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봄날을 꿈꾸며
창 밖 푸르름이 거실 통창을 뚫고 이내 눈앞으로 건너올 듯한 기세로 덤벼드는, 제법 짙은 여름날이다. 정신없는 학기를 보내고 기말 시험을 끝으로 다소 긴 방학이 시작된 지 좀 되었다. 방학하면 곧장 이곳을 손보며 뭐라도 끼적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막상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보니 글보다는 현실의 부딪는 것들이 더 격하게 나를 죄어와 여러 날 몸과 마음은 또 부산스러웠다.
몇 날의 피로와 괴로움을 털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들어선 이 장소는 후미진 내 마음속처럼 꽤 고적하다. 이곳에서 맛보는 고립의 느낌은 조금은 색다른 듯, 친숙한 듯. 늘 그러하듯 쓸쓸하지만, 나쁘지 않다. 외진 곳에 얻어둔 비밀의 방을 드나드는 심정이랄까. 어디에서건 중심이 되는 자리가 있으면 변방도 있게 마련이다. 비주류의 삶이 이상한 것이 아니듯 지금 이 방의 복작거림 없는 고요와 희미함이 크게 마음 쓰이지 않는다.
인적 드문 곳에 사는 이들이 다 이런 마음이진 않을 테다. 물론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휘황한 빛을 동경하게 될지는 알 수 없겠다. 사람이 참 이중적인 게, 이러면서도 내가 없는 사이 이곳에 들른 이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배너로 뜨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응모를 하겠다는 궁리를 한다. 적막한 이곳을 화려한 조명이 감싸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사실 물리적으로도 이런 장소를 오래 꿈꿨었는데 갈수록 무척 요원해진다. 실제로 거처할 곳을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인데, 세상의 모든 장소들이 어느새 그렇게 높이높이 우뚝 치솟아버린 건지. 너무 가팔라 걸어볼 의욕마저 상실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떠올라 다소 서글펐다. 글을 쓰려는 모든 이들은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굳이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그 두 가지는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예전의 기록들을 간간이 옮겨 놓을 때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주신 분들은 이 외진 곳에서 쏘아 올리는 우련한 불빛을 어떻게 발견하고 오신 건지, 내심 궁금하고 감사하다. 세 분의 소중한 구독자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에서야 <브런치 이용 안내>를 들여다보는 중이고 브런치 홈을 여유롭게 훑기도 한다.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기 위해 이 방의 구석구석을 땀나게 뒤졌다. 얼마 전에도 분명히 만들었는데, 돌아서면 금세 잊고 마는 시절이 이럴 때면 더더욱 마뜩잖다.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생각은 거의가 조각조각 쪼개져 부유하는 먼지처럼 떠다닌다. 그래서인지 흩어진 것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고 이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기록을 자주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화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어설프고, 불면 탓이라 하기에도 의학적 식견이 없는 나로서는 알 길 없다. 담당의에 의하면 예민해진 뇌의 빈번한 오작동으로 몸이 이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라고는 했다.
몇 해의 투병은 생각들을 파쇄해버리는 후유 기능(증상이나 부작용이라기보단 새로운 기능에 가깝다 하겠다. 빈번했던 생각 몰이를 없애주었기 때문이다.)을 남겨 준 듯하다. 근래의 나는 몰입이 어렵다. 파쇄된 생각들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고 요행히 하나로 모아 깊은 나만의 우물 속에 빠뜨려 봐도, 조금 더 진하게 우려 건져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우물 속에 겨우 담아진 생각들을 걷어올리려 잘방거리다가는 외려 내 몸뚱이가 우물 속으로 첨벙하기 일쑤다.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를 문장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나만의 방을 얻으며 보증금 대신 건넨 약속이 있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뭐라 하진 않겠으나 천천히, 조금씩 살피고 다듬긴 해야겠다, 싶다. 브런치와의 약속이라기보단 나와의 약속인 셈이다. 나의 적나라한 현실을 브런치팀의 누군가에게 소개하며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기도 하다. 하고 있는 공부와 너무 모순되게도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에 몹시 취약하다.
오래전 글들을 브런치에 옮기기 시작했을 때는, 이곳을 대숲으로 여기며 속풀이 글을 마구 휘갈기는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간 들락거리며 내린 결론은 예상을 빗나갔다. 그럴 수 없었다. 한때는 글이 치유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은 적이 있다. 행간마다 암호를 새겨 넣는, 철저한 자기검열을 거치는 글을 적으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바닥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올라 제멋대로 뱉어질 것만 같았지만 참아야 했고, 참았다.
글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단이 되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글 속에 내가 갇히는 경험을 했다. 양말을 뒤집 듯 속을 다 보일 수 있었다면 정말 치유가 되었을까? 모르겠다. 상처는, 아픔은 내 안의 '나'가 먼저 그것을 인정해야만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글이 되었건, 말이 되었건, 또 다른 무언이건 '나'와의 조율이 필요하다. 어쩌면 많은 부분 스스로 인정하며 치유되었을 수도, 혹은 치유되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것이 나의 경우, 비단 글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숱한 세월을 흘려보냈는데도 나는 아직 온전히 '나'를 마주하지 못했다. 변화가 필요한데, 수십 년 습관처럼 마음과 몸에 스며든 은둔과 칩거의 기운이 거푸 찬물을 끼얹는다. 거기엔 건강하지 않은 몸도 한몫하고 있다. 뒤늦게 생의 봄날을 그리는 백일몽을 꾸며, 이미 상실의 바닷속에 잠겨 형체도 분간할 수 없는 '나'를 수색해 남은 생의 실마리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내 봄날은 그러쥐기 무섭게 이내 사라진,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풍장하듯 떠나보낸 생의 봄날이 다시 눈앞에 제대로 펼쳐질지는 나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겠지만 불쑥불쑥 풀 죽은 '나'가 어른거릴 때면 여지없이 주눅이 든다. 몰래 얻어 놓은 이 방에서, 내내 숨기만 하는 '나'의 뒤를 좇아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내면을 하나씩 읽어주고 싶다.
방학 동안 잘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