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지만 아름다웠던
세 번째로 추가한 약은 크게 효과가 없다. 약의 부작용을 몇 해 동안 심하게 경험한 터라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할 때마다 조금 불안하다. 의사도 그걸 알아차려서인지 반 알씩 준다. 처음 멜라토닌과 함께 복용한 두 번째 약도 반 알이었다. 그 약까지 먹었을 때 처음으로 네 시간을 깨지 않고 잔 적이 이틀 정도 있었다. 항상 자다 깨다를 반복했었기에 연속된 잠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내겐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며칠뿐 다시 또 서너 번을 깬다고, 지난 진료 때 얘기했더니 의사가 새로운 약을 추가로 처방해줬다. 추가한 것까지 해서 세 종류의 약을 털어 넣는데도 외려 깨는 횟수가 늘었다. 너덧 번을 깬다. 그래도 치료 전보다는 짬짬이 자는 시간이 확실히 길어지긴 했지만, 나의 불면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마지막 약은 통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내겐 신통찮다. 반 알이어서 그런 건지 목과 허리 디스크로 인한 통증은 그 약으로도 잦아들진 않는다. 다음 진료 때는 세 번째 약을 빼 달라고 해야겠다.
불면을 한밤의 파수꾼처럼 여기며 살았다. 빈틈없이 나를 따라붙는 정말 충실한 파수였다. 지금보다는 젊고, 체력이 덜 저급했을 때는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치료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한 번을 먹지 않았었다. 한창 글을 쓰고 싶었을 때는 매일의 밤이 온전히 내 것인 것만 같아 어둠이 오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불면은 괴로웠으나 한편으론 세상이 잠든 사이 홀로 깨어있는 나는 왠지 특별한 듯했고 심지어 멋지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불면은 나의 애틋한 동지이자 적이었다.
불면하는 밤이면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하지 않았다. 양떼를 세지도, 밤하늘의 별들을 헤려고도 하지 않았다. 환한 낮이면 어김없이 깃드는 알 수 없는 막막함도 어둠의 불면은 모두 거두어주는 듯했다. 나는 자연스레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복슬복슬한 양들과 반짝거리는 별들 대신 문장에 수놓을 색색의 단어들을 채집하느라 새벽을 넘기고, 나만의 언어로 짜 놓은 문장들 속에 몽롱하게 파묻혀 헤어나지 못하다 보면 어느새 날은 희붐하게 밝아 있었다. 그런 밤들이 이어질수록 그것의 치명적 이면을 볼 수 없었던 나는 다소 애처롭고 쓸쓸한 그 벗과의 내밀한 만남을 쉬이 뿌리칠 수 없었다. 어둠의 베일을 쓴 불면은 한낮의 소란과 산란한 마음을 일시에 덮어버릴 만큼 고혹적이었다.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또 기껍게 함께하였다.
그렇게 하루의 끝이 존재하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어디부터가 시작인지도 애매한, 피로한 하루들이 쌓여갔고 어느 날인가, 그토록 푸근하게 날 감싸주던 어둠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잠 못 드는 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색도,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고독을 즐길 수도 없었다. 윤동주의 <못 자는 밤>처럼 나 또한 하나, 둘, 셋, 넷... 별 대신 밤을 헤고 있었다. 정말 밤이 많기도 했다.
어쩌다 이상한 기운에 사로잡혀 전처럼 한두 줄 문장을 엮어 보기도 하지만 찰나일 뿐, 마지막 단어 위에 걸터앉아 못 자는 밤을 또 하나, 둘, 셋, 넷... 세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러고는 혼자 어둠 속을 뒤놀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쓸데없는 사념에 엉켜드는 것뿐이었다. 숱한 밤들을 번민으로 지새우며 맞는 하루들이 찬란하게 다가왔을 리 없었다. 그때부터 불면은 질척거리며 나를 따라붙는 스토커 같았다.
