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길었던 방학이 끝났다. 많이 걷지 못했고 재바르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난들 이렇게 오래, 건강하지 못한 몸이 매사에 걸림돌이 될 줄 알았겠는가. 금세 잊기 위한 공부를 한 듯 학기 중에 배웠던 워킹과 포즈, 기타 관련한 이론도 죄다 기억에 없다. 꾸준해야 하는데 방학이 되면 그것들은 자연스레 나와 동떨어진 세상의 일처럼 내팽개쳐진다. 편안히 잘 쉬고 싶었고,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것들도 조금씩 챙기려고 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의 꽁무니만 다시 쫓고 있다. 글을 써보리라던 다짐도 무참히 부서졌다.
이곳에서의 글쓰기도 참 쉽지 않다. 가끔 들어와 서랍 속 글들을 쏘삭거리다 이내 흥미를 잃고 닫아버리기 일쑤다. 마음이 편해진 건지, 부질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대숲으로 여기며 속내를 풀어헤치자던 결심도 무색해졌다. 외려 속이 시끄러울 때면 늘 찾던 다른 장소에서 습관처럼 투덜거리곤 한다. 브런치에 정을 붙이기가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염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애초의 내 기대와는 다르게 이곳에서의 자기 검열은 더 심화된다.
애초에 '작가', 그것이 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한 게 아니다. 물론 어린 시절 한때는 소설 쓰는 시인을 꿈꾸기도 했으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알아차린 후 그 꿈은 망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스스로 깜냥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브런치에서 불러주는 '작가'라는 호칭이 그래서 내겐 퍽 열없다. 이곳만의 룰 같아서 받아들일 뿐. 브런치에 발을 걸쳐 놓은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정말 '작가'라는 명칭에 어울릴법한 많은 이를 보았다. 세상은 넓고, 글 잘 쓰는 이는 많음을 브런치에서 새삼 또 알게 된다.
내가 브런치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흩어져 있던 글들을 책의 형태로 묶어주는 기능 때문이었다. 수년간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내 글을 전자책의 틀을 갖추어 정리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매력이었다. 거기에 더해져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간간이 공모에도 응모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만이 모인 곳에서 좀 더 자유로운 주제로 내 속을 다 드러낼 수 있겠다는 기대 등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알 수 없는 폐쇄의 괴로움을 경험했다. 연일 쏟아지는 글 속에서 일순 숨이 죄어와 정신을 못 차린 날이 있다. 각자 다양한 에피소드를 진솔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녹여내는 많은 이의 좋은 글이 왜 그토록 갑자기 부대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글 때문이 아니라 갇힌 듯한 이곳에서의 묘한 흐름 때문이었다. 산소가 부족한 협소한 공간에서 호흡곤란이 온 듯 힘겨웠다. 며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 안에서 보내온 이야기는 조금 충격이었다. 이곳이 <글 공장> 같다는 답이었다.
오해는 말자. 글의 내용과 모양새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처럼 획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로지 '글' 하나에 꽂혀, 글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글의 행렬이 그날은 일순 해일처럼 느껴져 나를 압도했었다. 그 흐름은 흡사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거쳐 제품이 생산되듯 일말의 멈춤이라곤 없는 연속의 순환이었다. 그때 문득 내 속에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얼마 전 넷플릭스 <블랙 미러>의 두 번째 에피소드 '핫샷'을 보며 일부분 브런치를 떠올렸다면 너무 지나친 나만의 비약인가.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모인 이들이 좀 더 다채롭고 많은 글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이곳의 많은 이가 그에 부응하듯 자신의 글을 수없이 쏟아낸다. 단지 글쓰기가 좋아서든, 책을 내고 싶어서든, 정말 작가가 되고 싶어서든, 생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든, 대숲으로 이용하고 싶어서든 여러 이유로 글이 생산된다.
