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드

돌연변이 모기

by 아륜

내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충이 되고부터 남들 하는 대로 밤에 흡혈 활동을 시작했다. 여름에 인간들은 우릴 못살게 군다. 피하는 걸로 모자라 꼭 피를 봐야 안심하고 잠든다. 자신들도 다른 생물을 죽여 연명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단백질을 빌리는 거라고 어미가 그랬다. 처음에는 흡혈 본능을 근거로 내가 암컷일 거라 생각했다. 내 몸뚱이에 관심을 보이는 수컷이 하나도 없자 나의 성별이 의심됐다. 수컷들이 떼를 지어 기둥을 만드는 모습은 장관이다. 그것들 중 하나의 정자를 받아 알을 낳고 죽는 삶이라니 차라리 생이 끝났으면 했다. 변태한 지 두어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암컷도 수컷도 아닌 다른 무엇인 것 같았다. 교미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랄랄라.


나는 어떤 목적으로 흡혈력을 사용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우선 동료들을 무참히 도살한 인간들을 꾸짖는 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한 인간이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곤충을 세 마디로 나누면? 질문부터 섬뜩했다. 감히 이 몸을 분리할 생각을 하다니. 나는 그들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머리! 가슴! 배! 이것들아! 어리석은 그들은 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인간들을 비웃으며 질문자는 말했다. 죽. 는. 다. 일동은 꺄르르 웃어댔다. 미친! 그것은 정답이었지만 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내게는 정당방위할 권리가 있었다. 나는 질문자 대신 가장 크게 웃은 인간의 종아리를 물었다. 죄를 지었으니 네 단백을 바쳐라. 흡혈한 후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내게 빨린 인간들의 표정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흡혈 취미를 가진 나는 알들에게 양분을 빼앗기지 않아 날로 토실해졌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체력이 나빠졌다. 흡혈을 마치면 잠시 쉬었다 가야 했다.


나를 공격하는 수놈 인간의 가운뎃손가락 윗마디를 혼내주고 난 뒤 함께 있던 암놈의 의자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며 프로젝트 얘기를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일하는 사이인 것 같았다. 일하는 사이에 어두컴컴한 바를 찾은 건 수상했지만. 수놈이 갑자기 일어나 암놈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입술을 삼키기 시작했다. 평소 봐 오던 인간의 애정행각이라기에는 뭐랄까, 짐승 같았다. 나는 알에서 깨어난 후로 그런 광경을 처음 봐서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암컷은 몸을 떼어내려 애썼는데 힘이 달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암컷을 구하기 위해 암컷의 허벅지를 찔렀다. 암놈 인간에게 흡혈하자마자 글쎄 암컷이 일어나서 수컷의 무릎 위에 앉은 다음 역겨운 행위를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흡혈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내 침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좀 더 관찰해야 했다. 그들은 구석에 있어서 이러한 야만적인 행위를 목격할 수 있는 인간이 세 명뿐이었다. 세 놈을 차례로 건드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로 했다. 나에게 빨린 수놈 셋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한데 엉겨붙어 서로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입에만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인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그러졌는지 차마 나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 길로 술집을 나와 허공을 떠돌았다. 몇 차례 실험할 때마다 인간들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내 침은 분명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내가 인간처럼 한 자리에 앉아 연구 활동을 하다가는 맞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원인을 밝혀낼 여유가 없었다. 늘어진 수명을 견딜 재미를 찾았으니 이제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할 차례였다.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무료해질 것이 뻔했다. 내 침에 박힌 인간들은 대략 천 밀리미터 이내의 사람을 물고 빠는 행위를 약 백이십 초간 지속했다. 처음엔 이상한 애정을 나누는 대상이 한둘에 그치는 줄 알았다. 나의 가설이 틀렸다는 사실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하나를 물었다가 못 볼 꼴을 본 후에야 알게 됐다. 나는 꼼짝없이 열차에 갇혀 있다가 바로 다음 역에 내렸는데 역 하나를 가는 시간이면 행위도 멈췄다. 당사자들은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이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어떤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단 하나, 사랑의 매개체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식과 생식으로 가는 과정 모두에 끌리지 않았다. 내게는 그것이 없다. 우선 인간들이 행위 후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하기로 했다. 호텔로 갔다. 곤충이 좋은 점이 있다면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숨만 걸면 어디든지 출입할 수 있다. 객실에는 가지 않았다. 방은 이미 완성된 연인들이나 결코 연인이 되지 않는 인간끼리 머무는 곳이다. 나는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 앉았다. 홀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한 지식인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그들은 여자 의사들로 다른 직장에서 일하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후배 사이인 듯했다. 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데 소중한 침술을 사용하고 싶지 않으므로 나는 다른 목표를 물색했다. 창가에 앉아서 오후의 볕을 쬐는 두 사람이 적임자였다. 고급스러운 차림에 경직된 말투로 봐서 맞선자리가 틀림없었다. 로맨스는 소거해버린 이들에게 나의 화살을 쏘았다. 여자의 발등과 남자의 목덜미를 공략했다. 로비는 한적했고 나는 조용히 그들의 연극을 관람하면 되었다.


인고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둘은 곧 떨어져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위기가 유연해진 점이 달랐다. 아까는 어느 지역에 집을 구할 것인지 말했다면 지금은 집안을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서로의 의견을 물었다. 흡입 행위 전에는 숫자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비교할 수 없는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인간들의 문화를 모르니 어떤 게 좋은지 모르지만 둘의 표정만큼은 서로에게 너그러워졌다고 느꼈다. 두 인간은 사랑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눈앞의 만남은 사랑에 빠졌다가 나오는 과정에 지친 인간들의 합리적인 협상 테이블일 것이다. 서로를 빨기 전에는 대회에 나간 선수처럼 무엇도 빼앗기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려는 기세였는데 이제는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서로 힘을 합해 어떤 목표를 이루려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토의가 잘 마무리되길 바라면서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인간을 돕는다고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내가 썩 괜찮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같은 행성에 살면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제부터 나의 재능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비록 인간의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벌레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건강하게 가꿔준다고 믿자 신이 났다.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끔찍이 싫어하던 그들도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도어맨과 함께 회전문을 통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인간을 실은 차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너희 인간들은 날개가 없어 차체에 의존해야 하는구나, 가여운 것들. 나는 그들을 삐뚤게 내려다보며 날갯짓을 했다. 그런데 딱! 누군가의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문을 열어주던 도어맨이었다. 그는 장례식에 온 사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모기가 있네.”

나는 의아해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손을 더럽히기 위해 힘껏 몸부림쳤다.






그림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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