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짧은 소설> 2009.08.22.

by 백경

아버지는 각혈하는 여자를 버렸다 했다. 그 죗값이 피를 돌며 연체되었는지 나는 각혈하는 남편을 얻었다. 그가 기침으로 하루를 찢어 놓고, 서너 달 죽은 자처럼 누워만 있을 때 멀쩡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잘 먹어야 나아진다 해서, 없는 살림에 매달 붓던 적금을 깨 사골도 고아 보고 남들이 좋다는 음식도 이것저것 만들어봤지만 남편의 몸은 그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마른 이파리 같은 가냘픈 몸에선 괴괴한 소리의 기침이 쉼 없이 방바닥을 갈랐고, 그럴 때마다 내뱉는 피 섞인 객담은 나마저도 토악질이 날만큼 불쾌했다. 객담이 쌓인 휴지를 거둘 때면 늘 속이 울렁거렸다. 기침하다 바닥이며 벽이며 몇 군데 튄 혈흔들은 검붉게 변해 어느 부분은 마치 부러 만든 양 모양새가 꽃잎 같기도 했다. 긴 병 환자가 그렇듯 몸에서 나는 괴이한 냄새로 방문을 여는 순간 그 방은 이미 다른 세상인 것만 같았다. 그나마 기침하며 피 토하는 동안은 '아직 명줄이 붙어 있구나.' 확인하며 안도했다.


여섯 달이 지나도 남편의 각혈은 멈추지 않았다. 입원도 여러 달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자주 기침과 가래가 심하게 끓는다 싶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래에 자주 피가 섞여 나와도, 더운 여름날 의식 잃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 전까진 고된 공사판 일 때문에 고단해 그러리라, 그리 짐작했었다.


폐병이라는 걸 알았을 때 함께 따라온 소장이 맨 먼저 뱉은 말은 "에이 쒸팔! 재수 없이!"였다. 그게 재수 없는 병이라는 걸 그 남자를 통해 처음 알았다. 병원에선 너무 진행되어 달리 손을 쓸 수가 없다 했다.


"빙원서 몬하믄 아픈 사람들은 워쩌. 예전이사 폐빙이 죽을 빙이었지 요즘에사 의술이 좋아서 다 낫는다더만 무신 쉰소리들이여!" 의사와 간호사에게 그악스럽게, 남편의 장모이자 내 어머니인 늙은 촌부가 생떼를 써보지만 싸늘한 표정의 그들은 대거리하지 않은 채 돌아서 나갔다.


병실에 있는 동안은 각혈도, 기침도 조금 덜한 듯도 했다. 남편의 재수 없는 병 덕분에 아이들과 나도 검사를 받았다. 남편이 집으로 가자 졸랐다. 병원비 때문에도 더 이상 버틸 수는 없었다. 어떤 의지도 없이 병자가 하자는 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이들의 분리를 위해 창고로 쓰던 방을 다듬어 그를 옮겼다. 부모의 손길을 일찌감치 잊은 아이들은 지네들끼리가 더 편한지 아비가 와도 어미가 와도 그저 데면데면하다. 집주인이 폐병 환자를 자기 집으로 들이지 말라며 전화가 왔다. 통사정을 해 당장에 쫓겨나진 않게 막았으나 머지않아 또 닦달을 할 것이었다. 온 동네에 소문이 났다, 재수 없는 집이라고.


달도 숨어버린 비 오는 늦은 밤, 아버지가 보따리 하나 가득 개소주를 싸서 왔다. 젊은 시절 버렸다던 병든 여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아버지는 유난히 남편 걱정을 한다. 하긴 남편이 병들기 전에도 내가 며느리인가 싶을 정도로 남편 걱정만 했다.


외딴방에 불이 켜지고 각혈이 잦아들 즈음 그가 개소주를 들이켠다. 잠시 목젖에 힘이 가해지며 넘기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이 솟구친다. 개소주의 검은 물이 온 방 여기저기에 튀었다.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는 피 냄새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사위가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해서 몹쓸 병에 걸린 거라며 혀를 끌끌 찬다. 비는 오는데 대청마루에 힘겹게 앉아 한숨을 거푸 내쉬는 아버지의 어깨가 자꾸만 아래로 말려들어간다. 한 다리가 천 리라고, 사위 자식 명을 달리하면 딸자식 과부 될까 저어되어 그런 거라 생각하니 나도 깊은숨이 절로 뱉어진다.


남편은 외딴방에 혼자 누워 지낸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건지, 쾡한 눈 속엔 흔들림조차 없다. 밥때가 되어 내가 들어가면 인사처럼 피 토할 듯 다시 기침을 한다.


독한 항생제 알약이 이부자리 주변에 나뒹군다. 혼자 입 속으로 넘기려 애쓰다 힘없는 그의 손을 빠져나왔으리라. 뒹구는 알약이 그의 살고자 하는 안간힘 같아 마음이 쓰인다. 떨어진 알약을 주워 약 쟁반에 올려놓는다. 몸속의 균들은 약이 들어와 저희에게 어떤 해를 입힐지 이미 알기에 외려 그의 몸 구석구석을 더 버겁게 만든다. 그렇게 듣지도 않는 약이지만 마음의 위안이라도 되라고 먹인다. 밥은 사래질을 쳐도 개소주는 먹겠다 한다. 마시다 다시 게워 낸다.


