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2009.10.12.
마을 뒷산 오르막길 앞에서 여인네들 여럿이 왁자하게 떠들어댄다. 고사릴 뜯으러 뒷산에 오르기로, 한 달여 전 미리 약속해둔 날이다. 남편 잃고 홀로 지내는 여인들끼리 모여 한번씩 놀이 삼아 운동 삼아 그렇게 산을 오른다. 그들 서로에게 '여사'라 호칭한다.
총무인 김여사가 인원 점검을 위해 머리수를 센다. "일곱 여덟 워쩌? 하나가 비잖여, 누가 안 온겨?" 다들 한번 휘둘러보다가 시설스러운 황여사가 건수라도 하나 잡은 양, "형님! 박 여사가 안 나왔슈. 그 여편네 요즘 연애질 하니라 제정신이 아니잖여. 앞전에 그 영감탱이랑 얄궂은 짓거리 하는 걸 내가 다 봤당께. 눈 뜨곤 못 봐주겄더라고. 요새 것들 하는 짓을 다 늙어서도 그라고 하고자픈가 몰겄어." 장면을 연상하는 듯 눈을 게슴츠레 가늘게 뜨더니 온몸까지 부르르 떤다. 아침을 물리자마자 댓바람에 모인 지긋한 여인들이 그 모습에 하나같이 박장대소한다.
박 여사는 두 해 전, 영감님을 먼저 보냈다. 둘이 얼마나 금실이 좋았던지 어디 나고들 때마다 손을 꼭 부여잡고 다니는 모습을 마을 여인네들이라면 다 눈여겨보며 시샘했을 정도였다. 복 많은 이는 따로 있다고 영감님 사랑도 극진했지만 그 자제들 또한 부모 섬기기를 다했다.
그랬던 이가 영감님 보내고 얼마 안 되어 연애를 시작했다. 소문에 듣자 하면 홀아비도 아닌 어엿하게 안사람이 있는, 아랫마을선 제법 재력가 소리 듣는 영감님이란다. 과수댁으로 숱한 세월 홀로 지낸 마을 여인들 입장에선 심정이 퍽 상할 법도 한 일이다.
마을엔 아이들의 재재거리는 소리보다 노인들의 천식 기침 소리, 과수댁끼리 사소한 일로 옥신각신하는 소리와 노부부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더 높다. 나지막한 임대 아파트 단지와 노쇠한 일반 아파트 단지가 붙어 있는 그곳은 젊은이들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까 말까 하고, 죄다 허리 구부정하고 세월이 가득한 얼굴을 한 노인네들만 득시글한 동네다.
예순을 넘긴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쉰 중반도 있는데 그곳에선 그들 모두 청년 축에 든다. 일흔에서 여든을 넘는 노인들도 제법 많은데 다들 겉모습만 노쇠할 뿐 마음은 청년과 다를 바 없다, 큰소리친다. 가끔 그리 큰소리치며 보란 듯이 일갈하던 노인이 다음날 명을 달리할 때가 왕왕 있다. 그럴 때면 같은 또래 노인들 마음이 착잡해진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를 저승사자와의 조우를 어찌 대처할지 막막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곳은 산송장들이 사는 곳이라고 인근 마을까지 소문이 나서, 젊은이들이 헐값에 집을 구해도 마을을 한번 돌아보고 나면 으레 가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늦은 오후 즈음에 고사리를 뜯고 산을 내려온, 너나 할 것 없이 싸구려 염색약으로 물들여 고약한 내가 폴폴 나는, 너무 검어 처연하기까지 한 흑발의 그녀들이 노인정에 모여 앉았다. 그날의 수확인 고사리와 간간이 섞여있는 버섯과 산나물을 고르고 다듬어, 채반에 가지런히 놓으며 오전에 입에 올렸던 박 여사 이야기를 다시금 풀어놓는다.
"근데 말이여! 그 영감이 돈이 좀 있긴 한가벼어. 그 나이에 두 집 살림 할라믄 엥간히 대근할 거인디. 돈 만탐서 워찌 박여사매키 늙은 여자와 붙었댜아?"
