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특히 수식. 숫자와 영문, 특수문자로 이루어진 문장을 읽으면 가슴이 뚫렸다. 오해되고 설명하기 어려운 말들에 지쳐 있다가, 풀이 과정을 익히면 정답이 나오는 소통에서 위로받았다. 나는 명확성을 사랑했다. 도대체가 내 맘을 알아주는 건 이 수식뿐인 것 같았다.
물론 도형도 즐거웠다. 그림을 보면 공부하다 노는 기분이 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도형의 내면도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이걸 어려워하는구나. 도형 아닌 건 쉬운데 도형은 왜 이렇게 잘 안 보이지…? 공간적 상상력이 조금 달리는 듯했다.
도형이는 나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도형이에 대한 내 마음도 식었다. 열심히 탐구할 의욕을 잃었다고 할까. 오십 미터 달리기를 할 때도 그랬다. 최대한 달려도 옆 친구보다 뒤처지는 순간 ‘왜 꼭 친구를 이겨야 해?’라는 의문이 들며 그다음부터 적당한 속도로 달렸다. 흥미를 잃은 후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렸다.
길은 내가 직접 발을 딛고 선 공간이다. 도로는 쭉 뻗고 건물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 나는 목적지로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게 느껴진다. 길찾기 기능이 나오기 전에는 자주 길을 잃었다. 어찌어찌 찾아가더라도 건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리셋된다. 모든 기준이 흐트러져 처음부터 다시 기준점을 잡고 조심스럽게 발을 뻗어야 한다. 지금은 길찾기 기능을 활용하는데 지도가 나와 완전히 일치하도록 방향을 돌려야만 보인다. 아주 가까운 거리라도 길찾기 기능을 켠다. 쓱 보고 척척 찾아가지지가 않는다.
한번 갔던 길이라도 여러 번 걸어야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거나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적이 잦아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가는 습관이 들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마음 편히 걸으면 기분이 좋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잘 도착하기만 하면 되니까. 여러 번 가봐야 인식이 되다 보니 낯설게 보기가 자연스럽게 된다. 낯설게 보기가 아니라 낯섦 그 자체다. 여러 번 가서 그곳 하나는 익혔더라도 주변 건물은 전혀 모른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 처음부터 한 번에 파악이 안 되니 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다.
낯선 기분은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길을 천천히 알아가는 사람이에요. 느리게 찾아서 그렇지 한번 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집요하게 파헤친답니다. 건물은 그냥 건물이 아니에요. 내 맘에 들어온 이상 외관의 특징과 내부의 분위기, 머무는 사람들, 색깔, 냄새, 소리 다 궁금해요. 관심이 엄청 많아요. 모조리 알고 싶어요.
어제와 오늘의 장면은 숨은그림찾기 게임. 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길 정도는 못 찾아도 되잖아. 다른 경로로 돌아가도 되고. 어차피 도착할 건데.
단번에 못 찾아도 어쨌든 도착한다. 길을 잃은 (듯이 보이는) 동안 이상한 곳으로 헤매며 낯선 장면 속에 던져질 때 나는 새롭게 찾아낸다. 그리고 길목에서 당신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