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필요했는데

2016.8.19.

by 백경


2016. 8. 12. IFC 몰 55층 화폐박물관에서 바라본 홍콩의 빌딩 숲


홍콩과 마카오 여행은 내겐 여행이 아니라 극기 훈련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냥 우리나라가 좋다. 아니 집이 제일 좋다. 특히 여름에는 어딜 다니면 안 된다. 고행길이 아닐까 예상은 했으나 정말이지 적중했다. 평소에도 잘 걷지 않는 내가 타국에서의 첫날을 거의 2만 보 이상 걸었다. 챙겨간 휴족 파스도 통증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코끼리 다리가 되어 숙소인 성완 역 근처에서 주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돌아다녔다.

얼마나 힘겨웠는지는 금세 몸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피부염이 얼굴과 목을 뒤덮어 가렵고 쓰라리고 붉고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도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한여름에 나다니는 걸 꺼려했는데, 여름의 복판에서 그토록 땀 내고 열 내고 몸살이 날 만큼 힘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 지금은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 받아, 먹고 바르는 중인데 참으로 괴롭다.

우리 식구끼리였으면 그렇게 무리한 일정으로 진행되지도 않았겠지만. 함께 간 내 예전 직장 동료 내외(벌써 20년 지기, 가족 같은)가 가이드를 자처했고, 그들이 짠 빡빡한 일정 속엔 우리에게 타국의 명소를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맘이 그대로 엿보였다. 그걸 충분히 알기에 내내 투덜거릴 수도, 힘들다고 칭얼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많이 아팠고 힘겨웠고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나 내색할 수 없었다.



2016. 8. 12. 제이드 가든 @침사추이 스타하우스 4층, 나는 수박 주스와 새우 들어간 딤섬 외엔 먹지 못하겠더라


감성이 죽어버린 나는 이런 빽빽한 빌딩들을 보는 것이 뭣이 중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고, 오래 헤매다 찾아 올라간 화폐 박물관에서 퉁퉁 부은 다리를 부여잡고는 힘겨운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힘들게 안내하는 일행에게 그런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창밖으로 눈을 던졌다.

정말 다양한 건물이 즐비하긴 했다. 너무 촘촘히 박혀 있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릴 적 아이가 갖고 놀던 네모난 레고를 땅에다 마구 박는 상상을 하며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날씨가 나쁘진 않았다. 외려 한국보다 조금 낮은 기온(그래 본들 무더운 여름이다)이었고 돌아다니기에도 적절히 흐렸다. 결국은 고급하지 않은 내 체력 탓에 모든 게 무기력하고 힘에 겨웠을 따름이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기에 꿋꿋이 참고 버텨야 했다.


그렇잖아도 유난한 입맛이 독특한 향신료가 가미된 그곳 음식에 적응할 리 없었다. 여러 끼를 먹지 못했다. 그나마 호텔 조식 뷔페의 스크램블드에그와 소시지,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몇 군데 유명 식당의 맛나다는 딤섬도 내 입엔 거의 맞지 않았다. 새우 들어간 딤섬 몇 점밖엔 먹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날 저녁은 결국 이태리 음식으로 동안 못 먹어 헐거워진 배 속을 그득히 채웠고, 돌아오는 날 점심은 스탠리 베이 근처 보트하우스의 버거와 토르티야 랩으로, 저녁 또한 홍콩 공항의 맥도널드 너겟과 치킨으로 때웠다.

많은 이가 쇼핑 때문에 간다는 홍콩이지만 난 쇼핑에 관심이 없기에 그것 또한 나와는 맞지 않았다. 살 만한 게 눈에 띄지도 않았고 사고 싶지도 않았다. 난 쉬고 싶었다, 격렬하게. 그러나 휴식이라곤 없는 일정이었다. 늦은 저녁 들어와 겨우 씻고 눈을 붙일라치면 나는 늘 그랬듯 잠이 오지 않았고 한 시간 만에 깨거나 거의 선잠으로 밤을 보냈다. 그러고 맞은 아침은 더 피로했고 그런 몸과 맘으로 또 하루의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다.



