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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Dec 06. 2021

엄마가 애기가 되고 싶을 땐 내가 엄마가 되어주기로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한성희

  얼마 전 엄마 말씀에 두 차례 상처를 받았다. 문장만 보면 단순했다. 한 문장은 사실 그 자체였고 나머지 하나는 심부름이었다. 거기에 어떤 감정의 단어는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숨겨진 감정을 읽어버렸다. 사실의 문장에선 엄마가 미처 통제하지 못한 무의식 ‘나도 버거워…’를 느꼈고, 심부름 문장은 마치 코드를 입력하듯 명령조였다. 엄마는 자신의 말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마침 기분이 엉망이어서 어떻게든 힘을 내려 애쓰며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엄마의 식은 문장. 나는 그런 차가운 말들이 낯설었다.


  가장 먼저 당황스러운 감정이 찾아왔다. 어… 엄마가 이럴 분이 아닌데… 왜 이러시지… 나한테… 안 그래도 힘든데… 왜… 이러는 거예요?      


  우선 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내 감정에 집중해보자. 기분이 상해도 괜찮아. 나쁠 만하니 나빴겠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엄마가 이제까지 보여주신 모습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섬세하고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였기에 황당할 만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한 내가 단어를 세심히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상대가 쓰지 않은 말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넘긴 말도 지금의 필터로는 불편해졌다. 엄마의 문장에는 잘못이 없다. 듣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날것의 표현이 서운했을 뿐이다. 엄마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헤아려보자. 엄마는 직장에서 엄청난 업무량을 감당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어섰다. 최근 외가에서 김치를 담그며 육체적으로 피로한 영향도 있겠다.   


  엄마가 그럴 만해서 그랬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어보니 이해가 되는 듯했다. 엄마가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내 기분은 나쁠 수 있다. 기분 역시 내 탓이 아니다. 나는 할일을 해야 했기에 기분을 바꾸러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 사람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맛있는 빵들이 시끄러운 곳. 시원하고 달콤한 그린티 라떼를 마시며 이메일을 처리하고 책을 읽었다. 아침의 기분이 말끔해지고 나는 다시 엄마를 대할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저녁에 다시 두 번째 문장이 들린 것이다. 그날 저녁 내 마음의 말들을 글로 풀어냈다. 엄마의 문장은 단 두 개였지만 나의 마음은 두 장이 넘게 쏟아졌다. 나의 문장은 엄마를 비난하기는커녕 엄마 삶을 껴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도 글을 보기 싫어 휴지통에 문서를 버렸다. 글쓰기만으로 효과가 있었다. 나는 진정된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화가 났다. 엄마가 미운데 미워할 수 없어서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엄마의 문장에서 엄마의 고통을 읽었다. 내가 느끼지 못한 나의 기분도 먼저 살펴주던 엄마였는데, 엄마 자신을 살피지 못할 만큼 엄마가 힘들다는 신호였다. 엄마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순간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애기처럼 칭얼거렸다. 엄마는 엄마이지만,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애기가 하듯 맘대로 좀 해 보고 스트레스도 풀고 보살핌받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그런 여유는 엄마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엄마가 엄마 자신을 그렇게 여유 부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고통이 이해되었고 나의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엄마가 나보다 더 힘드니 엄마를 알아주면 풀리시겠구나 싶었다. 내가 엄마를 걱정하고 궁금해한다는 문장을 담아 카톡을 보냈고 엄마는 너무 많이 고마워했다. 엄마가 보낸 이모티콘도 귀여웠다. 에휴… 오늘은 내가 엄마가 되어주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내 감정이 해결되었다. 엄마도 곧 엄마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이런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표현하지 않고 지냈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느끼면 그걸 바른 어휘로 표현하면 되는데, 귀찮았다고 할까. 서툴렀다. 내 감정도 외면했다. 글을 쓰면서 자연스레 마음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번거로워 회피했다. 이번 기회에 나의 불편한 마음을 말할까 고민하다 엄마의 상황이 다 이해가 되니 다음에 또 같은 일이 생기면 말하기로 하고 책을 읽었다. 다른 엄마가 해주는 말이라도 읽으려고.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는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딸의 결혼을 앞두고 쓴 책이다. 의사도 똑같이 엄마라 딸을 보내는 마음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멋진 말들로 가득하지만 실제로 이 말들을 딸에게 바로바로 해주기는 어렵다. 엄마도 갑작스럽고 속상하고 야속하고 힘들고 짜증 나니까. 그래도 엄마라서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게 엄마니까. 책을 읽으며 책 한 권으로 생각을 풀어내는 저자의 지적 능력과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엄마들은 모두 이렇게 할말이 많을 텐데 누구나 책을 쓸 순 없다. 책으로 쓰이지 못한 채 고여 있는 마음들이 얼마나 깊을까 싶었다.     


