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그랬을까.
나는 어렸을 때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기억할 일이 많지 않아서인지,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게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떤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기억하고 있는 일화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것 같다. 크게 머리를 다친 일도 없는데 일화 기억이 좋은 편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뒤로 꽝 넘어진 적이 있었고, 눈길에 뒤로 넘어졌던 적이 있긴 한데, 잠깐이라도 정신을 잃었다거나 그런 것 없이 넘어지자마자 너무 아프고 띵하긴 했어도 바로 일어났으며, 이후 다른 증상이 없어서 병원 치료를 받지는 않았으니 머리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주의력 결핍으로 주의를 받거나 문제가 있었던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 성적이 아주 안 좋았지만 재수를 해서 수도권 2년제에 입학한 후, 학업에 재미를 느끼고 4년제 대학으로 편입, 장학금을 받기도 하며 도서관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오곤 했다. 또한 이후 대학원 진학도 했으니, 머리가 뒤늦게 트이는 학생이었던 것은 맞으나, 기억력이나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암기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기술 시험도 동차합격하기도 하였으니 암기력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떤 일화나 행동, 장면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특히 미취학 시기 때의 단편적 기억은 나의 기억인지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것을 바탕으로 생성해 낸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에 친구와 전화 통화하다가 몇 명이 함께 국내 여행을 당일치기로 했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그 일행들 중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친구는 "나도 갔었잖아."라고 이야기해서 "어? 그런데 네가 있었던 기억이 왜 안 나지?" 하며 멋쩍어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비교적 최근의 일도 단편적인 장면이 기억은 나는데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위와 같은 상황이 또 생기곤 한다. 물건을 놓은 위치를 헷갈리거나 해야 할 일을 까먹고 늦게 하는 상황은 있어도 아예 잊어버리는 적은 없으니 성인 ADHD나 인지 장애도 아닌 것 같은데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었다. 아빠는 회사를 갔을 테고, 엄마는 없을 리가 없는데 없었다. 학교는 가야 했다. 군포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늘 만원인 8번 버스를 타고 기찻길을 지나 학교 길 건너편에서 내려서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 길 건너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없어서 무단횡단이 많았었는데, 동네 남자아이가 등교하다가 차에 치여 죽은 후에야 횡단보도가 생겼다. 나는 2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그 횡단보도를 건넌 것은 손에 꼽는다.
어쨌든 당시 군포읍 당정리에 살던 8살 나는 엄마가 없어도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가야 했지만 버스비는 없었다. 나와 오빠는 버스비도 없으면서 왜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정류장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라도 한 걸까. 당연히 버스를 타지 못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걸어왔는데 구멍가게 할머니가 나를 불러서 캐러멜과 버스비로 동전을 몇 개 줬다. 그 와중에 오빠 버스비도 달라고 해서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지만 오빠는 없었다. 나는 8번 버스에서 서서 창밖을 보며 학교로 가던 중 걸어가고 있던 오빠를 발견했다. 오빠를 불러도 돌아보지 않아서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달라고 했고, 뾰로통한 표정의 오빠와 가겟집 할머니가 준 캐러멜을 까먹으며 걸어서 함께 학교에 갔다. 1교시가 끝난 후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지금 그 상황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그냥 있었을 것이다. 학교생활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엄마도 없고 버스비도 없는 상황에서 8살 꼬맹이가 학교를 가다니, 학교는 가야만 하는 곳이니까 그냥 갔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은 그렇게 끝이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후 조금 더 커서 엄마한테 그때 왜 엄마가 없었던 거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 당시에 서울에 있는 원자력 병원에 다녔는데 병원에 급히 가느라 그랬나, 하며 정확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엄마 본인도 그 상황이 기억이 잘 안 나실 거고,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병원에 가야 했더라도 애들을 데리고 가거나 학교에 보내고 가거나 아니면 다른 이에게 부탁하고 가거나 했어야지 쪽지도 안 써놓고 왜 그랬지, 하셨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에도 엄마는 아팠다. 아마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시간에도 엄마는 아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