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기쁨
내가 여태까지 비흡연자인 이유는 책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담배에 불을 붙여 토해내야 할 연기가 문자라는 다른 매개체를 통해 탔다. 속에서 열불이 날 때가 있다. 당장이라도 쉽게 살 수 있기에 때로 참기가 어렵다. 그거라도 피우면 좀 나아질까 싶어 막연한 유혹에 시달린다.
각종 질병의 강력한 위험인자 중 하나가 흡연이란 사실을 오래 학습했기에 웬만해서는 시작하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날이 오면 그날이 첫 담배를 즐기는 날이 될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 같다. 화를 내지도 호들갑을 떨지도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감정을 소모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홧김에 흡연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잘 억누르면서 담배를 주제로 쓰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향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을 때 이 글을 보면 재미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엄청난 사건이 있지 않는 한 담배를 태울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와 같은 순간에 다다른다 해도 나는 담배를 피우느니 번지점프를 택할 것이다. 이별 후에 머리를 짧게 자르는 심리라면 일회성으로 끝나야지 지속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투신하는 사람처럼 뛰어내리지만 어느 지점에 생명줄이 나를 탁 잡아서 끌어올려 주는 번지점프가 전환점에 더 어울린다.
담배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할 것이다. 번지점프는 당당한 확인증이라도 주지만 담배는 나에게 안으로는 니코틴에 중독된 몸을, 밖으로는 여성 흡연자라는 낙인을 줄 것이다. ⠀
번지점프에는 몸을 던지고 얻는 자부심이 있다. 안전장치를 믿고 하나뿐인 목숨을 한방에 올인해 얻는 충만감, 그것이 차라리 내게 어울린다. 담배는 뛰어내리지 않지만 남은 일상의 줄을 당긴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처럼 어딘가에 의존하며 살고 싶지 않다.
담배맛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제대로 피워보지 않고 남의 전자담배를 한 입 떠먹은 수준이라 그렇다. 뜨겁게 데운 폐로 한숨을 뱉으면 속이 시원할까.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톡톡 흘리며 다른 것들도 함께 털어내면 홀가분할까. 낯선 이와 함께 피우며 동질감을 나누면 야릇할까. 이런 은근한 기쁨을 모르기를 바란다. 그밖에 내가 모르는 만족감에 앞으로도 무지하기를 바라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