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이 잡히지 않아요."
대학 한방병원의 젊은 의사가 안타까운 표정과 음성으로 나직이 내게 말했다. 단정히 묶은 머리와 연하고 화사한 메이크업이 무척 예쁘게 잘 어울렸다. 누워서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때문에 집에 묶여있는 딸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아릿했다.
"기혈 순환이 잘 안 되고, 무엇보다 환자분 몸이 너무 쇠약해요. 그동안 일상생활도 힘들었겠고..."
최악의 몸 상태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많았냐고 물었다. 그간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생각 없이 아주 편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머리는 어느 때보다 가볍고 자유로웠는데 왜 몸뚱이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무조건 쉬고 잘 먹고 잘 자야 한다고 했다. 낮에도 자라고 했고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내 몸 상태와 처방을 상냥하게 나열해주고는 마지막에 덧붙이며 물었다. 의아함이 내재된 질문이었다.
"어떻게 참고 지냈어요?"
어쩌다 하릴없이 병원을 갈 때마다 항상 의사들이 하는 공통된 말이 그의 입에서도 나왔다. 보기보다 미련하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어서 의사의 마지막 그 물음이 당연한 수순 같이 여겨졌다.
어지러움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어느 하나 딱 집어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안 좋은 것 투성이었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 변스럽지도 않았다. 귀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약한 몸을 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몸의 반응에 둔감하고 무감한 나도 어쩌면 은연중에 그걸 알아차렸기에 한방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얼굴과 귀, 손, 발, 배, 목 등에 크고 작은 침들을 여러 개 꽂고 누웠는데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아직 차가운 3월의 바람이 온몸에 파고들어 맘도 몸도 움츠러들게만 했다. 탕약을 먹어야 한대서 한 재를 지었다. 약 먹기 싫어하는 내가 한약이라고 좋았을 리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포의 회전 후 일주일여 만에 겨우 움직일 수 있었던 나는 병원을 찾아 침을 맞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딸애의 몸 상태가 아무래도 수상했다. 내가 정신없이 돌고돈 그날 이후 내내 녀석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꼭 그런 촉은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돌고도는 세상 속에 혼자 버려졌던 나는 며칠을 안간힘으로 버텨냈었다. 버티기밖엔(그때까지도 이전에 몇 차례 경험했던 이석증이 재발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할 수 없었다. 움직임이 느려지긴 했지만 느낌으론 거의 종일 무서운 회전 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불안도 커져 갔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또 회전축이 되는 건 아닌지, 몹시 두려웠다. 하루를 용케 버티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돌긴 했지만 속도는 조금 떨어졌다. 겨우 견딜 수 있을 뿐이었지 괴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서 있지도, 잘 걷지도 못했다. 코끼리코를 수백 바퀴 돌고 난 후에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는 그보다 더 심하게 돌았던 듯하니 제대로 걷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테다. 회전은 멈췄는데도 이내 원래의 몸이 되진 않았다. 머릿속이 뒤엉켰는지 안갯속 같이 멍하고, 흐릿하고, 무거웠다. 몸은 만신창이가 된 듯했다. 돌진 않는데도 심한 어지러움이 깔려 있어서 한 발을 내딛는 것조차 불편하고 불안했다.
내가 아픈 사이 집안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내 수발을 드는 딸아이의 심상치 않은 몸 상태와 심각한 전화 통화도 그렇고, 무슨 일이 생기면 유리 멘털을 자랑하는 남자의 일그러진 표정도 그렇고. 그나마 중학생(당시) 아들의 해맑음이 집안 공기를 덜 탁하게 했다.
웬만해선 누워 있는 일이 드문 내가 침대와 한몸이 되었다는 건 꽤 많이 안 좋음을 의미했다. 디스크로 오래 입원했을 때도 난 거의 혼자 있었다. 병원이 멀어 식구들 오가는 게 힘들까 봐 혼자이기를 자처했었다. 가끔 딸아이가 면회 와서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거의는 주말에 휴게실에서 만나곤 했다. 특히 어린 아들은 오래 누워 있는 내가 퍽 낯설 법도 했다.
비록 누워 있지만 식구들의 면면이 눈앞에 다 보였다. 남자가 정수기 물을 마시러 가고, 아들이 후다닥 나갔다 들어오고, 딸애가 급하게 통화를 하고, 압력밥솥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변기 물이 내려가고, 전자레인지가 돌아가고, 그릇들이 부딪고, 티브이 속 인물들이 떠들고….
혼자 누워 있는 시간은 퍽 외로웠다. '병'이라는 두꺼운 벽 하나가 느닷없이 내가 있는 곳과 식구들이 있는 곳을 철저히 분리시킨 듯했다. 벽 안의 나는 혼자였고, 벽 바깥의 그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들 같았다. 벽 안에서 외로움과의 긴 싸움이 시작된 셈이었다. 몸은 어쩔 수 없이 침대와 붙박이가 되었는데 온통 신경은 벽 바깥의 그들에게 가 있었다.
[메니에르 증후군] [이석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