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드라마 <아내의 자격>

by 아륜

안판석 연출의 드라마는 따뜻한 소설 같아 좋다. 아내의 자격은 엄마와 함께 본방 사수했던 작품이다. 그때는 불륜커플, 대치동 선경아파트, 스윗한 치과의사 정도의 아이디어로만 얇게 즐겼다. 다시 본 아내의 자격 키워드는 자전거다.


자전거는 느리다. 느리지만 운치 있다. 갇혀 있지 않고 풍경을 경험하며 달린다.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천을 따라 바람을 맞으며 간다. 비가 오면 그대로 비를 맞는다. 흙탕물이 튀길 수도 있지만 걱정은 없다. 젖은 가방도 햇볕에 곧 마른다. 자전거에는 물건을 많이 싣지 못한다. 대신 가볍게 달릴 수 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옆 사람의 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다. 쉽지 않지만 그 사람을 위한다면 중심을 잡고 달릴 수 있다. 자동차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자전거가 어울리는 사람끼리 다시 만나 해피엔딩이 되었다.



극본에 훌륭했던 점이 있다. 치매 환자를 통해 입장 바꾸어보기를 가르쳐 주었다. 치과의사가 치매 환자를 돌보러 갔다. 서래의 어머니였다. 태오는 서래의 어머니에게 치과 도구를 주고 저 먼저 해 주세요, 하며 검진 의자에 눕는다. 치료를 받지 않겠다던 치매 할머니는 신이 나서 병원놀이를 했다. 대상자가 충분히 적응된 다음 다시 의자에 앉혀 치료를 했다. 서래에게 태오는 남의 남자였다. 물론 자신도 남의 여자였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인물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아니, 그 전에 자전거 찾아줄 때부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에 마음에 들었던 점은 태오의 아내 지선이 캐릭터를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지선은 성공한 학원인으로 화려하게 지내다 나중에 구속된다. 태오는 면회 가서 지선에게 책을 보여 준다. 느림의 미학을 알려 주는 책이다. 그러나 지선은 나가서 자기답게 빠른 속도로 살겠다며 그 책을 거부했다. 여기서 나는 작가의 설정이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다. 인물의 집념과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주인공 서래는 아들의 학원 선생님 남편과 바람피우는 여자다. 아내의 자격을 잃었다. 그러나 엄마의 자격은 잃지 않았다. 서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에 더 좋은 엄마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결이에게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아빠와 헤어진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시청자가 둘을 응원할 수 있도록 상황을 설계하고, 때려주고 싶은 악역에게 가혹한 결말을 주어 동정심을 일으키는 멋진 각본이었다.


내게 아내의 자격은 불륜 드라마나 대치동 사교육 드라마가 아닌 자전거 여행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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