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젖혀 비스듬히 앉은 유민이 라- 라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듬성듬성 빼먹은 가사가 기억났지만 일일이 채워주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다 만났어?” 내가 물었다.
“아직. 다 못 보고 갈 것 같아.” 유민이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나랑 있어도 돼?”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너랑 있는 거야.”
유민이 일어나 얼음만 덩그러니 남은 잔 두 개를 정리하고 돌아왔다. 나가자는 손짓에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유민은 계속 걸었다. 마주 달려오는 자전거를 피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의 품종을 맞히고 옆에 걷는 나와 손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같았다. 내가 유민을 상실한단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몰랐다. 작년에 남자친구가 군대에 갈 때는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명확히 쓰린 감정이었는데 어쩐지 유민은 달랐다. 얘는 친구니까 없으면 보고 싶긴 하겠지만 그렇게 괴롭지는 않을 거였다. 자주 만난 것도 아니니 휴가마다 본다면 지금 약속 주기와 비슷하기도 했다.
“행군 연습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유민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모르는 동네에 와 있었다.
“이렇게 편하게 안 하지.”
“그런가.”
“연습하려면 너라도 업어야 될걸.”
자주는 아니었지만 꼭 필요할 때 유민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시간, 또 내가 유민의 하루에 가만히 귀 기울이던 날들이 지나갔다. 그건 유민밖에 할 수 없었다.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즐거웠는데 그런 사람이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숨이 찼다.
유민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업혀.”
“무슨, 야, 무슨, 왜, 어떻게 그래.”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래도 좀…”
“너 다리 아프잖아. 얼른.”
눈물이 나오려는 것 같아 유민의 등에 업혔다. 내 코와 입이 유민의 귀 가까이에 있어서 우는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참았다. 무거울 것 같은데, 그리고 이런 행동은 우리 사이에 조금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나의 남자친구와 그저께 헤어진 유민의 여자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유민은 아까와 같은 속도로 뚜벅뚜벅 걸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걱정 없겠어. 이렇게 잘하니.”
유민은 답이 없었다. 유민의 목을 감고 있던 오른쪽 팔에 무언가 톡 떨어졌다. 톡, 톡 떨어졌다. 나는 왼쪽 팔로 유민의 눈을 닦아주었다.
“많이 무겁구나.” 내가 말했다.
“조금.” 유민이 말했다.
머리로 빗방울이 톡 떨어졌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작은 우산을 만들어 유민의 이마에 씌웠다. 우산 없이 견딜 만한 비였다. 유민은 나를 내리지 않고 속도를 높여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