  엄마가 며칠 전 그러셨다. 책 한 권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 같은데 그걸 해낸 내가 대단하다고. 엄마도 책을 쓰고 싶은데 첫 문장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엄마의 꿈은 일흔이 되기 전에 에세이집을 내는 것이다. 아직 환갑도 안 되었으니 시간은 충분한 셈이다. 엄마의 시간은 그러나 엄마만의 것이 아니다. 원래는 그래야 하지만 엄마를 필요로 하는 곳에 엄마의 시간을 나누어주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게 된다. 엄마들의 시간은 빼앗김의 연속이었다. 딸이 다 큰 지금 엄마는 뒤늦게 애기가 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울기만 하면 누가 밥을 주고 재워 주던 곳에서 제발 아무 생각 안 하고 싶겠다…  


  책을 반쯤 읽는데 아빠가 책 하나 추천해 달라기에 이 책을 권했다. 아빠는 엄마도 딸도 아니니 혹시 이 책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실까봐, 엄마가 딸에게 썼다지만 엄마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을 다독이는 글 같았다, 아빠도 엄마와 다르지 않은 부모이니 읽어보면 좋을 거라고 말했다. 책에는 엄마여야만 아는 장면도 있으니 아빠가 읽고 엄마를 헤아려주면 좋겠어서… 엄마가 충분히 사랑받아야 엄마에게도 사랑이 나오니까. 아빠는 금세 책을 읽고 돌려주었다. 엄마의 삶을 이해하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 관점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잘 챙기며(이미 잘 챙기고 계시는데…) 재밌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었다고 말씀했다. 책의 핵심 메시지가 맞았다. 아빠를 보면 자기만 아는 모습을 내가 아빠에게서 닮은 것 같아서 답답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아빠가 힘없이 처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아빠에게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아빠는 아빠가 잘 챙기고, 엄마는 엄마를 잘 챙기고, 나는 먼저 나를 잘 챙기고, 그런 뒤에 서로를 헤아리며 사랑해주고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대단하다고 표현하신 책 쓰기는 나에게 가능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다. 후회가 없다. 작년에 책도 작가도 아닌 오직 소설만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나는 나조차 떠나 이야기를 그렸다. 다시는 오지 못할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 소설만 생각했다. 그러느라 많은 걸 잃었다. 시간, 돈, 사람… 삶을 이루는 소중한 가치를 잃으면서 썼다. 나도 애기처럼 칭얼거리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좀 하면서 살고 싶다고! 이런 마음이었다. 다른 건 별로 신경 안 쓰고 글만 쓰면 되는데도 쉽지 않았는데,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드실까. 그래도 새벽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엄마는 즐거워 보였다. 엄마는 가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그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려주는 상담을 하면서 나한테는 왜 그러실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직장에서까지 엄마가 되어 다 들어주다 보면 집에서는 애기가 되고 싶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아주 힘들 때 가끔만. 그때는 내가 빠르게 베이커리 가서 당 충전하고 돌아와 글로 풀어내면 컨디션 회복되니까 힘내서 ‘오구오구,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충분히 힘들 만했네, 고생했어’라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나는 혼자 마음을 돌보는 방법(잘 먹고 글 쓰고 잘 자기)을 알고 있어서 엄마가 엄마만 잘 돌보면 나는 편하고 또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지 않고 이대로 살아갈 수도 있으니 가끔 우리 엄마에게라도 엄마 역할을 해주면 모두가 행복한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엄마 말씀에 상처받았을 때 나의 엄마가 되어주었다. 엄마도 언젠가 저자처럼 자기 목소리를 듣는 여유를 냈으면 좋겠다. 그 문장이 모여 나온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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