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소통이 가장 어렵다
유난히 힘들었던 학기를 겨우 또 마무리했다. 특별히 하는 것도 딱히 없는데(아니, 제법 버거웠다.) 괜하게 마음만 분주한 나날이었다. 깃털 같이 가벼운 하루들이 돌이킬 수 없는 저 너머로 사라져 갈 때면 마음속 공터엔 또다시 사막의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곤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가!'
버릇처럼 혼잣말이 되뇌어지고 순간순간 목구멍이 알알해지면 잊고 있던 기억의 한 모퉁이에 주저앉은 내가 보였다. 황급히 침을 꼴딱 삼켜 일렁이는 가슴속 소요를 목구멍 속으로 다시 욱여넣는 것으로 눈앞의 환영을 지운다.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 복장으로, 목과 허리를 곧추세운 채 굽은 어깨를 펴고 높은 굽의 힐로 또각거리는 내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다 못해 사뭇 뻘쭘하다. 과연 공부를 마친 후 이것이 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직업이라는 무게감만큼 고민은 깊다. 스스로 확신이 없기에 지인들에게 내 공부를 알리지 못한다. 딸아이 외엔 내가 하고 있는 공부를 모른다. 두 남자의 무심함이 이럴 때면 퍽 달갑다. 그래도 얼마 전 아들은 궁금해하기라도 해서 답해주었다. 클럽에 다닌다고. 아닌 걸 알면서도 놀라는 척 리액션에 충실한 녀석은 제 엄마가 다시 학생이 되었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거푸 재발하는 회전성 어지러움으로 더없이 의식이 흐릿했을 무렵, 관계에 대한 절망과 닥친 시련의 슬픔으로 남은 생이 어느 때보다 막막했던 그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겨우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한 것이 지금의 공부였다. 아픈 아이를 끝까지 내 힘으로 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머릿속을 휘젓던 시기이기도 했다. 단 한 번 꿈꾼 적 없던 이 분야를 선택한 건 건강을 회복하려는 열망 때문이 큰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당장 일을 얻어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대단한 착각 때문이었다.
세상을 피해 지내온 십수 년의 시간은 아직 내게 어떤 의미를 남겨주진 못한다. 그럴 만했고 충분히 애썼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살았다는 자책과 자괴가 나를 어지럽힌다. 그저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 씁쓸하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뭣하다.
상냥하지 않은 세상에 낡고 쇠락한 몸을 던져 내가 과연 건져 올리려는 건 무엇일까. 이 나이에, 이 몸으로 '부와 성공'을 꿈꾸고 있다면 기막히지 않겠나. 코웃음 칠 일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의 상상 속에 자주 떠다니던 단어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상상도 하지 않게 됐지만 말이다.
언짢게도 운명은 끝까지 내게 평온을 허락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 치고는 제법 가혹한 현실을 다시금 던져주곤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기력 쇠하고 낡은 내게 또 무엇을 바라는 건지, 칩거하며 지낸 긴 시간을 나의 휴식이라 오해한 건지, 아니면 정말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란 게 존재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로 살아보겠노라고 매 순간 다짐을 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우습게도 매번 나를 버린다.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이제는 그렇게 긴 시간이 남아있진 않은 듯해서 제대로 나를 알고 싶은데, 얼마나 무수한 벽을 치고 있는지 하나를 겨우 부시면 떡하니 또 다른 둔탁한 벽이 사이를 가로막는다.
공부는 아픈 내게 활력을 주는 건 분명하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뭔가 해야만 하는 것이 있으니 확실히 전보단 생동하는 느낌이다. 다만 기껍게 즐기지 못해 아쉽다. 대면 수업을 한 번도 빼먹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으니 식구들조차 나의 괴로움을 알 리 없다. 비대면 학교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엄두도 못 냈을 테지만,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시험과 과제 등을 챙기는 게 영 만만하지 않고 무엇보다 몰입이 어려운 병증 때문에 마음만큼 쏟아붓지 못한다.
몇 학기를 보내면서도 늘 나와의 팽팽한 대립은 끝나지 않는다.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멋모르고 시작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껄끄럽기만 하다. 무엇보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곤혹스럽다. 텍스트로도 온전히 나를 보여주지 못해 이렇듯 숨어 지내며 너주레하게 겨우 지껄일 뿐인데, 하물며 낡은 외관을 내세워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그야말로 몽상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누구처럼 어린 시절 꿈이었다면 나와 타협하기가 훨씬 수월할 듯싶다. 바람이 전하는 이 분야의 이야기가 다소 씁쓰레해서 못내 서글프다.
어쨌건 방학이다.
언제부턴가 한 번에 여러 일을 하지 못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그 한 가지에만 신경 쓰는 것도 힘겨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더군다나 글쓰기는 한 줄의 문장이라도 집중이 필요해서 시도조차 않는다. 얼마나 오래 기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프니까 그렇다', 라는 라벨링이 싫어서 웬만해선 징징대지 않는데도 그게 현실이라 참 못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