가끔, 이곳에 쏟아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글이 빅데이터로 이용되어 인간을 능가하는 AI가 소설과 시를 쓰고 에세이를 남기며 스타 작가가 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이젠 상상을 넘어 드물게는 현실이 되고 있지만 말이다. 창의력 발휘는 인간만의 영역인 줄 알았는데 벌써 AI가 글을 쓰고,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CF 속 모델도 AI가 대신하는 시절을 살고 있다. 머잖아 AI 브런치 작가가 메인을 장식하고 모두가 그의 글에 열광하고 추앙받는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나도 하릴없이 띄엄띄엄 글을 생산해내고는 있다. '핫샷'에서 온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아 전력을 만들듯, 무슨 의무감인지 책임감인지 알 순 없지만 뭔가에 홀린 듯 글을 쓰고 싶고, 당연히 또 써야만 한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보상으로 얻게 되는 코인(충전)이라도 있지만 이곳에선 인센티브를 애초에 기대하지 않은 채 글을 쓴다. 심지어 특정 관문을 통과해야 쓸 수 있는 자격(발행의 자격)을 준다. 사람의 심리를 적절히 잘 이용한 전략이기도 하나 그래서인지 목표가 비슷한 사람들의, 그들만의 세상인 듯해 약간의 저항도 생긴다. 어쩌다 나는 그들의 옷자락에 요행히 묻어온 먼지 같달까.
어떤 대가도 없이, 나를 포함해 글을 좋아하고 쓰고 싶어 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어김없이 오늘도 글을 쓴다. 그것을 먼 시선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존재의 유무도 알지 못한 채 쉼 없이 생산해내려고 애쓴다. 그 끊임없고 도저한 생산이 못내 경이롭기도,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내 마음속 으슥한 모퉁이에선 어쩌면 나도 '핫샷' 속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의 혼자만의 넋두리 같은 글을 쓰며 고립의 섬에 나를 가둔다. 다만 맥락 없이 구시렁대는 글일지라도 일상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반짝이는 글들 속에 참혹하게 파묻히고 말더라도 묵묵히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데도 이곳에서의 글쓰기는 왠지 서름하다.
목표 없는 글쓰기가 간혹 갑갑하게 여겨지더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도 억지로 써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그 부질없음을 이미 오래전에 경험한 터라 그것에는 꽤 자유롭다. 그러다 보니 내 글쓰기의 목적이나 방향성이 없는 건 사실이다.
글 쓰는 이들이 드물었던(드문 게 아니라 드러내지 못했을 뿐인 듯싶다.) 시절(블로그 초기)에는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설렘과 감동으로 몇 날 며칠 사유의 끈을 놓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들의 글이 대단해서가(대단한 글은 서점에 즐비했다.) 아니었다. 진솔함과 유사한 정서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런 글들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으며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해 그것들을 온전히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원하지 않는데도 내게로 보내지는 좋은 글의 피로도는 갈수록 점점 높아만 갔다.
지금 나의 생산물 또한 누군가에게는 피로로 쌓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될 듯하다. 이곳은 사람과의 왕래가 드문 나만의 외딴방이다. 나쁘지 않다고 자위하곤 하지만 간혹 북적거리는 휘황한 자리를 우연히 지나치다 보면 여기에서도 변방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는 스스로를 목도하곤 한다.
글 좀 쓰라는, 재촉의 알림을 두어 번 받았다. 마음은 미동을 하나 손가락과 머리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이곳의 자기소개에 처음 명시했던 '작가 지망생'은 내게 해당되지 않는다. 일상을 쓰고는 있으나 깊이가 없으니 '에세이스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부'라고 하자니 이미 몸으로나 마음으로 손을 뗀 지가 한참이라 뚜렷하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딱히 마땅한 게 없기도 했고 별생각 없이 키워드를 찍었는데 그것이 최종적으로 내 이름 아래 직업으로 올라가더라.
키워드 몇 개에 국한된 직업들 중 가장 알맞은 것은 결국 지금은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것,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어울리지 않는 모델학과 학생이라는 것, 굳이 시니어를 앞머리에 붙이지 않은 것은 이래저래 지금은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비로소 내 소개의 직업을 학생으로 바꾸는 데 성공(순서에 따라 달라지는 걸 이제야 알았다.)했다. 이제야 정체성이 조금 확연해진 듯하다.
겸사겸사 내 이력도 삭제했다. 순전히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아있는 그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브런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순진하게도 소개도, 이력도 다 채워야 하는 줄 알았었다. 내친김에 한 권으로 묶었던 브런치 북도 삭제했다. 공모하라는 부추김에 급하게 만들었던 것이라 엮은 후에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글들도 거의 삭제했다. 천천히 재발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기가 시작되었고, 다시 내 하루들은 학생의 루틴으로 반복되고 있다. 첫 학기 때는 비대면 수업을 듣는 것도 꽤 무리였는데 그때보다 몸이 잘 버텨줘서 그나마 다행이다.
'작가는 다양한 문제를 향한 자신만의 견해를 작품으로 전달하고, 감상자(독자)에게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감상자와 공유하지 못하는 작품은 의미가 있다고는 할 수 없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