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로밸리의 말이 여기에서 증명되었다. 지난날은 죽지 않았다. 나의 과거는 생생히 살아있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변하면서 현재를 바꾼다. 세월이 아름답다. 진부한 감탄사가 이 영화에 어울렸다.
영화는 극한의 무력감으로 무기력한 관객을 압도했다. 살바도르를 보면서 내가 너무 건강하고 무감각하다고 느꼈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흐느낀다면 영화를 보면서 더 아파해 주었을 텐데.
어머니의 희생에 죄스럽지만 나는 영화가 좋아요. 사랑하는 연인도, 어머니도 모두 영화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다. 영화하는 사람은 영화를 못하면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영화하는 사람이 영화를 만족스럽게 해냈을 때 그는 죽어도 좋다. 얼마 전 본 영화 <강변호텔>에서 시인은 말한다. 두 분께 시를 드릴 수만 있으면 죽어도 좋아요. 정말이에요. 제 시를 읽어드리려고 왔어요. 시만 읽어드리고 저 갈게요. 정말 좋습니다.
감독은 이제 죽어도 좋을 만큼 좋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예술 창작자는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살아있는 의미가 있다. 그의 찬란한 통증에 약간 시샘을 내보기도 하면서 영화를 마쳤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전부라는 영화를 여러 편 보기로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