"아랫마을 산다는 그 마누라는 시방도 모르는 겨?"
"그 영감 젊어서도 오입질 겁나게 해대던 아주 난봉꾼이랴. 듣자니께 지금도 그리 불끈 힘을 쓴다네!"
"아이구야, 누군 아주 좋겄어."
"박여사 자식들이 난리를 혀갖고 그 여편넨 집을 나왔다지 뭐여. 죽은 영감님이 남기고 간 대처 집도 팔았다지 아매."
"그 여편네 쌍거풀 수술 했잖여, 실눈마냥 실쩍 찢어놓은 것만 같더니 이젠 엄청시리 커졌어. 첨에사 이상터만 좀 지나니 볼 만하대, 나도 혀야겄어."
"근데 월매나 대단한 사랑타령을 해대길래 그 나이에 자식도 모르네,하고 가출이 뭐여! 나야 영감들 가차이에 오는 것도 거북스럽더만."
"괘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그 여편네 돌아가신 영감님이랑 월매나 사이가 좋았어? 그라니 혼자는 못 전딘가브네."
"저그 저 우리 동네 가차븐 빌라에다 살림을 차렸댜아. 거실 큰 유리창에 커텐 달아 놓은 걸 봤시믄 다들 기절했을 거여. 레이스가 무지허게 달린 눈깔 시리게 하얀 커텐을 박 여사랑 그 영감이 함께 달믄서 워찌나 다정시럽게 서로를 봐 싸코 웃어 싸턴지, 눈꼴셔서 죽는 중 알았구먼. 근데 말이여, 주착이다 싶다가도 무지허게 이뻐 뵈기도 허고, 쌤도 나고 그라대. 우리가 살날이 월매라고, 그리 혼을 홀라당 빼놓는 연애질 한번 해보믄 좋잖여, 안 그려?"
박 여사의 눈꼴 시린 연애에 너나없이 싫은 소리 한마디씩 거들다가, 마지막엔 다들 부러움 가득한 긴 한숨으로 갈무리한다. 몸 늙는다고 감정까지 늙을 쏘냐. 그녀들에겐 여느 젊은이의 치열하고 뜨거운 사랑보다, 다 늙은 박 여사의 주책맞은 로맨스가 몹시도 부럽고 더 새롭게 다가온다.
거죽 늙는 것도 서러운데 마음까지 함께 늙는 줄 아는 자식들이 가끔 해대는 "그 나이에 무슨!"이라는 그 언사도 못마땅하거니와, 어쩌다 홀로 있는 영감님 얘기라도 흘리듯 할라치면 아주 가소롭다는 듯 웃어대는 본새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은 자식들이 늙은 자신들의 감정을 무시하면 할수록, 과수댁들의 박 여사에 대한 분풀이 같은 험담과 시샘은 이어진다.
사실 마을 여인들은 한 가지만 알고 그리 떠들어댄다. 박 여사의 영감님 장례식 때 가장 슬퍼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이는, 노인정 회장인 이 영감이었다. 홀아비로 산 지 십여 년이 넘는 그였다. 박 여사 내외가 정겹게 다닐 때 늘 뒤에서 망연히 지켜보던 이가 그였다. 돌아가신 양반과는 형, 아우 하며 막역하게 지낸 사이라 어느 누구도 이 영감이 박 여사에게 베푸는 호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다.
칠 년 전 즈음 처음 박 여사 내외가 그곳으로 이사 왔을 때, 박 여사의 앞태나 뒤태나 어느 하나 이 영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뱃살도 넉넉히 나온 적당히 살집 있는 몸매, 너부죽한 얼굴에 살짝 찢어진 눈매와 어정쩡한 콧날, 이마에 서너 줄 깊게 들어간 굵은 주름과 웃을 때 티 나게 뵈는 틀니까지도, 이 영감 눈엔 그저 어여쁘게만 보였다.
