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보호자가 될 수 없을 때
사람은 다 한 번은 가게 되는 거니 많이 슬퍼할 필요도 없어.
자신의 몸이 아플수록 세상에 남겨둔 것에 대해 마음의 정리를 하고 거리를 두려는 탓일까. 엄마는 며칠 전 저녁밥을 먹고 앉아서 내가 듣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허공에 대고 많은 말속에 이 말을 뱉어냈다. 나는 늘 거실에 앉아 유튜브를 보면서 엄마가 허공에 뱉어내는 말들을 듣는 둥 마는 둥하는데 유독 이 말만이 마음에 들어와 쿡 박혔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유언 같은 말 한마디. 엄마는 이렇게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 있는 걸까.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남은 걸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면서 엄마의 방을 열어보고 엄마의 생사를 확인한다. 코 고는 소리,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옅은 숨을 쉬는 탓에 생각보다 오래 엄마가 덮은 이불을 뚫어지게 쳐다보아야 하지만, 숨 쉬는 엄마를 확인을 하고서야 집을 나선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하던 나는, 이제 오후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을 잠으로 내리 채우는 엄마가 편히 쉬도록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퇴근하면서 엄마가 전화를 받으면 안심을 하고 집으로 향한다. 언제부턴가 나와 엄마의 통화는 엄마가 오늘도 살아서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나를 안심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나는 최근 작은 검사 내지는 시술을 하게 되면서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을 겪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보호자이면 되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보호자가 없으면 당일 내원을 하더라도 시술을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료진의 말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혼자 살아가려면 돈, 친구, 건강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성격상 그 셋 모두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이지만 엄마는 나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엄마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엄마가 있는데 없을 상황을 상상하고 재현하게 된다. 엄마는 살아있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보다는 그냥 존재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것만이라도 좋다 여기지만 엄마는 점점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더 줄어들고 겨우 나서는 병원 스케줄 이외는 집에만 있기 때문에 정말 언제 사라져도 그 상실감은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 생활의 대부분은 잠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가까운 때에 신체적 아픔을 벗어던지고 엄마가 그렇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 이후 나는 어떻게 될까. 정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반백세를 앞둔 딸과 죽음을 향해 가는 팔십 중반 노인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외면이 불가능한 서로가 없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