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기생충을 보고 돌아오는 밤길을 기억한다. 심야 영화가 끝나고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 영화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두통이 증명했다. 평일 저녁 다음날 출근은 염려하지 않고 일탈처럼 예매한 영화였다. 극장을 나오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영화관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집까지 걸어가기에는 멀었다. 올 때는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갈 때는 다른 것을 타야 했다. 심야 택시는 허락하지 않는 거리였다. 가까운 자전거를 검색하니 근처 아파트 단지 깊은 곳에 위치가 깜빡였다. 아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지도대로 자전거를 찾아갔다. 누가 자전거를 숨겨 놓았는지 몇 대나 허탕을 치고 삼십 분을 헤맸다. 몸은 얻어맞은 듯이 피곤해서 더더욱 걸어갈 수 없었다. 겨우 자전거를 찾아 밤바람을 쐬며 집으로 달려왔다. 영화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쌩쌩 부는 바람이 위로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사서 맛있게 해 먹고 잤다.
인상적인 영화라 평을 남겼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개봉하자마자 봤는데도 벌써 리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잘 쓸 자신이 없어서, 일단 불쾌해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아카데미 쾌거 이후 기생충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어젯밤 작년과 같은 시간에 노트북으로 기생충을 봤다. 스크린과 사운드 없이도 자극은 여전했다. 영화는 한 번밖에 안 봤지만 유튜브에서 관련 콘텐츠를 엄청나게 소비한 뒤여서 내용은 속속들이 알았다. 알면서도 또 자지러졌고 불편해했다.
그날 기생충을 보면서 나는 모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가진 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 나는 가난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좋은 동네에 살면서 친구들과 우리 집을 비교하며 가난한 그룹으로 인식했다. 나는 종종 가난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 내가 가난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알바를 해본 적 없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용돈을 받으며 다닐 정도면 넉넉한 것이었다. 많은 관객이 그렇듯 나는 기택의 가족에게 이입했다. 인물의 비인간적인 삶을 보면서 내가 그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느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였던 건 그래서였다.
어젯밤 두 번째로 기생충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단어는 모순이다. 금을 그어놓고 상대에게 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자신이 선을 넘는 모습. 산다는 건 어제의 나에게서 모순을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현실은 김씨네에 가까운데 사고방식은 박씨네와 같다. 그것이 나의 모순이다. 나는 분석적인 동시에 이상적이기에 늘 나보다 위를 바라보고 꿈꾸며 산다. 지극히 현실적인 직업을 가졌으면서 자꾸 딴짓을 하려고 한다. 봉 감독은 자신을 장르영화 감독으로 규정한다고 했다. 두 번째 본 기생충은 그만큼 오락적으로 재미있었다. 작년에는 흘려들었던 의미심장한 대사가 풍부했다. 디테일은 유튜버에게나 맡겨 두고 내 모순을 돌아보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무지도 부의 상징 중 하나임을 기억했다. 지하철 냄새에 대한 무지, 폭우가 반지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무지, 모스 부호에 대한 무지… 나는 그래서 어제보다 덜 모순적이고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능을 길러야 한다고 다짐한다. 앞으로 이변이 없다면 나는 김씨네처럼 가난해지지도 박씨네처럼 부유해지지도 않을 보통의 삶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이라는 다리미가 없어도 주름을 펴고 따뜻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무지한 환경에 관심을 두고 살펴야 한다. 무너지지 않을 만큼 알고, 얼어붙지 않을 만큼 몰랐으면 싶다. 시간이 부유한 어느 날, 뭘 해야 할지에 대한 무지에 빠져 있다면 봉준호 감독의 책을 읽어볼까 한다.
감독의 시나리오집을 빌려와 이 글을 다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