남편 얼굴엔 달포 전부터 검은 그림자가 어른댄다. 그도 그걸 아는지 내게 자주 얼굴을 닦아 달라 한다. 부드러운 가제 수건으로 입 근처를 닦으면 으레 연한 핏물이 밴다. 눈 주변을 닦는데 젖은 수건의 습기보다 더한 수분이 감지된다. 울고 싶었던 모양이다. 모른 척 눈가의 젖은 물기를 무연히 닦기만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닦아 주었다. 그의 소리 없는 울음은 아주 오래 계속되었다.




외딴방에 남편이 든 지 열 달 만에 불이 꺼졌다. 기척 없는 바람이 창틀을 두들기지만 정적만이 돈다. 명줄이 끊어지기 전, 남편이 낡은 흑백 사진 한 장과 겉과 속이 노랗게 변색된 노트 한 권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가 어렸을 적 세상을 떠났다는 시어머니 모습을 그날 처음 사진으로 보았다. 사진 속엔 젊은 시어머니와 내가 아는 남자가 아주 살갑게 붙어 앉아 있었다.


"세상 무엇도 갈라놓지 못할 우리 사랑을 위해" 사진 아래 새긴 글귀에 한참 눈길을 두었다.


내 아버지가 젊은 시절 버렸다던 각혈하는 여인이 내 남자의 어머니라는 사실의 놀라움보다 내 남자가 그것을 숨긴 채 그때껏 살아온 것이 더 놀라웠다. 돌아가신 시아버지 때문이었을까, 내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남편은 내 아버지가 사진 속의 남자라는 사실을 처음엔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건 기필코 우연이었으니....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허락받으러 가던 날 저녁 그의 집 파란 대문 앞에서 시어머니의 세상 속 부재를 들었다. 물론 병으로 돌아가셨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아버지를 처음 보던 날, 남편 얼굴에 인 옅은 경련은 사랑하는 여자의 아비를 만나 긴장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는 걸 알겠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남편을 "듬쑥허니 사람 좋다."라고 했었다.


남편이 건넨 노트에 빽빽하게 나열된 낯익은 서체는 젊은 날 내 아버지가 시어머니를 잊지 못해 적은 일기였다. 과연 내 아버지가 나를 낳은 내 어머니를 위해 그런 애닯은 연서 같은 일기를 쓴 적이 있을까. 아버지는 어머니에겐 늘 먼 사람이었다.


"니 아부진 시방도 내 서방 같진 않은겨! 껍데만 홀라당 벗어놓고는, 지 맴 가는 데로 기댕기는 달핑이 같어 야! 그러다 껍데까정 아주 버려블고 아예 민달핑이로 기댕길 거 같단 말이지, 다시 기들긴 하는디 지 껍덴지 넘의 껍덴지 암 상관도 안 허고! 그 속엔 뭐시가 들어앉았는지 암만혀도 몰겄어. 넘덜이사 넘의 속도 모르고 잘난 서방이네 하는디 내 시커먼 속을 워찌 알 것이여, 여북하믄 내가 이럴 것이여!" 내 어머니의 장탄식은 늘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버지로 끝이 났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노트를 시어머니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장에 "속죄의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전하오."라는 글귀와 함께 나란히 적힌 날짜로 유추한다면 적어도 남편이 고등학생은 되었을 무렵이 된다. 나 또한 중학생이던 때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말씀처럼 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껍데기를 벗어둔 채 시어머니의 삶 주변을 서성거렸을 것이다.


노트 속엔 자식인 나와 아내인 어머니에겐 전혀 생경한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런 애정의 표현을 어떻게 생각해낸 것인지, 한 줄 한 줄에 아버지의 옛 여인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고스란하게 녹아 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들썽거렸다, 다소 불쾌하게.


남편이 준 노트와 사진을 태웠다. 세상엔 참 많은 인연들이 불편한 진실을 간직한 채 혹은 모른 채 살아간다. 알아도 모른 채, 모르면 내처 그러한 채로 사는 게 더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남편은 세상을 달리했으니 내 아버지는 옛 연인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죽 살아가면 될 것이고, 내 어머니는 껍데기만을 안고 살지라도 알맹이가 돌아다니던 곳이 어딘지만 모르면 되는 것이다.


굳이 알려고 들지 않아야 할 것들을 들춰내서 삶이 팍팍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하긴 젊은 한때 -아버지의 경우 한때라고 하기엔 좀 긴 듯도 하지만- 품은 여자에 대한 마음이 드러났다 해서 살아가는 데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다.




외딴방을 치웠다. 마스크를 끼고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뿌리고 바닥과 벽을 긁어내고 겨우 빛 몇 줄기 비껴 들어오는 창도 열어젖히고. 다시 창고로 쓰일 것이다. 비가 온다. 구슬프게 때 맞춰 내린다. 외딴방의 불을 끄고 아이들 곁으로 가서 누웠다. 아이들은 아비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서름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깼는데 외딴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우련하다. 슬며시 무섬증이 일어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겉옷을 걸치고 외딴방으로 향했다. 내가 잘 아는 남자가 빗소리에 맞춰 내가 잘 모르는 남자인 듯 운다.


"미안하오. 지켜 주겠다 약속했던 당신 아들마저도 이리 보냈소. 내 이럴 줄 알았음 울 딸년이랑 혼인시키지 않을 것을, 가까이 두고 당신 살피듯 하려 했는데 하필 또 그 병으로 내 눈앞에서 보내니...."


꺼이꺼이 울음소리가 빗소리에 씻기고, 내 무릎은 절로 꺾여 빗물에 처박힌다.






삭제했던 글을 다시 올린다. 언제 또 내려질지는 모르겠다. 내가 쓴 글이 항상 사랑스럽지만은 않기에. 이미 읽고 마음 주셨던 몇몇 분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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