김밥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반 대표 엄마가 현장학습 당일에 단체로 김밥을 주문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아이들 모두에게 음료수와 함께 점심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에는 너도나도 자기 엄마가 만든 김밥 중에서도 아주 맛있어 보이는 김밥을 골라 선생님께 선보이기도 하는 풍경이 정겨웠다. 그리고 김밥 안에 재료들도 집집마다 달라서 자기 엄마의 김밥을 자랑하며 하나씩 바꿔 먹기도 하였다. 내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김밥은 소풍의 들뜬 마음을 더해 주는 것, 엄마의 든든한 사랑, 특별하고 풍족한 한 끼 이상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 예전보다 더 약해지셨다. 한때는 바쁜 시간에 쫓겨 길을 걸어가며 김밥으로 한 끼를 채울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끼니를 잘 챙겨 먹고 다니라는 엄마의 걱정 섞인 말씀에,

“엄마, 내가 어렸을 때 김밥을 못 먹어서 이제야 실컷 먹나 봐.”

하며 투정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가끔

“오늘은 무엇으로 한 끼를 때우지?”

라고 하시는 엄마의 한 끼를 위해 포장해 온 김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곤 한다. 함께 김밥을 먹으며 그때의 소풍 도시락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다. 김, 밥을 싸 줄 수밖에 없었던 힘들었던 시절의 엄마는 이제 김밥을 드시며 웃는다. 엄마의 그 웃음은 모든 힘든 시간을 다 견뎌내고 현재를 맞이한 보상이다. 그래서 색색의 재료를 감싸 안고 있는 김과 밥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마치 김밥은 자식들을 품에 꼭 안으며 살아온 엄마로서의 시간들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다. 절대 옆구리가 터질 일이 없는 김밥이 곧 엄마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김밥을 먹었다. 이제는 참치 김밥, 치즈 김밥, 돈가스 김밥 등 다양한 재료를 넣은 김밥을 선택해 먹어서 그런지 김밥은 늘 새롭고 맛있다. 한결같이 맛있음을 느끼게 하는 김밥을 먹으면서 어렸을 적 소풍 장소에서 김 따로 밥 따로 김, 밥을 먹고 있는 어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날이 있다. 그 장면에는 몸이 편찮으셔서 미처 김밥 재료를 준비하지 못하고 김, 밥을 싸 주어야 했던 엄마의 모습도 겹쳐진다. 이제는 누가 볼까 창피해서 도시락 뚜껑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밥을 먹었던 나의 모습보다 김, 밥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시렸을 엄마의 모습이 더 선명하다. 오늘은 모든 재료를 품에 안은 김밥처럼 내가 엄마를 안아드려야겠다. 삐죽삐죽하게 나온 꼬투리 김밥 같은 나지만 엄마는 늘 그렇듯이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웃음으로 화답해 주실 것이다. 윤기가 자르르 한 프리미엄 김밥도 부럽지 않은 웃음 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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