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을 하면서 육아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으로서는 아이를 가질 뚜렷한 계획이 없다. 그런데도 아이 기르는 일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다.
양육은 보육과 교육을 합한 거라 본다. 보육은 먼 얘기이지만, 교육은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양육을 탐구해보면 나를 보살피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한 해 동안 어린아이들 모습과 그 기록을 보았다. 발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아픈 아이들. 예전에는 엄마가 되면 고되겠다, 내 시간을 뺏기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건강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발달장애 아이를 보면서 오히려 아이 키우는 일에 호기심이 생겼다. 육아에는 교육 자체, 나아가 삶의 본질이 담긴 것 같다.
엄마 마음을 상상했다. 엄마를 위해 글을 쓰는 일이었다. 진료 장면을 보고 전공서와 교양서를 읽으면서 낯선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내가 본 교육의 키워드는 자발성이다.
자발성이란 혼자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아이에게 자발성이란 마치 혼자 알아서 잘 해내는 것 같아 자꾸 또 하고 싶은 느낌이라 짐작한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부모, 즉 교육자의 역할이라 보았다.
아이는 배워야 할 일이 많다. 그때마다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엄마가 시범을 보인다. 그다음 아이와 함께하며 따라 해보도록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혼자 하는 기회를 주고 기다린다. 보여주고, 함께하고, 기다린다의 한 세트다. 이 과정을 과제마다 거친다. 특히 기다릴 때는 아이가 좌절감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격려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받는 교육은 보여주지 않은 채 주입식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남과 비교하며 결과를 닦달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는 자발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혼자 잘하기는커녕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중에 실제로 아이를 키우면 다양한 고난이 있겠지만, 내가 정립한 교육의 본질, [자발성]과 [자발성 교육과정: 보여주고 함께하고 기다리기] 만큼은 기억하려 한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0%였다가 올해 20% 정도로 생겼다. 엄마가 되고 싶다든지 아이가 너무 좋은 마음은 아니다.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 없다. 그렇지만 아픈 아이가 나아지는 데 애쓰는 엄마를 보고 그들을 위한 글을 쓰면서 아이 키우는 일이 참 의미 있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란 내 삶의 핵심어다. 어떤 것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때부터 충성을 다하는 집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에는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그렇기에 의미를 발견했다면 살아갈 이유 하나를 더 찾게 된 것이다.
내가 엄마인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봤다. 여기에 어떤 감정이 섞이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가임력을 고려해 만34세가 되는 2025년쯤에는 아이를 가져야 덜 고생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80%의 비중으로 평생 아이가 없어도 된다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0%(무)에서 20%(유)가 된 것처럼 마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양육, 그전에 임신과 출산, 그 앞의 결혼을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결혼이 연인과 함께 사는 건 줄 알았다. 이제는 가족을 찾는 일이라는 실감이 든다. 내 사람 한 명은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 꼭 한국의 결혼 방식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결혼과 혹시 모를 육아, 즉 가족을 만드는 일에는 마음가짐과 경제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음가짐은 삶을 견디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고, 경제력은 소득과 지출 관리에 더해 경제 가치관을 포함한다.
앞서 나는 교육의 핵심을 자발성으로 보고, 보여주고 함께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이해했다. 가까이 있는 내 또래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기다림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아침에 아이를 뽀뽀로 깨우고 천천히 아침을 즐긴 다음 예쁜 말들을 해주며 등교를 시키는, 그런 모습이 이상적이다. 엄마는 그러나 얼른 아이를 준비시키고 빨리 자기도 준비한 다음 출근을 해야 한다. 그때 차근차근 기다림이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재촉하고 목소리가 커진다. 일을 계속하는 것도 결국 아이를 위해서가 큰데 말이다.
아이도 보고 일도 하고 체력 관리도 하고 감정 조절도 하고 집안일과 양가 행사를 챙기는, 그런 초인적인 일이구나. 그렇기에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의 나로서는 정신적 고통이 크겠다고 보았다. 어려운 환경을 잘 운영하려면 여러 자원이 필요한데 경제력으로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전부를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가짐과 경제력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나는 둘 다 똑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순간 고통이 커진다. 이것을 상대에게 바라기는 어렵기에 내가 잘하자, 준비된 어른이 되자 다짐했다. 육아든 결혼이든 그 이전에 일단 나부터 자라자는 생각이다. 내가 날 양육해야 한다. 마음가짐과 경제력 모두 지금은 부족하지만 성장을 위한 틀은 마련했다고 느낀다. 일 년간 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감정과 소통, 그리고 경제금융 분야에서. 여전히 스스로 양육해야 하는 아이 같은 나이지만 앞으로 내가 잘 발달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다.
몇 년간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먼저 과제 후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유지했다. 글쓰기를 배우러 왔는데 혼자 글을 써와야만 수업을 하는 시스템이다. 수강생은 자발적으로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학습 교재를 스스로 집필하는 셈이다. 학습자는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방식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므로 즐거워했다. 수업 때 매일 적용하는 거라 양육의 세계에서 자발성이란 키워드를 건지지 않았나 싶다.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다. 자식은 사랑하려고 낳는 거다.”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 어머니의 말씀이다. 칼럼에서 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육아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아이는 단단한 자존감을 갖게 된다. 아이는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실패와 좌절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것, 그 자체가 훌륭한 교육법이다. 부모는 자신을 희생해 자녀 교육에 몰입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잘 살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라며 삶의 근본을 보여주면 된다.”
잘 키운다는 말은 잘해주려는 좋은 의도를 담았는데, 언제나 의도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반면 사랑은 변함없이 해줄 수 있다. 아이는 잘 만들어 선보여야 하는 창작물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어주는 대상인 것이다. 지 교수는 부모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이 교육이라 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잘 사는 것.
아이를 통제하지 않고 자발성을 지켜주면서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함께 살아가고, 묵묵히 기다리는 것. 이게 교육이자 양육이구나 싶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보아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버려 둬서도 안 되고 억압해도 안 되는데 걱정도 되고 불안도 있고 삶은 팍팍하고. 그러는 와중에 아이는 하루도 안 쉬고 자라나고.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부족하고 속상하고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정직하게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가 알아서 배울 것이다.
아이의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을 넣어 읽어 보아도 뜻이 통한다. 우선 자신을 잘 양육하면서 상대방을 동기부여 시켜주며 기다린다. 상대와의 관계를 잘 가꿔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잘 되고, 혹시 내 삶에 아이를 낳을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크게 생각해야 나 혼자라도 내 안의 아이를 양육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내일보다는 아이니까. 계속 배우고 깨닫는다는 점에서 평생 아이와도 같다.
시간이 펼쳐져 있고 나는 어느 한 지점에 서 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른다. 앞날은 운명에 맡기고 나는 나 양육하기에 힘써보기로 한다. 내일의 내가 잘할 수 있도록 오늘의 내가 시범을 보인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해주고, 그다음은 기다린다. 자발적으로 아이가 자랄 때까지 사랑을 주면서.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사랑해주는 일, 그게 나를 돌보고 관계를 지탱하고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