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0과 1 사이에서

by 아륜

미래가 아득해질 때 떠올리는 문장이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내일은 확인되지 않았다. 희박한 확률부터 유력한 확률까지 가능성의 정도는 다양하지만 결정되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다.


미래에는 0 또는 1인 내가 있을 것이다. 0에 가까운 미래와 1에 가까운 미래가 있겠지만 확인하는 순간 0 또는 1로 판단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0 또는 1이다. 계산되는 중이다. 나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운에 따라, 또는 변함없을 재능에 따라. 재능은 존재한다. 재능이 0에 가까운 사람과 1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 나의 재능이 1인지는 확신이 없다. 0보다는 1에 가까울 거라 추측한다. 내 안의 알 수 없는 힘이 1로 이끌고 있다. 재능은 변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되었고 바꿀 수 없다. 운의 영역에서도 무기력하다. 나는 변할 수 있는 의지에 집중한다. 의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0과 1 사이에서 최종값이 결정되기 전까지 계산을 지속해야 한다.

현재 나의 값을 매길 수 있을까. 매길 수 있다 해도 최종값이 아니다. 의지를 갖고 실행했을 때의 결과는 알 수 없다. 확실한 포기보다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과정이 좋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살았을 때 그 값은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다. 누구에게나 시작이 열려 있지만 시도하는 사람이 드물고 지속하는 사람은 희소하다. 지속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값이 한 번에 결정되기 않기 때문이다. 매일 하는 계산이 축적되어 최종값이 결정된다. 매일 계산이 요구되므로 어렵다.

마침내 최종값이 결정되었을 때 그 값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대한의 정확을 추구한다 해도 근사치다. 누가 정확도를 측정하는가. 인간 주제에. 최대한의 근사치가 부정확한 것 중에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부정확한 근사치를 향해 달려갈 필요가 있을까. 나는 달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력하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어쩌다 태어났고 어쩌다 죽지 못했기 때문인데 지금 살아있다면 삶을 계산해야 하지 않은가.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무너지면 허무하다. 오늘을 살고 있다. 이 시간은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미래로 가고 있는가. 시간은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가.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나는 다만 흔들리고 관계하고 있다.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으며 존재하고 있다. 나는 계산하고 계산되고 있다. 나는 정확해질 수 없다. 정확해지려 애쓸 뿐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계산하고 계산되는 것뿐. 낼 수 있는 힘을 내고 쓸 수 있는 힘을 쓰며 줄 수 있는 힘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힘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나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 최선을 다하면 1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을까 무섭다. 나는 노력할 수도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의지를 가질 수도 저버릴 수도 있다. 내 의지와 노력도 알 수 없어 두렵다. 나는 오늘 계산할 뿐이다. 노력하는 나와 노력하지 않는 나 사이에서 결정하고 또 계산한다. 시간이 넓게 펼쳐져 있고 동시에 끝나가고 있다. 내가 할 일은 계산이다. 계산하는 법은 단지 하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나를 계산해 본다. 근사치가 나올 때까지. 나를 계산하기에 바쁘므로 다른 사람의 근사치를 계산할 여유가 없다. 나를 계산하며 살고 싶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마치 정해졌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다 안다는 듯이 만족하거나 그만두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값으로든 계산되고 결정되는 과정에 존재할 것이다. 정확한 값에 가까워지려 움직이며 존재하는 상태 그 자체가 나의 목표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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