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봄, 영화 중경삼림을 보며 생각했다. 다음에 홍콩에 가면 기내에서 화양연화를 봐야지. 그러고는 홍콩에 가지 못했다. 두 해가 지나고 올해 봄의 어느 날,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한 오전에 나는 화양연화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집에서 영화 <화양연화>를 보았다.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 ‘가장’으로 꼽히는 순간은 짧을 것이다. 한 시절이기에 아름답다. 화양연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안타까워서다. 안타까움을 사랑하는 이유는 한계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꿈이 존재하고 그 꿈이 좌절되는 것.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꿈은 사라지고 생활만 남는다. 홍콩에 간 지가 벌써 7년 전이다. 그땐 가까운 나라니까 언제든 갈 수 있을 줄 알았지. 결국 이렇게 충동적으로 보게 될걸 2년이나 참았다. 홍콩에 대한 환상과 아쉬움은 못 갔기에 발생한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2023년도 이런 식으로 금방 가버릴 것만 같다. 영화 <시간은 충분해>에서 주인공의 하루는 일 년이다. 어제 생일 파티를 했는데 오늘도 생일이다. 실제의 일 년도 빠른데 일 년이 하루처럼 흐른다면 시한부나 다름없는 삶일 것이다. 다만 남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자신에게만 빠르다는 점에서 시한부보다 기억상실증 환자에 가깝다. 영화를 보면서 시간이 빠르다, 짧다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던 느낌은 시간을 ‘빼앗긴다’였다. 내 삶이고 내 시간인데 자고 일어나면 내가 모르는 일 년이 흘러 있다. 주인공은 갑자기 아이가 생기고 갑자기 가정을 잃는다.
아… 정말 인지하지 않으면 내 시간도 저것과 다르지 않겠구나. 일하느라 뭐하느라 눈앞에 있는 문제를 처리하다가 내 삶을 보내지 못한다. 내게 펼쳐진 시간과 이미 가진 아름다움을. 가끔 홍콩의 밤공기가 그립다가도 생각한다. 우리 집 앞도 누군가에게는 여행지다. 동시에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도 소중하다.
‘날이 아직 밝지만 날이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
영화 <소설가의 영화>에서 수어로 몇 번이나 반복된 대사다.
나는 아직 밝고 좋은 때를 살고 있다. 가끔 이 노래가 떠오른다. 내가 애기였을 때 나와서 다 커서야 알게 된 곡.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이상은>
며칠간 소설 <고독사 워크숍>을 읽었다. 쓸쓸한 제목과는 다르게 저마다의 삶들을 응원하는 작품이다. 그래도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를 읽는 건 꽤나 힘이 들어서 에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와 번갈아 읽었다. (에세이 쪽도 만만치는 않았다.) ‘대체로 나아지고 있다.’ 이 문장이 위로를 주었다. 대체로 나아지고 있다. 대체로 괜찮다. 영화 <위플래쉬>는 가장 몹쓸 말로 ‘Good job(그만하면 됐어)’을 꼽지만 그럼에도.
오늘 나는 작품들을 늘어놓으며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미루지 않고 바로 지금 다 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실행도 함께 한다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대체로 하고 있지만 모두 다 하고 있지는 못한다.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다. 나는 이 한계를 껴안아보려 한다. 장애물이 있어야 도전이 되고 의욕도 따라올 것이다.
아직 벚꽃이 달려 있는 봄에 우효를 듣는다. 우효의 목소리를 좋아해서 노래뿐 아니라 인터뷰도 수없이 보던 때가 있다. 그때 우효는 인터뷰 영상에서 영어로 그랬다. 이번 생에는 사랑에 많이 빠지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그런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는 중얼거리는 소리에 끌려 여러 번 라디오처럼 들었다. 오랜만에 그 영상을 보려고 찾아보니 사라졌다. 우효의 생각이 바뀐 건지 내가 못 찾는 건지.
오늘은 내 삶의 예고편이라 생각한다. 단순 요약이 아니라 흥미롭게 편집된 새로운 어떤 것. 내 삶 전체와 관련이 있으면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오늘은 달라질 수 있다.
조용한 저녁 노을빛 아래 이 글을 썼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하늘의 풍부한 색깔. 오늘은 하루뿐이라 안타깝고 아름답다.
요즘 부쩍 국수를 자주 먹는데, 화양연화를 보고 물든 것 같다. 영화 <아비정전>과 <타락천사>는 언제 만나게 될까? 보고 싶어지는 날 볼 것이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와 같은 추가 조건은 달지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