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미소가 어렵다
'426번!'
가끔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내 귓전을 울리는 번호, 426. 그 끝을 따라붙는 '좀 웃어요'와 함께 정장 차림의 남성 상반신 실루엣이 얼핏 보이는 듯하다 사라진다. 아직 그 번호가 기억 속에 떠다는 것이 신기하고, 웃으라는 남자의 멘트는 심지어 진지하다.
이야기는 삼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다들 취업 준비로 열공하고 있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편입을 고려 중이었다. 당연히 전공을 살리는 취업에 관심을 둘 리 없었다. 과 친구들 상당수는 몇몇 대기업과 금융업, 연구소 등에 원서를 내고 필기시험을 보러 간다고 했다. 여럿이 함께 서울로 간다니 재밌을 것 같기도 해서 아무 준비도 안 한 나도 여행 삼아 따라나섰다. 마치 각 회사의 시험 유형을 파악해보기라도 하려는 듯 친구 따라 원서를 내본 몇 군데는 시험도 봤다. 열심히 준비한 친구들은 그 후, 당시 내로라하는 기업과 은행, 연구소 등에 합격하기도 했다.
핑계 같지만 처음부터 나는 전공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학교 수업에, 성적에 충실했을 뿐이다. 학교도, 과도 모두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강제한 것도 아니었다. 그 얘기를 끌어오자면 너무 길어진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다시 헤집어야 한다.
애니웨이, 놀러 간 건데 시험을 잘 보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과 친구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안 나는 짬짬이 편입과 관련해 학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나, 하려던 공부가 완전히 다른 분야다 보니 편입은 말도 안 됐고 게다가 내 형편으론 학원 수업도 받을 수 없음을 알았다. 아버지의 일이 잘못되어 실질적 가장이었던 엄마의 몫을 내가 져야 했는데, 그걸 잊고 꿈(정말 꿈이었을까?)을 좇는답시고 여러 날 뻘짓을 한 셈이었다. 당장 해야 할 건 돈을 버는 거였는데 잠시 그것을 잊은 채 이상만을 꿈꾸고 있었던 스스로를 채근하며 계획을 포기했다.
약간의 좌절을 씹으며 취업준비센터(?당시에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난다.)에 들러 벽에 붙은 구직과 구인을 살피는 중, 그곳에서 일하는 분이 내게 지원서 한 장을 내밀었다.
"학생, 여기 한번 내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내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던 것 같다. 받아 든 원서는 다름 아닌 항공사 승무원 입사지원서였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이라 집에 와서도 시큰둥해서는 책상 위에 그냥 던져놓았다.
공교롭게도 며칠 후 엄마의 얘기 속에 아래층의 승무원 언니가 등장했다. 돈을 엄청 잘 번다는 것과 여기저기 해외를 돌아다닌다는, 내겐 마치 먼 세상 이야기 같았다. 그렇게 살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원서를 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것(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른다).
1차 서류전형 통과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2차 면접을 봤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의 면접이라 크게 부담되진 않았다. 당시엔 정보(애써 알아보면 있었을 것이다.)란 게 없던 시절이라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깔끔한 정장(면접 복장을 지정해줬던 것 같다.) 차림이면 되겠다 싶었고, 하필 머리는 졸업 사진을 찍기 전에 이미 짧게 자른데다가 뽀글뽀글 어머니 파마를 한 상태였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면접은 너덧(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지만, 여럿이 서있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명이 한꺼번에 본 것 같다. 역시 너덧 명의 면접관이 긴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라인을 따라 한 사람씩 줄 지어 마치 모델 워킹하듯 걸어 그들 앞에 서야 했다. 앞의 사람이 먼저 출발했고 내 차례가 왔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걸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 신어보는 높은 굽의 힐 때문에 당당함이 무색하게, 발목이 삐끗하며 몸이 한껏 한쪽으로 기울었다. 함께 면접을 보는 이들도, 면접관들도, 안내하는 이도 모두 나를 주목했다. 아픈 것보단 하이힐 때문에 기우뚱한 내 모습이 속으로 너무 웃기고 무안했다. 당황할 새도 없이, 나는 활짝 큰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당당히 걸어 그들 앞에 섰다. 그렇게 서있으면서도 조금 전 상황이 계속 떠올라 만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던 2차 면접을 끝낸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3차 필기(영어) 시험을 보러 서울로 가야 했다. 3차 시험도 합격했다. 오호. 해보라는 거지. 4차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또 서울로 갔었나(3차 시험 볼 때 같이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겠다. 어쨌건 요행히 5차 최종 면접만 남겨두었다. 이제 다 온 거였다. 하나만 잘 끝내면 나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때껏 아무렇지 않았던 옷이 괜스레 신경 쓰였고,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깊어졌다. 결혼한 타지의 오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돈을 조금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막상 옷을 사고 보니 면접에 입을 수 없는 것이었다. 2차 면접 때와 동일한 복장을 통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걸 모르고 옷을 사버려서 괜히 헛돈만 써버린 거였다. 2차 때 입었던 옷(겨울인데도 면접 복장은 반팔의 투피스 정장이었던 것 같다.)을 그대로 챙겨갔다.