이미 불면과 한몸이 된 지는 너무 오래되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관계는 조금씩 원망으로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우직한 파수의 이면, 가득 품은 독을 알 리 없던 나는 어이없게도, 어둠의 베일을 쓴 다소 신묘한 듯한 불면의 그 철저한 고독과 침묵과 아픔을 사뭇 아끼고 사랑했었던 모양이다. 가끔,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난 무수한 불면의 밤은 분명 고통이었으나,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괴로웠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투병 이후는 더없는 고통의 시간으로 전락했지만 그럭저럭 또 버텨왔고, 견뎌내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불면을 향한 연정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것은 함께한 아름다운 밤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비록 길게 가진 못했지만 불꽃같았던, 나(우리)만의 밤이었다. 이쯤 되니 불면 예찬론자 같다. 아니다. 이제는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대척하고 있다.
불면은 함께하면 할수록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치명적이다. 얼마간 갖게 되는 달콤함에 빠져 가까이하다간 끝내 손쓸 수 없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가능하면 곁에 두지 않아야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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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움으로 여러 해 힘겹다가 왼쪽 귀에 또 이명이 심해지며 설핏 불안이 기어 올 무렵, 몇 년 만에 다시 찾아간 이비인후과 교수(처음 진료 후 우연히 본 티브이에서 명의라고 나오더라. 나는 잘 모르겠다.)는 정신의학과 진료를 권했다. 청력 검사(메니에르로 왼쪽 청력이 조금 떨어진 상태다.)도 하지 않고 귓속만 훑었다. 나는 다시 귓속이 먹먹하고 이명과 어지러움으로 내내 괴로운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잠을 못 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불면, 불안, 어지러움, 공황장애 등을 서너 문장 정도로 짧게 말하더니 정신의학과 예약을 잡아줬다. 티브이 속 슬기로운 의사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여유롭고 따뜻하던데, 현실은 퍽 건조하고 조급하고 냉랭하다.
정신과 진료를 처음 보던 날, 내가 가진 몸의 이상과 병의 이력만 설명하는 데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로 인해 진료비가 원래보다 곱절 이상은 나왔다. 불면과 여러 병증으로 인한 뇌의 예민함이 문제라고 했다. 심리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뇌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마음 따로 뇌 따로인가요? '라는 질문에 의사가 답을 했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여하튼 현재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 반응들은 뇌의 오작동 때문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도 불면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루 이틀 잠을 못 잔 기억은 있는데 특별히 불면으로 애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불면이 시작된 건 결혼 후부터다. 당시엔 나도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고, 한창 '일만 하는지, 일도 하는지'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하여간 늘 바쁘기만 했던 남자를 기다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면 부족이 이어졌다. 그 시간이 잦아지면서 점차 불면으로 확대되었다. 잠자는 시간을 놓쳐버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와 달리 머리만 닿으면 곯아떨어지는 남자는 내 불면을 알 리 없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도 나의 불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몸의 여러 이상 증상 때문에 얼마 전에야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 이비인후과 교수가 정말 슬기로운 의사인가...?
"불면을 그토록 오래 견디며 어떻게 살았냐?"(진료 보는 과마다 공통된 질문은 어떻게 견뎠냐,였다.)라고 정신과 의사가 물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고 답했다. 계속 방치하면 위험(치매를 의미하는 듯했다.)하다고 의사가 경고했다.
어떤 병이든 치료가 시작되면 왜 약을 먹어야 할까. 약이 싫은데, 아니 약 자체가 싫다기보단 약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 싫다(이제는 하릴없이 약에 의지하는 중이지만). 그래서 약 부작용이 더 심한지도 모르겠다. 약 없이는 안 된다고 판단했으니 주는 거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약 없이 잠에 들고 싶다. 하루 중 일정 시간을 걷고, 제시간에 먹고, 되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고... 하는 일련의 룰을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꽤 사소한 듯하지만 내겐 제법 '큰일'이다.
몸에 기어드는 여러 변화에 유독 둔감했던 나는 여전히 전과 별반 다름이 없다. 다만 이제는 몸이 급하게 보내는 시그널을 알아차리는 정도는 되었다. 뇌의 오작동이든, 아니든 그것을 무시하면 다시 공포가 시작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