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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Jul 23. 2021

사랑은 상대에게 필요한 질문을 건네는 것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015년에 사랑의 기술을 처음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받아 책을 가까이 두고 일 년에 한 번씩 꺼내 읽었다. 어제 일곱 번째로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옮긴다. 책을 읽을 때마다 꼭 메모하게 되는 문장이 있다. 이미 알지만, 또 적는다. 새로 눈에 들어오는 대목도 있다. 이 책을 반복해 읽으면 사랑의 기술자로서 유능해질 줄 알았다. 사랑은 주체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나의 관심이 멈추면 사랑도 멈춘다.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하는 분야다. 사랑이 그렇게나 중요하고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면. 이번에 처음으로 주목한 부분은 상대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프롬의 마지막 조수인 라이너 풍크의 글이 부록으로 실렸다. 사랑한다면,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상대가 스스로 물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내용으로. 이전에 가볍게 넘 이 대목이 나를 찌르며 사랑을 잘하기가 어렵다는 실감을 했다. 나는 때로 부드럽고도 열렬한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내가 어떻게 주는 사람인지는 잊고서.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며, 바로 관심을 주는 일이다. 나의 관심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관심. 이때 나는 희생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생명력을 나눠 그를 살아나게 한다. 상대는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그 사랑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상대를 잘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게 될 테니, 내가 사랑에 무지했을 때보다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다.     



•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 (머리말)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p. 14)     



•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p. 17)     



•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p. 42)     



•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 표현이다. 준다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는 나의 힘, 나의 부, 나의 능력을 경험한다. (…)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며 준다고 하는 행위에는 나의 활동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p. 43)     



• 남성의 성 기능의 절정은 준다는 데 있다. (…) 받아들이는 행위에서 그녀는 주고 있는 것이다. (p. 43)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ㅡ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 그는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그러나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참으로 줄 때, 그는 그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p. 45)     



•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p. 47)     



• 존경은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p. 50)   

  


•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그밖의 일은 모두 저절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 74-75)     



•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 삶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불안도 감염된다. 이 두 태도는 어린아이의 퍼스낼리티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p. 79)

      


•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분리를 관용할 뿐 아니라 바라고 후원해주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모성애는 비이기성, 곧 모든 것을 주면서도 사랑하는 자의 행복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과업으로 변한다. (p. 81)     



•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상대방에게 보이는 관심이었다. 그것은 따뜻하면서도 확고한, 때때로 너무나 강렬하기까지 하던 시선 속에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가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 내가 그의 조수로 있었을 때, 그는 내게 아주 간단명료하지만 정확히 정곡을 찌르고 차츰 심도 깊어지는 질문들을 자주 던졌다. (…) 사실 프롬은 상대가 본래는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질문만을 했다. (…) 프롬은 내가 회피하고 억압하고 무시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프롬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소통의 특별한 점은, 프롬이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이며 그를 대신하여 직접 질문을 던짐으로써 직접성과 친밀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랑, p. 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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