오빠가 보내준 돈으로 사 입은 도톰한 카멜색 투피스를 입고, 여타의 사정으로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와 함께 서울역에 내렸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필기시험 때도 아버지와 함께 갔던 듯싶다. 역 바깥(역내로 들기 전 초입)에 늘어선 포장마차(천막? 기억이 가물) 같은 곳에서 김밥과 뜨끈한 국수를 점심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면접 후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나는 면접장으로 향하고 아버지는 친구를 만나러 가셨다.
사내 면접장으로 가는 길에 나처럼 면접을 보러 온 화려한 외모의 여자를 만났다. 부산에서 왔다는 그녀는 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유함이 넘쳐흘렀다. 내게 먼저 인사하며 건네는 크고 환한 미소가 무척 빛났다. 몇 마디 오가지 않았는데도 꽤 활달하고 밝은 사람인 듯했다. 우리는 함께 대기실에서 면접 차례를 기다렸다. 조금 긴 시간 대기하는 중에, 안내하는 남자 직원이 자꾸 내 번호를 부른다.
"426번!"
"네!"
"좀 웃어요."
"네?"
"426번!"
"네!"
"좀 웃으라니까요."
그때까지도 나는 그 직원이 왜 나한테 자꾸 웃으라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마지막 관문이었기에 더 결연한 마음과 굳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내 번호를 불렀지만 나는 자꾸 웃으라는 그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속으로 욕했다. 정신없는데 왜 자꾸 나보고 웃으라고 난리야!
드디어 면접관들 앞에 한층 더 단단한 표정으로 섰다. 내내 환하게 미소를 머금은 부산의 그녀와, 또 다른 미소의 그녀들과 함께.
면접관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몇몇 면접관이 내게 자꾸 질문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마지막 질문이다.
"점심은 뭘 먹었나요?"
"네, 아버지와 함께 김밥과 국수를 먹었습니다!"
꼭 붙고 말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내보이기라도 하듯, 더더욱 견고하고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의 쓸쓸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다시금 다짐했다. 꼭 합격해서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리라. 이미 멋진 스튜어디스가 되어 있는, 달콤한 상상을 했다. 한 번도 꿈꾼 적 없으면서, 그때는 그것이 내 오랜 꿈일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얼마 있지 않아 그건 정말 꿈이었음을. 내 찰나의 꿈은 그렇게 한낱 허망한 백일몽으로 막을 내렸다.
불합격의 소식을 접한 후 나는 두문불출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최종에서 왜 탈락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나만 몰랐을 테다. 며칠을 끙끙대다 절박함으로 항공사 대표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 백만 번은 할 일이었지만 그땐 정말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확고한 자세로 면접관의 질문에 아주 씩씩하게, 또박또박 답도 잘했는데 왜 떨어뜨리냐고, 난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그러니 뭐가 잘못된 건지 다시 확인해 달라고.
그 편지가 수신인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을 리 없고, 혹 누군가 그걸 뜯어봤다면 개 어이없어하며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테지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엔 없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왜 불합격 처리가 되었는지는 자명하게 나온다. 아마 어색한 하이힐이 아니었다면 2차 면접 그때 이미 떨어졌을 것이다.
운명은 내게 색다른 기회를 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나는 잡지 못했다. 뜻밖의 행운일지라도 준비되지 않은 이는 절대 거머쥘 수 없다.
만약 그 일이 진짜 내 꿈이었다면 잘못된 이유를 찾아 재도전도 했겠지만 얼마 후 아무렇지 않게 나는 털어버렸다. 아쉽긴 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아주 적절한 귀인(부정적 일에 원인을 찾아 그것에 귀결시키려는 것)을 하며 마무리지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날 때까지도 그 직원이 내 번호를 왜 그토록 자꾸 불렀는지, 면접관들이 왜 자꾸 내게 질문을 던졌는지 알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 후에 우연히 집어 든 작은 책자의 표지에서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승무원의 얼굴 아래, 아주 크게 적힌 '미소'라는 글자를 보았다.
정말 나의 우둔함은 끝 간 데 없었다.
나는 그 후로도 오래 미련하고 어리석었다.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지 않은(못한) 여러 길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다. 다만 매사에 포기가 지나치게 빨랐던 이유가 궁금하다. 이 이야기를 세세히 기억해내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정말 꿈이 있었을까? 어릴 적 내가 꾸던 꿈은 모두 가짜였을까. 아직까지도 내가 '나'를 잘 몰라서, 요즘 부쩍 더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