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거울을 보면서 양치를 하다가 내 블로그의 단점을 하나 생각했다. 멍충이같고 찌질한 글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럴듯한 책을 읽고 읽은 책의 대부분을 기록한다. 드라마같은 영화를 보고 본 영화의 일부를 기록한다. 그러니까 오늘 만큼은 좀 없어 보이고 대단히 쓸모없는 그런 글을 써갈기고 싶어진다. 제목은 서른-72시간으로 정했다. 서른 서른 거리기 너무 우스운데 그래도 세상이 정한 시간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앞자리가 바뀐다는 건 의미있다. 오늘은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쏟아내고 싶다. 단 한 번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떠오르는 말을 말하듯이 적어본다. 나는 말할 때도 약간 늘어지는 말투로 단어를 신중히 골라 입밖에 꺼내는 편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말할 때보다도 더 말하는 것 같은 글이다. 한 번이라도 쓴 글을 다시 읽어 보거나 맞춤법 검사를 하거나 그러지 않고 아무런 수정도 하지 않고 띄어쓰기도 신경쓰지 않고 그야말로 싸지르는 글. 취하고 싶은데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 방금 진라면 매운맛에 계란이랑 치즈를 올려서 기가막힌 라면을 먹고 왔다. 사실 어제 새벽에도 먹었는데. 요즘 밤에 라면을 자주 먹게된다. 속이 허할 때 뜨끈한 게 들어가면 좀 낫다. 요즘은 자꾸만 흐트러지고 싶어졌다. 시간에 반항하고 싶었다. 카를로 로벨리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쨌든 우리는 흐르는 듯한 시간 속에 있고 나는 어디로든 흐르고 있다. 나는 72시간 후면 삼십 대가 된다. 삼십 대라니. 내가? 어렸던 나는 갑자기 훌쩍 커버려 감정을 조절하게 되었으며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을 배우고 책을 읽고 사람들에 시달리며 업무를 하고 술에 취해도 보고 노래를 흥얼거리다 낮잠을 잤다. 머리를 여니 손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사랑스러운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채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어린아이 같은 이 글. 나는 잃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실감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종종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라든지 생김새를 말하고는 한다. 나는 거울을 본다. 거울에는 내가 있다. 올해 내 눈은 속쌍꺼풀이 생길락 말락 한다. 아직 생기지는 않았다. 눈에 라인이 진해지면서 피곤해지면 속쌍꺼풀이 생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기지 않아도 되고 생겨도 된다. 그저 내 눈이 제멋대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이 흥미롭다. 올해 스물아홉을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려 볼까? 나는 처음으로 학교나 회사를 다니지 않는 시간을 만끽했다. 처음에는 황홀했고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끌려가지 않고 이끄는 경험을 처음 했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 기분이란 참 부자가 된 것 같고 좋다. 돈을 벌어야 하긴 하니까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겠지만 아직은 이어지고 있다.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다. 좋아해도 쉽지 않다. 그래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든 안 쓰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만약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어어어 하다가 몇 달이 지나기 쉬운데 나의 하반기는 참 길었다. 물론 지나보면 짧았지만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모두 내것이었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는 나만 안다. 난 그 점이 참 좋다. 자유롭고 짜릿하다. 내 머릿속을 나만 안다는 게. 물론 이렇게 글로 쏟아내면 살짝 엿볼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전부 글로 옮기지는 않지. 그랬다가는 다 기절할 거야. 큰일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알아도 되는 만큼만 조금만 쓰는 거야. 이렇게 착착착 마구 쓴 다음에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올릴 생각을 하니 쾌감이 생긴다. 무슨 기분일까.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해서 연말이 일주일 남았을 때부터 나는 감상에 젖기 시작했다. 그것도 놀랄 만큼 아주 많이. 마구 술을 마시고 싶고 흐트러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지는 않았다. 창밖을 보고 멍하니 있기도 하고 커피를 세 잔이나 마시고 맥주캔을 찌그러뜨리는 순간이 많았다. 매일 밤 괜히 배가 고파서 뭘 먹기도 했다. 그러면 좀 나았다. 나는 뭘 원하는 걸까? 무엇이 부족한 걸까? 어떤 결핍이 있을까?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아니 다른 사람들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연말에는 유튜브 보는 시간이 늘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다 죽게 될까. 사고사로 죽을까. 백 살까지 살다가 자연사할까. 설마 자살은 안 할 것 같다. 나는 나의 삼십 대가 기대된다. 사십 대도 오십 대도 쭉쭉쭉 있겠지만. 우선 나의 다음 십 년이 기다려진다는 말이다. 나는 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흩뿌리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까. 2020년에는 더 특별한 일이 벌어질까? 나는 돈을 벌게 될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어떤 예쁨을 받게 될까? 어떤 문장에 감동하게 될까? 어떤 말에 눈물 흘릴까? 어떤 영상에 감탄할까? 어떤 감각에 자극받을까? 궁금하다. 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이렇데 다다다 쓰면서 하는 생각은 그렇게 바보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바보 같다면 바보 같은 대로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기록하고 싶다.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분이 째진다. 조금 슬프다. 내가 살아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나의 가치를 잊고 싶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간다. 나의 세계에는 나 혼자 살아간다. 이 세계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글로 자고 있던 사람을 춤추게 만들고 싶다. 나에게 욕구가 있다면 그런 거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고 싶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사람을 살맛나게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런 욕망이 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욕망을 간직하고 싶다. 욕망들이 춤추며 일을 할 때 나는 생산하고 분출한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어났다. 2020년에는 더 많은 글을 쓰고 싶다. 더 발칙한 아이디어를 실어 나르는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이 예뻐지고 싶고 더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사람다운 사람으로 더 삶 같은 삶을 살며 더 진정성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다. 이곳에 한 명에게도 안 읽힌 글은 없다. 내가 쓰면 누군가는 읽는다. 누군가가 누구냐. 바로 당신이. 읽어주기에 나는 쓴다. 내 생각을 누군가 궁금해하고 욕망하고 또 식탐을 부리듯 읽는다는 사실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기분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날아간다. 글쓰기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그럴 것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이 글이 후회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지우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길게 써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자, 이제 저기에 있는 옷을 주워 입고 자자. 깜깜해서 뭐가 뭔지 잘 보이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