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음악을 전공한 딸아이는 영화음악과 영상음악 작곡을 즐겨했다. 그 작업을 할 때 가장 힘겨워하기도(제가 해야 하는 일엔 조금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했지만 아이는 매우 반짝거렸다. 저는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내가 보기엔 무척 사랑하는 일인 듯했다. 그해 2월에 졸업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얘기하기도 했었다. 마침 교수로부터 기다리던 제안이 들어왔는데 그때가 하필 정신없이 내가 돌아버린 3월의 그날이었다. 며칠 고민을 하던 딸애는 할 수 없이 그 일을 후배에게 넘겨준 모양이었다.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진 않았다. 아이의 심각한 전화통화가 아무래도 꺼림해 다그쳐 물었더니 다소 울먹하며 그 얘기를 전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안 될까?"
"엄만 이젠 괜찮으니까, 응? 그러면 안 돼?",라고 하나마나한 물음을 던졌다.
"엄마 상태가 어떤지 몰라요?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면서 뭘 괜찮아요. 이미 안 한다고 했고, 다음에 하면 되니까 걱정 마요."
눈가가 빨갛게 된 아이가 눈물을 참으며 외려 나를 위로하려 애썼다. 애쓰며 건네는 말속에는 원망의 마음도 있었으리라. 아이에게 도움은 못 되고 내가 짐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 후로도 여러 날 괴로웠었다. 저는 괜찮다고 얘기하지만 그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 했는지 잘 알기에, 나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던 일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다시 집안일을 하려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워 있으면서도, 상태가 계속 좋지 않은 큰아이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딸의 컨디션은 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아이도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는지 근처의 병원을 몇 군데 다녀오기도 했다. 별거 아닌 양 단순히 몸살감기약만 처방받아 왔다. 별 차도가 없었다.
아이는 한 주 내내 열이 올랐고 기운이 없었다. 원래도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변해 갔다.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았다. 예감이 안 좋았다. 남자에게 부탁해 전에 살던 곳의 내과 병원으로 함께 보냈다. 혈액 검사 후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아 정밀 검사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 사이 내 몸은 좀체 회복의 기미가 없었고 머릿속은 아이 걱정으로 더 심하게 엉켜버렸다. 한방병원 두 번째 진료를 보는 동안 남자는 아이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시 내과에 갔다. 의사는 빨리 큰 병원 진료 예약을 하라고 했다. 그때 이미 짐작은 했었지만, 아니기를 빌었다.
부랴부랴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예약하고, 나도 이비인후과 예약을 같은 날 잡았다. 어지러운데다 몽롱하고 흐릿한 정신으로 어떻게 진료를 마쳤는지도 모르겠다. 이비인후과 교수(티브이에서 명의라고 나왔던)의 진료실 앞은 넘치는 환자들로 몹시 부산했다. 차례가 되어 들어간 내게 짧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어지럽다고 하면 으레 하는 안진 검사를 그때도 했던 듯하다. 시커멓고 투박한 고글 같은 그것은 할 때마다 늘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첫 회전 공격이 있은 지 2주 남짓 지난 무렵이어서 딱히 뚜렷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없었다. 오로지 내가 말하는 증상만으로 판단을 내린 의사는 이석증으로 진단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얘기하지 못했다. 귓속이 먹먹한 것도,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회전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도, 이명도, 그리고 여러 다른 증상도 말하지 못했다.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일부는 늘 나를 따라붙어 있던 것들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회전 공격조차 말하지 못한 걸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긴 했었다.
시련은 걷잡을 수 없이 찾아오지만 전혀 떠들썩하지 않아, 외려 담담해진다.
내 진료를 끝내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멀리서 유리 멘털의 넋 나간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직감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그날 오전, 내과병원의 정밀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바로 입원 수속을 하라고 했고, 병실이 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대기해야 했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두 번의 채혈과 CT가 진행되었고, 내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는 사이 검사 결과를 들은 남자는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고, 후일 딸애가 얘기했었다.
그 얘길 듣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걸어오는 남자의 멘털은 이미 안드로메다 어디쯤 가 있는 듯 보였다. 멍하게 앉아있는 내 곁으로 다가온 남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내가 먼저 물었다.
"그거 맞다는 거죠?"
"어... 거의... 응."
왈칵 눈물이 쏟아지거나 목이 메거나 가슴속이 저미듯 아프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원래 감정이란 게 없었던 사람처럼.
뭐부터 해야 하나, 어지러움으로 뒤엉킨 머릿속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지러운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버텨야 했다. 남자가 아이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내가 있어야 했다. 한사코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오후 다행히 병실이 나왔다. 우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병실로 옮겨진 후로도 몇 번의 채혈이 있었다. 딸애는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내 걱정을 한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이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가 좀 버겁다. 지금껏 애써 내 감정을 외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쓰며 외려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딸도, 나도 잃어버린 시간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기억해내려 애쓰고 있다. 문득 또 무언가가 떠오를 때가 있을 테다. 지금에 감사하며, 그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기록해두려 한다.
처음 올린 글을 모바일로 훑었는데 너무 긴 듯했다. 두 개의 글로 분리하니 가독성이 좀 낫다. 이미 올린 글을 수정해 둘로 나눌 때도 또 발행을 해야 하는 건 번거로운 것 같다. 비공개로 해서 올리고 나중에 공개로 돌려놓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매한가지인가(?)
내가 쓴 글에서 찾고 싶은 내용(단어를 통한) 검색은 안 되는 건지, 내가 잘 모르는 건지... 내 글을 제목이나 내용으로 검색할 수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일일이 전체를 다 훑어야 하는 게 조금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