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생

그래도 성장이었다.

by 이마음

엄마는 본인의 친정엄마인 외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유순한 성격도 그렇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얼굴이 딱 외할머니 얼굴을 떠오르게 할 만큼 판박이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척추압박골절로 입원하여 수술을 앞두고 할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엄마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예견하고 준비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엄마를 잃은 고통보다 본인의 신체적 고통이 앞선 탓이었을까, 엄마는 놀라거나 흐느껴 울지도 않고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뿐이었다. 옆으로 눈물이 조금 흐르기도 했지만 그것이 엄마를 잃은 사람의 눈물이라고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슬픔이나 기쁨, 아픔, 분노 등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능력 아닌 능력 있는 사람인 듯하다. 어쨌든 엄마는 나와는 다르게 내면이 평온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지금은 허물고 새 건물을 지었지만 후암동 등나무집 오춘매 할머니집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림을 잘 그릴 수만 있다면, 묘사를 잘할 수 있는 표현력이 있었다면 그림으로나마 그곳을 재현해 내어 남겨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엄마는 같이 자란 형제자매들이 출가하고도 오래 그곳에서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적산가옥 형태였던 걸으면 나무의 삐그덕하는 소리가 났던 후암동 등나무집 2층에서 엄마는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다. 병원을 운영하던 외할아버지가 50대라는 이른 나이에 과로사한 후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도 2층 병원에서 외할아버지를 도우며 살던 그때를 자주 이야기 한다. 나는 뵌 적이 없지만 전채순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엄마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고, 살아가는 힘이었다. 6.25. 때 월남하여 서울에 터를 잡고 살면서 군의관으로도 복무하셨다던 외할아버지를 엄마는 지금도 본인의 가장 큰 자랑이다. 외할아버지를 도와서 병원일을 하면서 겪은 일화를 자주 이야기 한다. 예전에는 신기해하고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언제부턴가 엄마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에게 뼈 때리는 말을 하곤 한다. 여고를 졸업하고 할아버지를 돕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본인의 역할을 잃은 엄마에게 그때의 엄마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할머니와 살았냐고. 살길을 생각했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든 아니면 할아버지 일을 더 잘 돕기 위해 간호대학에 갔어야지, 하며 엄마를 질책하듯 냉정한 말을 내뱉는다. 엄마도 그때 그냥 외할머니 하고 붙어 살 생각밖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던 본인 스스로를 이해 못 하겠다는 말을 했다. 자기 살길, 하고 싶은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엄마랑 살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옛날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1930년 후반에 태어난 큰이모와 1940년에 태어난 엄마만 고등학교 졸업했고, 두 명의 이모와 세 명의 삼촌은 모두 대학교를 나왔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며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할 수 있었던 집안일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외할아버지의 병원일을 도왔다고 한다.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본인의 앞길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순하기만 했던 엄마였기에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엄마의 말 표현으로는 평생 직장생활을 해 본 적 없고 돈도 벌어 본 적이 없다며, 그래서 돈없는 아빠를 만나 인생은 배웠다며. 반찬값이라도 벌기 위해 보험을 하려고도 하셨지만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고 아빠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외할머니나 이모들에게 돈을 빌려야 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도움을 받으며 잘 살아오셨다. 다만 그 도움을 조금이라도 갚지 못하고 살아서 그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엄마가 자신의 후회되는 결혼생활에 대한 푸념들을 들으며 자란 나에게 엄마의 말들이 은연중에 내재되어 버린 듯하다. 엄마에게는 아빠로 한정된 남자의 속성과 그로 인한 본인의 고생이 나에게 스며들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노년기를 살아가고 인생의 막바지를 향해 가는 엄마를 보면 엄마처럼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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