2016. 8. 13. 마카오 베네시안 호텔 내부, 거대한 짝퉁의 세계를 봤다


이태리 어딘가를 옮겨 놓은 듯한 베네시안 호텔 내부의 광경은 경이롭지 않았고 다소간 조악했다. 그곳에서 먹은 에그타르트가 썩 나쁘진 않았다. 원래 일행이 짜 놓은 일정에는 유명하다는 우유 푸딩과 에그타르트를 맛보기 위해 세나도 광장 쪽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나와 큰애의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몇 가지는 건너뛴 셈이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걷고 찾고 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

마카오를 찾은 궁극의 목표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관람이었다. 연신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한 워터쇼'는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은 대단한 공연이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처음으로 편안한 맘으로 시원하게 1시간 30여 분을 보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아쉬울 정도였다.

마카오까지 갈 때는 심하게 흔들리는 페리 탓에 멀미도 조금 했었다. 마음이 조금 편해져 그런가 공연 관람 후 돌아가는 저녁 배는 덜 흔들거리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며칠 동안 서있거나 앉아 있을 때마다 주변이 흔들리고 어지러운 증상으로 애를 먹었다.



2016. 8. 14. 옹핑 케이블카, 똥총 역


아침마다 서둘러 일어나야 했던 이유는 목적지에서의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었으나, 너무 여유가 없는 탓에 심신의 피로는 극에 달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케이블카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케일이 남다른 그곳의 케이블카는 내게 충분한 위협이 되고도 남았다. 홍콩에서 가장 큰 절이라는 란타우 섬의 포린 선사(사찰)까지 갈 때는 바닥이 투명해서 더더욱 그랬다. 호들갑스럽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케이블카의 탑승 시간은 편도만으로도 25분가량이나 된다. 처음 5분여는 두려움 때문에, 그 후는 어지럼증으로 란타우 섬의 전경을 제대로 내려다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건 무더위와 저질 체력 때문이었던 듯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나는 돌아다니기 어렵다.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는 몸뚱이와 예민한 머릿속 때문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2016. 8. 14. 청동좌불상 빅 부다(Big Buddha), 란타우섬 포린 선사


조금 흐린 듯했으나 청동좌불상 아래 268개의 계단을 오를 때는 완벽한 땡볕이었다. 일행은 내게 계단 오르기를 만류했으나 나는 서슴없이 올랐다. 내가 오르지 않으면 아이들도 안 오를 것이 뻔했고 또 거기까지 가서 눈앞의 석가를 가까이서 안 보고 온다는 것도 좀 그랬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얼굴과 목은 가렵고 아팠지만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의 기분은 어느 때보다 홀가분하고 뿌듯했다. 불전을 넣고 잠시 기도했다. 많은 무의미한 것에서 자유롭기를, 무엇보다 내게서 자유롭기를.

그렇게 기도했으나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을 나는 안다. 생이 끝나기 전까지 얼마나 나를 놓을 수 있을까. 어제도 오늘도 단단하게 묶인 나를 마주했었다. 내일은 조금 다른 삶이길 소망한다.



2016. 8. 14. 센트럴 페리 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


내가 즉각적으로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그나마 띄엄띄엄 겨우 들리는 영어 몇 마디가 반갑기까지 하다니. 간판이며 이정표며, 눈에 띄는 영어 몇 줄이 고맙기는 처음이었다. 정작 내가 영어로 말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함께 간 동료 내외가 유창한 영어 실력자라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고작 땡큐, 굿, 정도만 뱉으면 그만이었다. 우리 집 중학생 어린이는 의외로 용감해서 어설픈 영어지만 알아서 묻고 답하고 필요한 것까지 챙겨 오고 못하는 거 빼곤 다 하는 듯하더라.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센트럴 패리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러나 휴일의 오후, 벌떼처럼 몰려든 인파 탓에 내리자마자 다시 같은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으나 우리를 안내하던 일행은 당혹스러워했고 안타까워했다.



