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를 안아주고 보름이 지났다. 시험은 끝났고 손목의 흔적도 흐릿해졌다. 제이는 그 후로 상처를 만들지 않은 듯했다. 기온이 올라가고 하복 혼용기간이 되자 아이들은 하나 둘 반팔 셔츠를 입었다. 제이도 곧 하복으로 갈아입고 쿨토시를 착용하다 손목보호대로 바꿨다. 나는 오른손에 차던 시계를 왼손으로 옮겼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과목을 마쳤다. 제이는 가채점을 거르고 우리 반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복도 쪽을 보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대화창을 올리자 새벽에 주고받은 말들이 보였다.
「엘아 나 그러면 안 되겠지?」
「내일 시험 끝나고 만나자. 만나서 생각해보자.」
「참기가 너무 힘들어.」
「낮까지만 기다려줘.」
제이를 데리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제이가 냉기를 잊은 우유를 내밀었다.
“너 졸릴까 봐 커피로 사 왔어.” 제이가 말했다.
“고마워. 시험 끝난 거 축하해.”
어제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나는 우유를 단숨에 마시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제이는 시끌벅적한 곳에 갈 기분이 아니라고 했지만 매표소에 도착해 내가 입장권을 사려고 하자 들뜬 표정으로 자유이용권을 끊자고 말했다.
모든 것을 탈 수 있는 동시에 아무것도 타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구입한 우리는 들어오자마자 핫도그를 샀다. 제이는 허겁지겁 핫도그를 다 먹고 나를 바라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에 시선을 두었다.
“저거 탈까?” 내가 물었다.
“타고 싶긴 한데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
“기다리면 되지.”
“이따가.”
제이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시험공부 방해하고 자꾸 이상한 말이나 하고 자기도 안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되어버린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제이의 이름을 부르고 필통에서 빨간 펜을 꺼냈다. 맞힌 문제에 동그라미를 치는 도구였다. 평소에는 틀린 문제만 조그맣게 체크 표시를 하지만 오늘은 꼭 동그라미를 크게 쳐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푼 뒤 어렴풋한 상처를 둘러싸고 원을 그렸다. 제이가 나의 얼굴과 동그라미를 번갈아 보았다.
“너도 해볼래?” 내가 물었다.
제이가 펜을 들고 손목보호대를 벗었다. 제이의 상처는 나보다 길어서 동그라미 안에 전부 담으니 타원 모양이 되었다.
“이제 안을까.” 내가 말했다. 제이가 나의 원에 자신의 타원을 대었다. 나는 두 개의 원을 마찰시켰다. 제이의 색이 나의 색과 만나 서로 번졌다. 원이 찌그러질 즈음 나는 제이의 손목에 입김을 호호 불어 붉은 잉크를 말렸다. 그러고는 제이의 연해진 손목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
“이제 물로 씻자. 수성펜이라 쉽게 지워져.” 내가 말했다.
우리는 물이 잔뜩 쏟아지는 기구에 가서 줄을 섰다. 일그러진 동그라미는 가릴 필요가 없었다.
정상에서 떨어지기 직전 나는 말했다.
“넌 항상 빨간 동그라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