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을 때면 그만큼 공백이란 없음이 생겨난다. 확실함의 부재가 있는 것이다. 바쁠 때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것이 일으키는 일을 당한다. 바쁘지 않을 때는 내가 이 시간에 어디서 뭘 할지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러한 자유는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고 싶은 나조차 간혹 고통스럽다. 미정의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다스리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꺼내 읽는다.
‘내게 삶, 이 짧은 삶은 감정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이 외침은 때로는 고통이 되고 때로는 노래가 된다.’ (p.216)
불확실하고 새로운 하루를 원하면서도 자유 안에 뭔가를 채워 넣으려 찾다가 안 좋은 감정을 느끼기로 자처한 것이다. 잠깐. 모호하게 흘러가는 감정은 꼭 안 좋은 감정일까? 이건 그저 감정 자체가 아닐까?
해 질 무렵 장기하의 신곡 <해>와 <할 건지 말 건지> 두 곡이 이어진 뮤직비디오를 봤다.
첫 번째 곡은 그냥 하라는 거고, 이어지는 곡은 할 건지 말 건지 모르겠는 상태니까 제발 물어보지 말라는 내용이다. 마지막에는 ‘해’라는 가사로 끝난다. 본질을 싣고 달리는 경쾌한 멜로디에 마음이 풀어진다.
노래는 무얼 하라고 하지 않았다. 선택하고 책임지고 나아가고 그렇게 흐르는 게 살아감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가만히 있지는 말라는 뜻인 것 같다. 가만히 있을 때도 가만히 있자! 즉 없자! 라고 결정을 한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과 다르다. 가수는 이런저런 의미 부여를 빼고 그저 공연하고 싶어 만든 곡들이라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이걸 하나 저걸 하나 여기서나 저기서나 이렇게나 저렇게나 결국 나는 존재한다. 있든지 없든지 하든지 말든지 나는 여기 서서 이렇게 흔들흔들 춤추며 살게 된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아무것도 없고 싶어도, 무언가 계속 생겨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할 운명이다. 죽음이란 진정한 없음이 오기 전까지.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말고 가장 가까운 미래인 오늘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