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옷
혹시라도 몰라볼까 엉덩이에서 크게 외치는 브랜드 로고보다 나의 볼륨이 먼저 눈에 들어왔으면 한다. 짧은 밑위에 맞게 제작된 지퍼를 올리고 작은 단추를 채운다. 골반에 착 감기는 착용감이 좋다. 골반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내려가면 세련된 느낌을 해치므로 주의한다. 허벅지는 숨막히지 않고 적당히 타이트하면서 라인이 예쁘게 떨어진다. 나는 숨쉬기에 편해도 나의 허벅지는 숨막히게 우아하면 좋겠다. 무릎의 경계를 지나 종아리로 가면 스키니 진답게 빈틈이 없다. 짙은 색의 바지를 입고 있지만 옷을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다리의 라인은 그대로 드러난다. 발목은 살짝 드러나는 길이로 끝나는 게 좋다. 청량한 정도의 발목 노출은 도시적이고 유연한 느낌을 준다. 내가 바지를 입은 것인지 바지가 나를 입은 것인지 모르게 청바지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 옆으로 몸을 틀어 거울을 본다. 치마를 벗고 바지를 입는 즐거움 중 하나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남녀평등한 부위인 엉덩이를 뽐내는 것이다. 앞에서 보아도 옆에서 보아도 뒤에서 보아도 자연스러운 굴곡이 마음에 든다. 이제 위에는 어떤 거적때기를 걸쳐도 설득력 있을 것이다. 엉덩이를 완전히 가리지 않으면서 허리가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길이로. 하얀 티셔츠가 아니어도 좋다. 아무런 목표 의식이 없어 보이는 흐리멍덩한 얇은 티 하나를 걸친다. 갑자기 산책을 나가도 괜찮을 슈즈에 두 발을 넣고 다리를 길게 뻗어 걷는다. 초점이 정확하지 않은 시선이 여럿 느껴진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소리 없는 영향력을 내뿜는다.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정직한 옷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