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칼

by 아륜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나는 남자다. 왠지 그쪽이 어울린다. 직업은 검사다. 아니면 강력범죄 형사전문 변호사. 또는 외과의사.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나의 성향이 쓸모 있게 인정받을 것 같아서다. 전문직이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칼이 좋다.


얼마 전 사이코패스 범죄물을 보며 생각했다. 나의 성향이 안 좋게 흐르는 극단은 저렇겠구나. 날카로운 핵심만 남는 단순한 상태. 명료히 정돈된 단칼이 좋다.


만약 당신이 나를 주의 깊게 읽어준다면 알 것이다. 내용은 따듯할 수 있지만 형식은 칼 같다는 걸. 나는 옳음, 본질, 원칙을 좋아한다. 한 마디로 진실을 원한다.


진실은 때로 칼이 되어 사람을 찌른다. 진실을 말하면 누군가 다친다. 좋아하는 영화에서 옳음보다 친절을 택하라 해서 부드러운 말을 지향하게 되었다.


내게는 옳음이 친절이고 진실이 공감과 위로다.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옳음보단 친절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느낀다. 나의 외로움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진실한 선의가 칼이 된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조금은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인지하고 조심하는 것이지 본래 성향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진 무기는 오직 이것뿐이다. 그렇기에 칼날을 숨기고 부드러워지도록 해야겠다. 누군가 기댔을 때 너무 포근해서 마치 쿠션 같은 칼이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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