박 여사의 등장은,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다 믿은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그저 잉큼잉큼 설레었고 그녀 앞에선 사춘기 소년처럼 수줍었다. 정작 그조차도 그런 감정들이 아주 당혹스러웠다. 괜스레 박 여사 근처를 맴돌며 돌아가신 영감님과 형 아우 한 것도, 연모하는 이와 가까이에 있고 싶은 마음, 다 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영감은 의형제 맺은 형님의 안사람에게 속마음 한마디 전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 뿐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구러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며 박 여사 주변을 얼쩡거리는 차인데, 어인 날벼락인지 별안간 박 여사의 연애 소문이 마을 안팎으로 시끄럽게 몰아쳤다. 여러 날 잠 한숨 못 자고 지새다 사실 확인 차 살림을 차렸다는 빌라에 가보았다. 소문대로 레이스 치렁치렁한 커튼 자락이 열어놓은 창을 통해 바람에 펄럭인다. 이 영감 마음속에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확 치밀며 팔락거린다.
알고 보면 박 여사의 다감한 부부 생활 이면엔 말 못 할 고충이 있었다. 자녀들이 모두 분가를 하여 떠나면, 기력 다한 노인네 둘만 오붓하게 남는 것이야 당연지사 아닌가! 기력 달리는 영감님은 외출도 버거운데 박 여사는 힘이 남아도는지 허구한 날 나가자 졸라댔다. 하는 수 없이 박 여사 팔에 이끌려 마지못해 손까지 부여잡고, 이 마을 저 마을 여기저기 다니며 돌다 보면 어스름 저녁 즈음엔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기름기 그득한 찬으로 차려내는 저녁상을 마다할 수도 없이 겨우 물리고 나면, 지네를 푹푹 삶아 만든 환을 몇 알 먹으라고 내미는데 이게 또 돌 지경이었다. 영감님은 먹어도 효과 없는 그것에 실큼하지만 박 여사의 끈적한 선웃음에 망연히 속만 탔다.
영감님의 부실한 정력을 보충코자 그리 애쓴 데는 박 여사의 뒤늦게 타오른 정염이 연유였다. 어쩌면 부부간은 많은 것이 그리도 어긋나는 것인지. 젊어선 그녀에게 목석같다 투덜대던 영감님이 어느 순간 기운을 잃고, 사흘돌이로 밤마다 심하게 들러붙던 영감님을 무진하게 못마땅해하던 박 여사는 어느 순간 하루가 멀다 하고 그것 좋은 걸 알아버렸으니. 그럼에도 그 어긋남을 충실히 맞추며 사는 것이 부부의 도리 아니겠는가! 둘 사이가 낮으론 평온해 봬도 밤이 되면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당기고 밀고하느라 꼬박 밤을 새우는 날이 잦았다.
박 여사의 뒤늦게 불붙은 욕정을 감내하기 힘겨웠던 영감님이 의형제 맺은 이 영감에게 애로를 쏟아내니, 홀아비로 몇 해를 보낸 더군다나 그녀를 일찌감치 마음에 심어둔, 이 영감의 아랫도리가 불끈해진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대개의 지긋한 여인들이 영감님과 함께해도 그닥 밤 거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인데, 박 여사의 경우는 그리 흔한 예는 아닌 것이다.
세월 흐르면 남녀의 몸과 마음은 자연스레 조금씩 뒤바뀌는 양상이긴 하다. 세상 삼라만상이 세월 따라 변할진대 사람이라 다를 것인가! 그러나 잘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그것 하나가 남자에겐 있었으니. 그나마 마나님과 함께하는 영감님들은 그녀들이 싫어라, 손사래를 쳐대도 어찌어찌 다 수가 생기지만, 홀로 사는 영감님들은 참으로 대책이 없는 것이다.
