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후기

by 아륜

<노 메이크업 후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느 가을날 피부가 하루 떴다는 이유로 화장을 끊고 이 년을 지내보니 좋았다는 내용이다. 안에서부터 솟아나는 에너지가 나만의 아름다움이며 나만의 메이크업이라고 썼다. 내면을 가꾸자는 취지는 좋았다. 다만 그 글에서 두 가지를 간과했다는 점이 아쉽다.

먼저 내가 피부 화장조차 하지 않고 지냈던 이유는 안 해도 자연스러운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다. 피부에 기미나 여드름이 없고 눈썹은 짙고 입술은 붉다. 이것은 내가 가지고 태어나 잊고 지내지만 누군가 열렬히 욕망하는 요소다. 그저 게을러 안 했으면서 메이크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썼다.


두 번째로 메이크업의 세계와 글쓰기의 세계가 양립하기 어렵다고 믿었던 것 같다. 얼굴이 아닌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문장에서 그렇다. 모든 주의집중력을 읽고 쓰는 데 사용하면서 외부 세계에 관심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나는 그러나 미적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빛과 소리, 색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취향에 맞지 않은 감각을 참기 어려워한다.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얼굴의 생김새, 몸 선, 건축물의 모양새, 인테리어 분위기, 정확하고 예쁜 말, 맑은데 까끌거리는 음색, 독창적인 음 진행, 구체적 단어로 탄탄하게 구성된 문장, 문장의 음악성. 한 시간 동안 바라보는 그림 같은 눈동자, 뇌 속으로 파고드는 향, 부드러운 피부 감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맛. 나 자신을 꾸미는 데 의욕이 없을 뿐 아름다운 감각에 이끌렸다.


화장을 예쁘게 한 타인의 얼굴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그런 기분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려서 안 해도 된다지만 더 나이가 들면 화장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방법을 잘 몰랐다. 나중에 사인회 할 날도 올 텐데 나의 소중한 독자님에게 이쁜 셀린을 보여줘야 하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르는 분야를 배워야겠다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지금 시점에서 노 메이크업 삼 년이 되었다. 브랜드 연구소란 곳에 가서 이미지 컨설팅을 받았다. 퍼스널 컬러를 알아보고 그에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알려 주는 과정이었다.


진단 결과 나의 퍼스널 컬러는 여름 쿨톤 라이트다. 피부톤이 색을 많이 타는 편은 아니라 절대 입으면 안 되는 색은 없다고 한다. 다양한 색깔을 비췄을 때 분명히 얼굴이 빛나는 색은 있었다. 명도가 높고 채도는 낮은 색. 흰색과 파스텔 컬러다. 나의 옷장에는 대부분 검은색과 원색이 많다. 그동안 정반대로 입고 있었다. 액세서리는 실버나 화이트골드가 잘 어울리고, 헤어스타일은 긴 머리보다 중간 길이의 웨이브 머리가 좋다고 한다. 화이트가 가장 좋고 그레이까진 괜찮지만 블랙은 얼굴색을 떨어트린다고.


신기하게도 어떤 색의 천을 대는지에 따라 순간 안색이 달라졌다. 하얀 옷을 입을 때 얼굴이 더 하얗고 빛나 보였다. 화장을 얹으니 얼굴이 달라졌다. 메이크업을 조금만 했는데도 얼굴이 더 예뻐지는 과정을 보았다. 색조 화장은 핑크 베이스로 라벤더 컬러가 잘 어울렸다. 같은 톤을 가진 연예인으로는 이영애, 손예진, 이지아, 김연아, 김고은, 서현진, 정채연 등이 있다. 깨끗하면서도 화사한 이미지다. 이들은 아무렇게나 해도 예쁠 것 같지만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링을 했을 때 훨씬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메이크업이나 패션을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외출할 때 화장을 해 봤다. 익숙하진 않지만 그럴싸하게 얼굴에 그림을 그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얼굴이 밝아졌다. 앞서 쓴 <노 메이크업 후기> 글에서 나는 내면의 에너지와 외부 에너지를 구분했다. 이번에 화장을 해보면서 느낀 점은 얼굴이 달라지니 내면의 에너지에도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활짝 웃으며 발랄한 표정을 짓고 사진 찍을 때 더 자신 있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제시하는 게 작가의 역할 중 하나인데 나는 내면/외면, 글쓰기(지적 활동)/메이크업(비 지적 활동) 이렇게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었다. 이제 보라핑크 팔레트를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새로 산 화장품이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었다.


여전히 치장하는 데 열정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미적 감각을 자극할 방법 하나를 배워서 기분이 좋다. 친구 결혼식에도 화장하고 가고 언젠가 있을 셀린의 사인회에도 이쁘게 하고 독자분들을 만나고 싶다. 얼굴에 그림 그리는 법을 알게 되면서 이렇게 또 종이에 새로운 그림 한 점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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