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놀이기구를 탈 권리를 가졌다. 놀이공원 안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아무거나 타도 되었다. 시험이 끝나고 놀이공원을 찾으면 갑자기 밀려오는 자유로 온몸이 울렁거린다. 하고 싶은 일을 차곡차곡 뒤로 쌓으면서 해야만 하는 일을 견디는 시간이 지나면 가끔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하루가 생긴다. 억눌려 있다가 한꺼번에 뿜어내는 감정은 그 격차만큼 아찔했다. 제이와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타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모퉁이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이런 거 잘 못 타는데… 손잡아줘.” 제이가 말했다.
제이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둘의 몸을 실은 열차가 느릿느릿 움직였다. 아랫배의 힘을 빼고 몸의 기울기를 느꼈다. 열차가 누울수록 제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 내 손등이 눌렸다. 열차는 곧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제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 깍지를 꼈다. 자릿한 감각을 느끼려는 찰나 열차가 떨어졌다. 제이의 고통과 나의 걱정을 공중에 두고 우리는 아래로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놀이가 끝났다. 광장으로 나올 때까지 여전히 손은 서로를 움켜쥐고 있었다.
“엘아 너는 시험 잘 봤어?” 제이가 물었다.
“괜찮게 봤어.”
“잘 봤구나. 난 망했는데. 히히.”
“힘들었지?”
제이가 또 손바닥에 얼굴을 담그려 했다.
“제이야.”
“웅.”
“난 너한테 울지 말라고 안 해. 울라고 부추기지도 않지만, 물론. 너가 울고 싶어져서 울면 두 손바닥을 줄 거야. 내가 회초리 맞던 손바닥. 이걸로 안아줄 거야.”
활짝 펼친 나의 손바닥에 제이가 얼굴을 쏟았다. 제이는 앙앙 하고 울었다. 엉엉 우는 듯했지만 목소리가 가늘어서 하아흐아앙 하고 들렸다. 우는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소리를 듣고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따라 크크큭 웃었다.
“맞았어?” 제이가 물었다.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매를 맞았어.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지. 그러다 보니 등수가 쉽게 오르더라고. 안 오르는 애들도 있는데 말야. 나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매를 맞으면 아프고 기분도 좋지 않으니까 피하고 싶어서 했는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해.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너 공부도 가르쳐 줄 수 있고 나중에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다양해지니까 절로 하게 돼. 앞으로 더 많이 할 거야. 아무리 바빠도 너랑 놀 시간은 있으니까 걱정 말고.”
“우아, 멋있어. 근데 아팠겠다… 손바닥.” 제이가 말했다.
“웅.”
그만 갈까 하는데 놀이공원에서 잠시 후 불꽃놀이를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엘아! 불꽃 보자!”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놀이를 마치고 떠나려던 이용객은 하루의 끝을 장식할 축제를 기다렸다. 하나로 입을 모아 열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었다. 땡 하는 말소리에 함성이 울렸다. 깜깜한 하늘에 화약이 그림을 그리고 쓰러졌다. 제이는 눈앞의 폭발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다채로운 색깔과 음악이 잠시 깜빡였다가 사라지는 광경일 뿐인데, 이게 우리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데. 그래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제이의 손을 더욱 꽉 잡고 싶어졌다. 불꽃놀이를 보며 우리가 어떻게 손을 잡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까처럼 나는 제이와 손깍지를 꼈다. 힘껏 잡으면 웬만해서 풀어지지 않을 만큼 두 손이 단단히 연결되었다. 손과 손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계를 제이와 내가 맺고 있었다.
제이가 열다섯의 내게 주는 영향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만큼 열띤 힘이었다. 불꽃이 전부 터지고 제이와 정말로 허그를 할 수도, 어쩌면 다른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상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어쩐지 그 모든 일이 지금 하는 손깍지를 넘어서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의 손목 안쪽에는 비슷한 모양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지우려면 말끔히 지워지지만 그대로 두어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연해졌다. 나는 제이와 잔손금을 맞대며 남은 기분을 불꽃에 맡겼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제이가 나의 손목 안쪽을 보며 말했다.
“나는 마음도 다치고 싶지 않고 몸도 다치고 싶지 않아.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
“엘아. 난 내가 너무 미워. 너가 좋은 만큼 내가 더 미워.”
“나도 너가 미워. 날 걱정시키잖아.” 내가 말했다.
“날 미워해도 돼.” 제이가 말했다.
“안 미워.”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난 아무것도 아닌데.”
“제이니까. 잘은 몰라. 공부해보려고.”
“히히.”
“너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잖아.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러는 사람한테 왜 그러냐 물으면 할말이 없지. 앞으로는 빨간 펜을 들고 다녀. 그리고 울고 싶어지면 나한테 손바닥을 빌려.”
“그럴게.” 제이가 말했다.
두 손이 만든 작은 공간에 나는 작은 불꽃을 심었다. 제이에게 빨간 펜이 필요 없어지면 그때 제이를 한번 꼭 껴안겠다고. 제이가 하나로 이어진 손에 힘을 주며 웃음을 팡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