냠냠 읽는 도넛 책

<소울 메이트> - 무라카미 하루키, 이토이 시게사토

by 아륜

이토이라는 아저씨와 하루키가 함께 쓴 책이다. 둘이서 각자 쓴 짧은 글들을 함께 묶어 낸 책인데 누가 썼는지는 그 글의 끝에 서명으로 알 수 있다. 둘은 어떤 단어를 두고 각자 생각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에세이집도 아니고 단편집도 대담집도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굳이 말하자면 이상한 책이라고 했다. 이상한 책에서 나는 이토이라는 모르는 아저씨보다는 당연히 아는 아저씨의 글들을 읽었다. 도넛처럼 냠냠 먹기 좋은 글들이다. 변태 아저씨들의 시선을 조금 감당하면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커피 컵>

인생에서 가장 슬픈 시간, 그것은 사랑하는 여자를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낸 뒤의 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침대에는 아직도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고, 테이블 위에는 마시다 만 커피컵이 놓여 있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마치 물을 빼버린 수족관의 수조 바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한 시간. 책을 읽어도, 레코드를 들어도 머리에는 뭐 하나 들어오질 않는다. 아니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간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밥에 낫또를 얹어 먹는다. (…)

-> 물을 빼버린 수족관의 수조 바닥에 앉아 있다. 너무 공허하다. 이렇게 확 다가오는 비유가 탐난다.





<탤컴파우더>

때때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세계에 남겨진 것이 나와 탤컴파우더(땀을 억제하고, 피부의 감촉을 좋게 하는 분말)뿐이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나와 탤컴파우더가 그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마음이 서로 맞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탤컴파우더 사이에는, 말하자면 공통의 체험을 통해 길러진 제2의 천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 즉 같은 여자와 잔 적이 있든지, 옛날에 같은 성병에 옮았다든지, 페니스의 사이즈가 정말 똑같다든지, 같은 평론가에게 욕을 들었다든지, 세무서의 환부금이 같다든지, 뭐 그런 것들이다. 헤어브러시나 오데코롱, 스포츠 샴푸, 치약, 목욕 타월 같은 것에 대해 이런 기분을 갖는 것은 좋지 않다. 어디까지나 탤컴파우더만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 뭔 개소린지 모르겠는데 하루키가 말하니 그럴싸하다. 그가 어떻게 이런 마법을 부리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성병, 페니스, 같은 여자랑 잔 적 얘기는 그만 좀 해라... 하루키 스타일을 확실히 보여주는 글 같아서 가져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무 생각 안 하게 됨. 도넛 먹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