마을 홀아비 영감님들의 밤은, 과수댁 여인들의 밤보다 길고도 괴롭다. 가끔은 몇몇 영감님들끼리 대처로 나가, 공원을 산보하며 만나는 여인들의 유혹에 허름한 여관을, 쪽방을 찾아들며 긴 외로움을 달래다 돌아오곤 한다. 그로 인해 어느 이는 입 밖으로 내기 남세스러운 병으로 오래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이내 유혹에 다시 젖어든다. 살날과 죽을 날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기에 그까짓 병쯤이야 홀로 견디면 그만인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우세스러워 이야기하지 못한 채, 홀로 약을 넘기며 가슴팍이 알알해지는 것을 서글퍼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씁쓸한 황혼인가!
빌라에서 돌아온 이 영감은 속도 몸도 자긋자긋하다. 거진 십여 년 가까이 그녀 주변을 맴돌며 가슴에 고이 쟁여둔 감정이 하루아침에 사그라질 리가 있겠는가! 처음 본 그때도 지금도 그녀 곁엔 남자가 있다. 형님으로 모신 영감님 가고서, 한 해 넘게 그녀 집을 들락거릴 때 그때 마음을 보였어야 했다. 자책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것인가. 매운 물을 끼얹은 듯 마음속이 알근하다. 소주 한 잔에 안주 삼은 멸치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사랑의 도피처로 몸을 숨긴 박 여사는 아랫마을로 잠시 출타한 영감님을 기다리며, 남들의 비아냥거림에 마음 쓰지 않기로 작정을 한다. 평생을 돌아가신 영감님만을 보고 살았다. 사내들의 곁눈질은 한때의 바람이라 어물쩍 넘어가도, 여인들에겐 절대 불허하는 세태를 야무지게 깰 만한 용기는 없었다. 자식들 때문에도 한눈팔 수 없었기에 갑작스레 끓어오른 뜨거운 몸뚱이를 식히느라 갖은 애를 쓰며 살았다. 어쩌면 영감님을 그리 일찍 보낸 것도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살날 동안 홀로 지내리라 마음도 먹었었다.
그러나 짓눌린 육욕을 한 번이라도 드러내고 채우고 싶은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육신이 뜨거운 이는 역시 뜨거운 상대를 알아보는 법인지, 우연히 아랫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영감님 차를 얻어 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몇 번 만나고 자연스레 만리장성도 쌓았다. 세상에 그리도 좋은 것을, 왜 젊은 시절 그토록 마다했던 것인지 후회와 아쉬움이, 연방 잔즐거리는 그녀의 입가에서 떠돌다 사라진다. 그 긴 세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숨죽이며 열심히 살았으니, 죽을 날이 지척에 있을 지금 숭하다, 욕을 해대도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누리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맛보고 싶은 마음이, 그런 후에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한동안 박 여사의 연애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던 마을도 시간이 흐르며 원래의 일상 속에 묻혀갔다. 더러는, 아랫마을 사는 본처가 찾아와 빌라의 커튼을 갈기갈기 다 찢어버리고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소문으로 잠시간 또 일렁이기도 했고 사고로 혹은 병으로, 혹은 갈 날이 되어서 세상을 뜬 몇몇 노인들의 장례로 나이든 이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 다시 술렁이기도 했지만, 다시 평온하고 단조로운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죽음을 이즈막에 두고 안 두고는 인력으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마냥 청춘일 수 없듯 누구에게나 세월은 흐른다. 살아온 세월이 길다 하여 사랑에 대한 감정 또한 닳는 것이 아니며 그 몸짓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육신만이 서글프게 늙어갈 뿐이다. 늙은 육신들의 사랑은, 감정은 하찮고 우스운 것인가! 그들도 젊은 그대들처럼 아직 피가 흐르며, 때로 더 뜨겁고 달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이 된 이 영감과 머리채 잡힌 박 여사는 그 후로 어찌 되었을까? 궁금하면 다들 주위를 둘러보라, 멀리 볼 것도 없이 내 부모와 이웃의 어르신들을. 아마 수많은 박 여사와 이 영감이, 그리고 과수댁 여사님들과 홀아비 영감님들이 보일 것이다. 머지않은 그대들 모습일지 모른다.
이런 얘길 해대는 나는 늙은이냐고?
알 꺼 읍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