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자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기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타인과의 정서적 공감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솔한 소통과 정서적 공감을 위해서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일기는 솔직한 자기 고백을 가능하게 한다. 『교환일기』(오미경, 푸른책들, 2005)는 일기라는 장치를 설정하여 소통을 시도하게 된다. 서로 합의된 마음 엿보기인 셈이다. 일기를 통해 현실을 인정하며, 자기를 바로 보게 되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만의 비밀을 소통하게 됨으로써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다른 이에게도 고백의 기회를 제공하게 하는 특징을 지닌 작품이다. 말하자면 일기가 곧 자기와의 내적 소통, 그리고 관계 형성을 위한 소통의 공간이 된 것이다. 마치 자기 고백이 점염되듯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교환일기』는 6학년 강희와 민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서술된다. 강희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아빠 회사의 부도로 작은 아빠네 집에 살게 되는데 아빠 사업이 부도난 것, 집도 없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사실을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강희의 발톱엔 그예 염증이 생기고 말았다. 다치고 나서 사나흘 뒤, 엄지발가락이 알밤처럼 땡땡하게 부어올랐다. 강희는 밤새도록 발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려 잠을 잘 수 없었다. 나중엔 발뿐 아니라 온몸에 열이 끓었다. 이튿날 병원에서 발을 째고 고름을 짜냈다. 강희는 지금껏 그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엄살을 부릴 수가 없었다. 엄살도 받아 줄 사람이 있을 때 부릴 수 있는 거였다. 며칠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 염증은 가라앉았지만 발톱은 점점 까맣게 변해갔다. p44
강희의 마음은 길을 가다가 나무토막인 줄 알고 벽돌을 차서 멍이 들고 주변의 살이 벌겋게 부어오른 발톱처럼 되어 있었다. 자존심을 지키려고 친구들에게는 아빠가 발톱을 깎아 주다가 상처가 났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환 일기에도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행복한 자신으로 거짓 포장해 버린다.
한편, 민주는 동생 민철이와 단둘이 사는 소녀가장이다. 민주는 민철이의 가족신문 만들기 숙제를 함께 해주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던 중 교환 일기를 본다. 강희가 행복한 투정을 하는 유나의 교환 일기를 보고, 사실은 첫 생리를 쓸쓸히 혼자 해결해야 했지만 그것을 숨기고 거짓으로 가족 모두에게 축하와 함께 장미꽃과 케이크를 받으며 맞이한 행복한 그날이었다고 쓴 글을 보게 된다. 민주는 쓸쓸했던 자신의 첫 생리 날을 떠올린다.
민주도 강희처럼 일부러 숨기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소녀 가장이라는 것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교환 일기를 통해 세 아이들의 소통이 시작 되었지만 마치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하나뿐인 최후의 방어기제처럼 솔직한 마음과 표정을 숨기게 되면서 진정한 소통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던 민주는 반장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민철이의 공부도 봐 주고 여러 특별 프로그램에도 참여 할 수 있는 복지관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복지관을 둘러 보고 돌아오는 길에 민철이와 한바탕 웃게 된다.
민주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교환 일기장을 폈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맑게 갠 하늘 같았다.
장마가 시작된 모양이야, 쉬지 않고 비가 내리고 있어. 나 나희들한테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 나 말이야, 부모님이 모두 안 계셔. 두 분 다 돌아가셨어. 말하자면 내가 소녀 가장인 셈이야. 일부러 속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부모님 안 계신 것을 광고하고 싶지도 않아서 말 안했던 거야. 그런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게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아. 그 동안 너희에게 탁 털어놓지 못해서 좀 찜찜했어.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다. … 장마가 언제 끝날까? 이 장마가 지나고 나면 어느 때보다 맑은 햇살이 비치겠지?
민주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것,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등을 교환 일기장에 용기 내어 털어 놓게 된다. 민주의 용기는 민주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것은 용기를 넘어 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자기애이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이를 왜곡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민주가 그랬듯 강희도 자기애 회복의 계기를 갖게 된다. 사촌 동생 해찬이가 시골에 가는 동안 봐 달라며 유치원에서 사 온 누에를 강희에게 맡기게 되는데, 강희는 해찬이가 부탁하고 간 누에를 깜빡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뽕잎을 주게 되는데 다행히 누에들은 살아서 반응하였다. 그리고 강희는 ‘몇 천 년 동안 집에서 길들여져 본래의 야성이 모두 퇴화’되어 ‘먹이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누에에 대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보며 생각한다.
‘나도 누에처럼 야성이 모두 퇴화된 걸까? 그래서 이렇게 모든 게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퇴화된 야성을 다시 살릴 순 없는 걸까?
강희는 문득 자신이 누에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p131
강희는 민주가 준 교환 일기를 읽으며 민주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쓴 교환 일기의 내용을 넘겨보며 ‘얼굴에 가면을 쓰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인 양 행세’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질투했던 유나는 실제 모습 그대로 솔직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껍질을 벗고’ 나온 누에를 보게 되고, 묵은 허물을 벗은 누에가 마치 자신의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인 것처럼 후련함을 느낀다.
…허물을 벗은 누에는 꼭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기 같았다. 혹시 산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볼 때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강희는 대견한 마음으로 한동안 누에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에 앞에 놓인 머리 허물이 눈에 들어왓다. 몸통허물과는 달리 눈에 띄지 않아 잊고 있었다.
강희는 조심스럽게 머리허물을 들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꼭 수수알만 했다. 가슴다리가 다 나오도록 누에의 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렇게 벗어 던지기가 어려웠을까? 가슴 속에서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p147
강희는 누에들이 하나 둘씩 20분, 한 시간, 그 이상 시간 동안 스스로 허물을 벗고 있는 모습을 보며 외친다.
"허물을 벗어! 겁내지 말고! 얼른 벗으란 말이야!“
…
“허물을 벗으라고! 겁내지 말고 한번 해 봐. 왜 해 볼 생각도 않는 거야? p148
아마 강희는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누에를 보며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치 누에가 허물을 벗고 속 모습을 드러내 듯 강희도 가면을 벗고 진실된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누에는 허물을 벗은 지 일주일쯤 지나, 드디어 고치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 하루만에 타원형의 예쁜 고치를 만들었다.
작은 아빠가 짚으로 만들어 준 섶 위에는 아홉 개의 하얀 고치가 매달려 있었다. 고치를 짓기 전에 얼기설기 쳐 놓은 실 안에 동동.
얼마 뒤면 고치를 뚫고 나방이 나올 것이다. 열심히 입질을 해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단단한 집을 뚫고. p161
강희는 그새 멍들고 염증이 있던 엄지발톱이 빠지고 새 발톱이 나온 것도 발견 한다.
민주, 강희는 모두 교환 일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정서적인 연대감을 형성하면서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마다 그 힘을 발휘하는 시간의 차가 있을 뿐.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여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긍정이든 부정이든 피드백 해 주며 반응하고, 공감해 주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성장을 지지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