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함을 유지할 책임

by 아륜

머문 자리에 먼지가 쌓인다. 하루치 각질, 머리카락 발자국, 바깥의 숨.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눈에 보이는 큰 물건을 치우면 공간이 제 몫을 한다. 공간은 범위다. 비울수록 가능성을 채운다.

기계의 힘을 빌려 먼지를 빨아들인다. 위잉 소리가 나며 생각의 먼지도 사라진다. 청소기를 제자리에 놓으면 공간도 나를 따라 멍해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문제는 처리했고 보이지 않는 과제를 해결할 때다. 청소기는 간편한 대신 먼지를 제거하면서 먼지를 만들어낸다. 물걸레를 밀대에 끼워 뽀드득 밀면 비로소 청소하는 기분이 든다. 청소포가 더러울수록 집은 깨끗해진다.

바닥 청소를 마치면 곧 세탁기가 흥얼거린다. 세상을 묻힌 옷감이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쨍쨍한 빛에 옷을 펼친다. 창틈으로 산들바람이 불어 옷이 펄럭거린다.

좋은 재료로 밥을 지어 양껏 먹는다. 조용히, 느긋이, 위대하게. 의식을 마치면 커피를 내린다. 향은 먼저 코를 적시고 입속을 데운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먹은 그릇을 치운다. 식기가 음식을 담기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릇도 옷처럼 건조해지는 동안, 나는 얼굴과 몸을 씻는다. 어제 청소해 반짝이는 욕실에서. 물기를 닦고 나오면 깨끗한 공간이 나를 맞는다. 얼굴에는 햇빛을 맞이할 크림을 바른다. 바싹 마른 옷을 입고 나서면 음식물을 들고 분리수거장에 가도 기분이 좋다. 식재료의 찌꺼기까지 말끔히 정돈하고 발 닿는 곳으로 산책을 떠난다.

어지러운 감정을 닦은 후에 나는 뽀송해진다. 일은 조금 번거롭지만, 생활의 놀이로 여기며 삶의 뽀송함을 유지하면 좋다. 어떠한 목적과 욕심 없이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먼지를 닦아낸 자리에 품위가 쌓이면 단잠을 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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