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무게

영화 <돈 존>

by 아륜

스칼렛 요한슨 영화를 보고 싶어 필모그래피를 뒤적였다. 남자 주인공인 조셉 고든 레빗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했다. 영화의 카피는 '야동과 바람 핀 이 남자!'다. 끌리는 소재는 아니었지만 스칼렛의 선택이 궁금했다.


먼저 야동과 바람을 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잠깐씩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이라면 바람을 안 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디오는 사람이 아니라 매체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스칼렛이 연기한 바바라도 그랬다. 이상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그건 자유지. 괜찮아.'가 좋을 것이다. '나랑도 하면서 그건 왜 봐?' 또는 '나랑은 안 하면서 그건 왜 봐?'와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무리 몸을 가꾸어도 영상 속 가슴과 엉덩이를 따라갈 수는 없다. 그건 사기다. 나에게는 다른 여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신선함이 없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언짢아지기도 한다.


고든레빗이 분한 존이 포르노에 탐닉하는 이유는 자신을 놓고 싶어서라고 한다. 꼭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기보다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평화로워지고 싶어서다. 클럽에서 건진 현실 여자들은 남자를 휘두르려 하고 볼륨감이 떨어지며 돈·시간·체력도 들고 콘돔도 껴야 한다. 게다가 남자가 생각하기에는 영상보다 더 사기 같은 로맨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서 몇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것이다. 존에게 포르노는 정식이고 클럽은 디저트였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소리와 장면만 담을 수 있는 동영상을 더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에스더(줄리안 무어)가 다가온다. 시간이 많은 존은 매일 수차례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클럽에서 늘 새로운 여자를 집에 데려왔는데, 에스더는 그를 나무라는 대신 둘이 함께 나누는 즐거움에 대해 알려 준다. 사실 존은 혼자 할 때나 둘이 할 때나 늘 혼자였다. 에스더의 인도에 따라 그는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오래 눈을 맞추고 잦은 입맞춤으로 시작하는 법을 배운다. 둘의 관계에서 중요한 건 교감이다. 존은 이전처럼 영상에 몰두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어쭙잖게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포르노의 단점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조셉 고든 레빗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까? 혼자 핸드폰 보고 가성비에 맞게 주변 사람과 사물을 이용하려 하는 행동은 경제적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쌓고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튼튼하기 어렵다.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가상의 환상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마음이 닿는 진짜 소통이 있어야 산다.


영화에서는 영상 끊으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못 끊는다. 그건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남자의 포르노에 대해 여자가 취하면 좋을 태도는 신경 끄기다. 굳이 존중해 줄 필요는 없다. 아마도 존중을 바라기보다는 내버려 두기를 바랄 것이다. 추궁하지 말고 언급하지 말고 기록을 검색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생활은 침해하면 안 된다.


<500일의 썸머>의 귀여운 톰이 무럭무럭 자라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니 대견하다. 첫 장편 영화 이 정도면 잘 만들었다. 현대인의 개인주의와 관계 피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했다면 더 좋았겠다. 가벼운 기획은 아닌 것 같은데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