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을 잘 못 먹는다. 예전에는 아예 안 먹었는데 이제는 조금 번거로울 뿐 결과적으로 먹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물을 많이 먹어야 해서 그렇지 가능하다. 시간은 약 10초, 물은 종이컵 한 컵 분량이 필요하다. 웃기긴 하다. 물 없이 약을 꿀떡 삼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모습은 정말 멋있다. 아직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나의 목표는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 한 모금으로 순식간에 삼키기다.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알약을 어려워하게 된 원인으로는 어릴 때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경험이 아닐까 추측한다. 생선 가시와 알약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말이다. 공통점을 찾자면 무언가 목구멍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가시를 잘 발라내어 부드러운 생선살만 삼키면 문제가 없다. 예기치 못한 순간 생선 가시가 목구멍을 찌를 때 숨이 막힐 듯한 공포를 느꼈다는 게 문제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내 책임이다. 어릴 때 그런 감각을 느끼고 나서 초등학교 때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알약을 거의 먹지 못했다. 그래도 아프면 먹어야 하니 약을 부숴 먹었다. 그럴 때마다 바보가 된 기분을 느꼈다.
알약은 좀 못 먹어도 잘하는 일도 많았기에 알약을 어렵게 먹는다는 사실이 자존감을 떨어트리지는 않았다. 조금 이상하지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십 대 중반부터는 알약을 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 아주 가끔 먹을 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알약에 도전했다. 누구나 먹는 알약, 나도 할 수 있어! 하지만 반드시 먹어야 하는 건 아니야. 힘들어도 먹고 싶니, 아니면 계속 불편하게 못 먹고 살래? 나에게 물어보니 그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타이레놀 같이 큰 알약은 반으로 잘라 삼키기를 시도했다. 배가 볼록이가 될 만큼 물이 필요했지만 삼킬 수는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알약을 어려워하게 된 원인으로 생선 가시를 꼽은 내 생각의 원인이 궁금해졌다. 목구멍을 통과한다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걸까? 매일 다양한 음식을 그리로 삼키는데.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선 가시와 알약을 인과관계로 묶은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나의 창의성 때문인 것 같다. 서로 다른 개념을 하나로 연결 짓는 능력. 이것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그에 따른 작품을 안겨 주지만 부작용도 있다.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한다거나, 안 좋아한다 착각한다거나, 나만의 규칙으로 물건을 둔다거나(남이 보면 안 치운 거 같은데 내 눈으로는 완벽히 정돈된),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서사 부여하기(옆 사람이 나를 상대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하면 소름 끼칠 것 같다, 나는 왜 이럴까?) 등. 창의성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나의 능력이다. 알약을 못 먹는 원인으로 창의성을 꼽자마자 알약을 못 먹는 내가 갑자기 좋아졌다. 알약을 힘들어하며 먹는 특성을 계속 유지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마다 왠지 창의적인 기분이 드니까. 이러한 사고과정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면 도대체 논리적이지가 않다. 원인과 결과가 내 맘대로의 생각이다.
알약을 못 먹는 모습이 한심하고 뒤떨어진 게 아니라 창의성의 증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못 먹을 만해서 못 먹었다,라고 생각이 되었다. 내가 알약을 못 먹는다고 해서 타인이 불편해지는 것도 아니니 빠르게 알약을 잘 먹는 사람이 될 필요도 없었다. 내 속도에 맞게 천천히 먹으면 되는 거였다. 매일 먹는 비타민은 츄잉으로 하고, 아프지 않도록 몸을 잘 돌보고, 그런데도 알약을 먹을 일이 생겼다면 먹고 싶은 만큼만 먹기. 이렇게 원칙을 세웠더니 부담이 없어져 알약이 덜 싫어졌다. 한 번에 못 먹어도 먹기만 하면 되니까, 아무도 재촉하지 않으니까. 최초에 알약을 먹을 때는 머그컵 세 컵 분량의 물과 10분이란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눈에 띄지 않게 금세 약을 삼킬 수 있다. 남들보다는 물을 많이 먹고 조금 더 오래 걸리긴 하지만, 그리 멋지진 않지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약을 부수지 않고도 원형 그대로 먹을 수 있다. 단 정제(tablet)만. 아직 캡슐은 못 먹는다. 언젠가는 먹게 될 것이다. 여기서 또 의아한 점이 있다. 경질 캡슐(캡슐 벗기면 가루약 꺼낼 수 있는 것)보다 연질 캡슐(부들부들 미끌미끌)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알약의 표면이 보드라울수록 두려워하고 있다. 목구멍으로 삼키는 게 무서워 알약을 못 먹는 거라면 가시처럼 딱딱하고 뾰족해야 못 먹고, 젤리처럼 부드러우면 쉬워야 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원인을 모르겠다. 원인을 알고 이해가 되어야 마음이 편해지고 알약 먹기도 쉬워질 텐데. 지금으로서는 캡슐 약을 먹을 일이 없으니 크게 문제는 없지만. 이 글을 쓰면서 연질 캡슐이 무서운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내 생각의 원인이 궁금해진다. 혹시 비판적 사고능력 때문이 아닐까? 목구멍에 무엇이 걸리는 상황을 두려워하면서 부드러운 제제를 가장 꺼리는 모순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꼭 못하기일까? 잘해서는 아닐까?
지금 이거 안 먹으면 영원히 못 낫는다,라고 한다면 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게 아닐까 싶다. 알약 복용이 나에게 좌절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내가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을 때 나아진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되었다. 알약에 공포를 느꼈지만 그래도 조금씩 먹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고 나에게 증명했다. 언젠가 연질캡슐을 순식간에 삼키는 날이 온다면 더는 알약 못 먹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때는 내가 못하는 게 또 하나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내가 왜 이럴까 궁금해하고 원인을 찾고 문제 해결할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옮기며 살아있을 이유를 늘리고 나를 좋아할 만한 점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못하기든 잘하기든 나의 특징이라 못하기 자랑대회 시리즈는 나 자랑대회나 마찬가지다. 나는 못하는 게 상당히 많아서 2편은 무조건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