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가진 왕은 어떻게 할까?
<수학의 감각> - 박병하
나는 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책을 좋아한다. 도서관에 가면 평소에 덜 읽는 자연과학•기술과학 서가에 가서 슬렁슬렁 있어 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책이 보이면 슬쩍 빌린다. '지극히 인문학적인 수학이야기(부제)'인 책의 첫 장이 마음에 남아 메모한다.
1장. 안 된다는 생각이 가능성을 밀쳐 낸다: 무한으로 상상하기
즉 무한이란 '수가 점점 커지고 있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구현된 실체'로 인식하는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쉽게 드러낸 예가 0.9999…다. 소수점 다음에 9가 무한히 있는 수이다. 첫 번째 관점인 '9가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보면 9가 아무리 계속되어도 0.9999…은 1이 될 수 없다.
반면 9가 '이미 무한개 있다'고 보면 이 수는 분명 1이다. 이 관점에서 0.9999…는 1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피자를 배달시켜 보면 된다.
피자 1개를 시킬 때마다 그 안에 쿠폰이 1장 들어 있다고 가정하자. 쿠폰을 10장 모으면 피자 1개를 공짜로 준다. (…) 나에게 쿠폰 9장이 있다고 하자. 나는 친구에게 쿠폰을 1장 빌릴 수 있다. 빌린다. 쿠폰 10장이 되었다. 그것으로 공짜 피자를 받는다. 그 안에 있는 쿠폰 1장을 꺼내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다시 말해 쿠폰 9장은 쿠폰 없이 주는 피자 1개와 같다. 이와 같이 어떤 무한을 과정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실체로 본다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라 중요한 사고의 전환을 뜻한다.
언뜻 봐서는 0.9999…가 1보다 살짝 작다는 생각과, 1이라는 생각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에서 자주 그렇듯이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유발한다. (…) 무한을 머릿속에 도입해 상상하는 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이건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은 상상력을 좀먹는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머릿속에 무한을 데려와 가정해 보아야 한다고. "이건 말도 안 돼!"라고 말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 상황을 말도 안 되게 만들고 있는 거니까. (…) 그중 첫 단계가 무한 도입하기, 일명 '크로이소스는 어떻게 할까(What would Croesus do)?'라는 사고 습관이다.
문제가 닥치면 제약조건이나 유한한 자원을 먼저 보려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왕 크로이소스가 되어 보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가 가진 자원은 구현된 무한이며 그래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를 다시 보자. 불가능의 요인은 모두 녹아 버렸다. 우리가 서 있는 상상의 공간은 툭 트였다. 걸리적거릴 것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제약 조건에 두었던 시선이 순식간에 가능성으로 옮겨 간다. 큰 수를 가져와 상상하고, 무한이 구현된 덩어리라고 상상하라. 무한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p. 20-26)
상상은 무한이고 자유다. 불가능 요인을 살펴 가능성을 따지는 정도를 지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면 새로운 방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 머릿속은 내 것이다. 누구의 허락이 필요 없는 나의 세계다. 이곳에서 나의 유한한 시간을 무한한 공간으로 펼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