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품다

첫강의를 마치고

by 아륜

세상이 나를 안아주었다. 오늘 즐기며 잘할 거야, 하고 온 세상이 안아주는 느낌. 처음은 막연해서 떨린다. 수많은 첫 순간에 심장이 터질 듯했다. 그 처음들. 떨고 싶지 않은데 온몸이 긴장되고 생각도 말도 멈춘다. 대면 수업은 몇 달 해보았지만 모두 일대일이었고 여러 명은 처음이었다. 떨어야 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자신감이 모든 걸 압도하는 느낌. 나머지는 설렘과 기대감이 채우고. 떨기에 난 너무 자신이 있었다. 잘 들어주고 좋은 얘기를 해줄 수 있다는 마음. 글 앞에서 떠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여유.


그날 집을 나서자마자 연락이 왔다. 전 직장 선배에게.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듣는데 내 책이 나왔다고. 공중파 라디오에 내 소설이 소개되었다니. 유튜브를 찾아보니 정말 내 책 관련으로 5분 동안 방송이 되었다. 어느 독자가 사연을 보낸 것이다. 진행 김영철 씨가 소설 본문을 거의 한 쪽 통째로 읽는 것 같았다. 내가 쓴 문장을 누군가 인상 깊게 읽어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고 그게 선정되어 동시에 여러 사람이 들었다니… 선배에게 강의 가는 길이라고 하자 라디오 자료를 활용하면 어떻냐고 권해주었다. 오늘 하루 잘 해보라고 세상이 응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게 자리를 이동하는데 뜻밖의 친구 여럿이 연락을 주었다. 나는 강의 소식을 전했고 또 힘찬 응원을 받았다. 잠시 후에는 개명신고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보았다. 허가 결정문을 받은 후에 따로 신고를 해야 이름이 바뀌는데, 그 일 처리가 드디어 된 것이다. 서류에도 아윤이 되는 의미 있는 날. 그렇게 세상의 품에서 잔뜩 응원을 받고 오후에 강의 장소로 갔다.


나까지 일곱 명인 소규모 자리다. 일찍 도착해 교실을 보니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좋은 분위기라 마음에 들었다. 선배 말대로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며 강의를 열었다. 글은 단어의 연결이고, 관계는 우연한 점의 연결이란 점을 말하고 싶었다. 영상에 <외로움을 맡아드립니다> 본문이 소개되었기에 소설을 말하기에도 좋았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시간에 몰입이 되었다. 목소리는 처음보다 커졌고 말할 때 망설이는 순간이 없었다. 마음은 기대와 힘으로 가득 찼다. 너무 열심히 잘 써온 글들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을 마주하며 내가 힘을 얻었다. 그날 강의장에 가기 전에 이미 만 보 이상 걸어 피곤했는데 하면 할수록 힘이 났다.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말을 해주고 질문에 답하며 시간이 모자라 십 분을 더 있다가 나오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너무 좋았고 더 많은 분들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예감. 가까이서 자연스럽게 보는 분위기라 화장을 거의 안 했는데 나중에 방송에 나가게 되면 예쁘게 단장해야지 마음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오겠다는 엄마 말씀에 보통 거절하지만 생생한 대화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집 근처 와서는 편히 앉아 빠르게 왔다. 엄마에게 오늘 얼마나 재밌었고 다들 멋졌는지 얘기했다. 엄마는 그러다 내가 먼저 방송에 나가는 거 아니냐 했다. 엄마의 꿈 중 하나는 세바시 강연이고 지금 책을 쓰고 있다. 절반 넘게 쓰셨다 한다. 나는 방송에 나가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기회가 오면 나름대로 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한밤이었다. 걱정 만큼 피로하지 않았다. 소수의 분들과 함께 했지만 처음은 처음이었다. 새로운 한 계단을 가뿐히 밟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세상의 품에 안겨 하루를 보냈다. 눈을 감으며 세상을 안아주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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