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원래 도는 거니까
늘 그러했듯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 될 줄 알았다.
한밤을 꽤 오래 뒤척이다 겨우 선잠에 들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눈을 떴다. 누워 있는 게 분명한데 까무룩 쓰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다. 걷잡을 수 없이 눈앞에 들이닥친 무서운 움직임.
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모든 사물의 아래, 위가 뒤바뀌며 멈춤 없이 돌고 있었다. 멈춤이라는 게 원래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것처럼, 돌았다. 자다 깨다를 너무 자주 해서인지 현실이 아닌 이상한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절대 빠져들면 안 되는 아수라장 같았다.
배가 살살 아팠다. 설사 기가 느껴져 도저히 침대에 계속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이내 토할 것만 같다. 일어나야 했다. 간혹 지나치게 몸이 안 좋거나 힘들 때, 위경련처럼 배 속이 짜르르 꼬이며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어지러움과 함께 실신이 이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토록 거칠고 위협적인 회전은 아니었다. 너덧 바퀴 천천히 돌다가 멈추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회전은 좀 달랐다. 위, 아래가 뒤바뀌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그래도 곧 멈출 거라 믿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더 미친 듯 눈앞이 돌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이건 분명 꿈속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소리 없는 비명을 있는 힘껏 질렀다. 겨우 단말마적 비명이 어둠을 뚫고 삐져나왔다.
딸아이가 먼저 달려와 나를 일으켰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웬만해선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내가 두려움에 떨며 아이처럼 울었다. 너무 무서웠다. 뒤이어 온 남자와 딸아이가 함께 부축해 화장실 변기에 겨우 앉았다. 혼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 내 몸을 잡고 있는데도 여전히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물들.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덮으면 돌고 있는 세상과 차단될 줄 알았다. 소용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세상도 도는 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다리가 저절로 흔들거렸다. 가만있고 싶은데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다리는 심하게 떨고 있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줘봐도, 제멋대로였다. 혼자 볼일을 보지 못하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정신없는 중에도 미칠 것 같았다. 돌고 있는 세상 속에 혼자 발가벗겨진 채 버려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만 같았다. 아직 의식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가도, 차라리 전처럼 실신이라도 해서 이 무서운 세상에서 빠져나가고만 싶었다. 실신은 하지 않았다. 용케 수습을 하고,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돌쟁이가 걸음마를 떼어놓듯 겨우겨우 걸음을 옮겼다. 다리의 떨림은 조금 잦아들었다. 구역질도 났지만 토하지는 않았다.
'빙글빙글'이라기보다 여전히 '삥글삥글'의 제곱으로 돌고 있는 세상은 파격, 아니 파국이었다. 그곳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지옥문을 열고 뛰어든 느낌이었다. 경계를 잃어버렸다. 지옥 같은 혼돈의 세상은 이치에 안 맞게, 뒤죽박죽이 아니었다. 일정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무질서와 뒤섞임이 없는, '위와 아래의 치환'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름대로 그 세상은 규칙적으로 흐르는데, 나만 역진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어쩌면 도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체감하지 못할 뿐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은 원래가 도는 거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나를 중심축으로 한 이 고배속의 거친 원운동을 체감하고 있는 것일까.
침대에 다시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었다. 그 사이 어둠은 사라지고 아침이 훤하게 이마를 드러내며 다가와, 두려움에 몸무림 치는 나를 조롱하듯, 활기 띤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혼돈의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나를 축으로 한 회전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눈앞의 원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응급실을 가자고 했지만 한 발짝도 옮겨 놓질 못한 채 혼자만의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회전을 계속 체험해야 했다. 혼돈의 세상을 빠져나오기 위해 분투할 기력도 없었다.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이, 겁에 질려 뒤움친 몸은 점점 쪼그라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버티고 있던 의식마저 흐릿해졌다.
[메니에르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