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일기』는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시간 가게』는 그 현실에서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한다면 옛이야기 같은 장치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물이, 길 떠나는 아이』이다. 현실을 인식하기도 전에 떠남과 떠돎을 통해 낯선 상황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물이가 주인공이다. 『물이, 길 떠나는 아이』 (임정자, 문학동네, 2005)에서 주인공 물이는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늘 집안에서 유일한 동무인 구렁이와 함께 놀았다. 그러나 자기의 안정된 틀을 깨고 나와 세상에 나오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시작된다.
물동이에서 나온 아기라서 이름이 물이. 아주머니는 물이를 방에 눕히고 물동이를 봤지만 그 물동이에는 새끼 구렁이가 들어 앉아 있었다. 구렁이는 집 밖으로 내던져도 다시 집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러나 구렁이가 복을 준다며 아기 업일지 모르니 그냥 두라는 아저씨의 말에 구렁이를 살려 두게 된다. 구렁이는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고, 부부가 잊을 정도로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 구렁이는 제 동무예요. 죽이면 안 돼요.”
“구렁이 귀한 줄은 알면서 어찌 에미 마음은 모르느냐? 네가 사람 구실 못하는 건 모두 구렁이 탓이다.”
물이가 아주머니에게 애원했다.
“내일부터 바깥 세상에 나가서 내 밥은 내가 벌어먹을 테니, 내 동무 구렁이만은 제발 죽이지 말아요.” p28
어느 날, 물이가 밥을 먹다가 마루 밑으로 남은 밥을 밀어 넣는 것을 보고 마루 밑을 보니 구렁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늘 집에서 구렁이와 노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는 물이의 앞가림을 걱정하며 사람 동무를 찾으라고 조언하지만 물이는 집 밖으로 나가질 거부하였다. 일도 하지 않고 구렁이와 노는 물이를 보다 못해 구렁이를 버리려고, 또 죽이려고 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이는 간절하게 부탁한다. 익숙하고 편한 곳을 떠난 것은 두려움이 앞설 수도 있으나 그 전과는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떠돎의 의미는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자신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자기를 깨치고 인식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가진 재주도 없고.” p32
자신감도 없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대해 막막했던 물이에게 구렁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이 도와줄 거라 하는 말에 물이는 용기를 내어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다.
이 작품에서 물이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되풀이 하여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
“내 밥은 내가 벌어먹으려는 물이에요.” (p34, p46, p48, p54, p91, p148)
이 말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는 목표의식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 나선다. 곧 세상과 부딪히며 배우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집에서 아기를 달래 보겠다고 하며 온종일 아기 달래는 일에 애쓴다. 아기 발바닥에 시커먼 가시가 하나 박혀 있는 것을 구렁이가 알려주어 빼내니 아기는 웃게 되지만 구렁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고, 산 너머 마을로 가서 글을 배우면서 글씨 쓰기에 매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이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다시 떠나게 된다.
“어머니가 가라는 곳이니 분명히 좋은 곳일 거야. 게다가 나는 가진 재주가 하나도 없잖아. 글을 배우면 글재주가 생길 테고, 그러면 우리 둘이 벌어먹기도 쉬울 거야.” p46
아동‧청소년기 진로 설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구분 하고 스스로 인정‧선택해 나가야 하는 일이다. 물이는 우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때까지 세상을 떠돌게 된다.
물이가 길이 떠나며 휘파람 소리에 늘 흥얼거리는 노래말에는 ‘나는 밥버러지’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안해. 나도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뭐가 자꾸 내발을 붙잡고 내 마음을 잡아당겨 갈 수가 없어.”
……
“살다 보면 마음이 가는 일도 있잖아.” p89
귀신이 나타나는 집에서 귀신을 잡겠다고 허세를 부렸던 재주 많은 아이가 무서우니 그냥 가자고 했을 때도 물이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신의를 보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물이의 인성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이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인정하며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떠돌아다니는 동안 제 키는 한 뼘이나 자랐어요.” p95
물이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길을 찾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그렇다. 교사나 부모, 혹은 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의 길을 찾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멘토의 한마디의 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는 물이에요. 머리카락으로 옷 짓는 재주를 배우려고 왔어요.” p105
물이는 이제 목표의식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며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밝힌다. 다른 이의 옷을 지어 주고는 언제나 머리카락 한 올씩 얻어 모아 두었다. 머리카락으로 상징화 되어 있는 것은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인간관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도 관계 형성을 통해 그 색은 더욱 짙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나는 밥버러지’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나는 옷 짓는 아이’로 바뀌어 버린다.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물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또다시 새로운 마을에서 새로운 마을로 떠돌아다니면서 머리카락 만 팔백 개를 모으려 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나는 쥐 잡는 물이에요.’(p130), ‘나는 나는 구렁이 아이’(p145)처럼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획득하게 된다.
만 팔백 개의 머리카락 중 마지막 한 올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구렁이에게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후에야 비로소 물이는 진정 자기를 인정하게 된다.
“내 자리는 여기야.”
물이는 빙그레 웃었다.
물이는 이제 홀로 함박눈 내리는 마을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p172
물이는 두려움을 다 이겨내고 진정한 홀로 서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적으로 강인하게 무장되어 성장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각기 삶의 길 위에 서 있다. 물이처럼 유목민의 삶을 택하여 경험을 통해 자신을 강화시키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목표를 설정하여 스스로의 삶을 이끌며 살아가는 능동적인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것은 타인으로 비롯된 삶이 아니라 자신이 빚어낸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더욱 빛날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세 글자로 귀결된다. 정체성.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타인과 다른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정체성의 확립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성인들은 늘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찾으며 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아동의 긍정적인 성장 발달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시선, 곧 자기 인식이 중요한데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소통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자기와의 소통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욕구나 가치를 탐색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로 인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수용하게 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어 더 나은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