2016. 8. 14. IFC 몰 근처??


모든 사진은 큰애가 찍었다. 휴대폰 충전기를 안 챙기는 바람에 내 폰은 첫날 이후 잠들어 있었다. 위탁 수화물로 부칠 것들과 기내 반입해야 하는 것들 때문에 짐 쌀 때부터 머리가 아팠는데 충전기는 늘 남자가 챙기곤 해서 그거 하나 언급 안 했는데 딱 거기서 구멍이 날 줄은 몰랐다. 큰애는 보조배터리를 충전해 사용했다. 충전기가 있었다 해도 나는 찍을 엄두도 못 냈을 터다. 걷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으니.

아이가 휴대폰으로 찍은 것들 중 내 맘에 드는 사진이다. 어딘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IFC 몰 근처 같기도 하고.. 여하튼 저곳에서 바라본 초저녁 풍경이 예뻤다는 기억은 있다.

홍콩의 주말 풍경은 조금 씁쓸했다. 건물과 공원의 그늘진 곳마다 많은 여인들로 북적거렸다. 처음엔 여행객인가 했는데 그들이 모두 가정부라는 사실에 실색했다. 홍콩의 집은 평수가 너무 작아서 가족이 모이는 주말이 되면 주로 동남아에서 온 가정부들은 갈 곳이 없게 된단다. 밖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휴일 밤 무렵 일하는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한다. 도시의 화려함과 공원의 평화로움 속에 가려진 아픔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2016. 8. 15. 스탠리 베이 근처 맛집 보트하우스, 홍콩 달러를 다 쓰기 위해 많이 주문, 계산 착오. 많이 먹지 못했는데도 배는 터지는 줄. 그러곤 이내 다시 배고픔


여행을 자주 가지도 않았었지만 내가 지금껏 돌아다닌 것 중 가장 힘들었다. 그럼에도 있는 동안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일 년 가까이 꾸준히 한 운동 덕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저급한 체력임엔 틀림이 없다.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어쩌면 아들에겐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리라. 첫 해외여행이라고 들떠서 잠도 못 자던 녀석이었다.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고 잘 따라다녔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자느라 기내식을 놓친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아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집에 와서 간단히 씻고 아침도 먹고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저녁에 있는 수영까지 다 끝내는 것을 보고 어려서 그런지 체력이 괜찮구나 싶더라.

나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청소하고 아침 해서 아이 먹여 보내고 정리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온전히 내 몫인 산더미 같은 빨래들과 먼지 쌓인 집구석들.




돌아온 지 나흘이 돼 가는데도 피로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내가 상상하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잘 다녀왔으니 그걸로 감사한다. 기억해내기도 버거운데 굳이 기록을 하는 이유는 유의미하고 싶어서다. 헛된 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은 여행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바라는 여행은 무엇을 더 많이 보고 더 느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더 오래전에 경험했어야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싶을 뿐이다.








은둔의 삶 속 간간이 펼쳐지던 외부와의 연결(여행, 모임)이 완전히 끊어진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불가항력이었던 몇 해의 시간과 뒤이어 찾아온 역병의 시절로, 이제는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 잊고 있던 세상의 외견과 그 안에 깃든 기운과 어우러진 풍경, 코 끝에 전해지던 냄새, 다양한 타인들의 모습 등을 눈앞에 그려보곤 한다.


그토록 힘겨웠던 여행을 지금은 오히려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을 정도로 사납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지옥 같은 시간도 종내엔 과거가 되기에 다 살아지고, 살아낼 수 있는 듯싶다.


정신없는 학기를 보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여전한 어찔함으로 괴로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케 잘 버텨주었다. 이곳에서의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과거의 기억을 멈추고 이제는 지금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과거 속에서 허우적대고만 있다. 숱한 과거가 쌓인 현재의 내 모습을 스스로 낱낱이 살피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곧 방학이다. 어떻게 지내야 할지는 아직 계획이 없고, 조금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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